어느 수능 경력자의 이야기
오늘은 수능날이다.
내가 있는곳은 수요일이지만 한국은 목요일.
여기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지만
한국은 한창 각 고사장에서 안내멘트가 나오고 있을 시간.
긴장한 얼굴로 낯선 교실 책상에 앉아 안내방송을 듣고있는 수험생들을 생각하니
내 심장 어딘가에 물파스를 바른듯 싸, 한 기분이 든다.
그날 아침.
예년보다 추위가 덜해 아침뉴스는 포근한 날씨라던지,
작년 수능 난이도가 갑자기 쉬워져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출제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는 둥.
뭐 그런 이야기를 했던거 같다.
고3 학생들을 응원하는 후배들이 교문앞에서 떡이며 초콜릿, 따뜻한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재수생이라 딱 봐도 좀 괴리감이 드는 분위기였던지
나에게는 딱히 응원을 보내주지는 않았던 거 같다.
나의 두번째 수능시험장은
그해 처음으로 시험장으로 사용되는 실업계 고등학교 였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다가 약대를 가겠다며
여름방학에 수능교재를 구입한 친구를 따라서 시작한 재수였다
신입생때 신나게 놀았지만 늘 가지고 있던 아쉬움을 만회하기위해
나는 여름방학부터 맹혈차게 공부했다.
이제 일병이된 남자친구의 휴가도 외면하고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써보겠다는 일념으로 문제집과 씨름했다.
재수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나의 스물한살 여름과 가을을 불태웠다
유난히 늦게 온 사춘기.
남들은 공부하느라 바쁜 그때
나는 해석도 안되는 철학책에 파뭍혀 지냈다
몇달 후 부터는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래서 엄마는 매일 울었다.
달래도보고, 싸워도 보고, 때려도 보아도
엄마 밖에 모르던 모범생 딸은 정신을 차릴 줄을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는 진학했다.
즐거웠다.
대학교 캠퍼스는 푸르게 빛났고,
어른과 아이의 중간 어디쯤에서 자유를 느껴보는 것.
세상 돌아가는 일을 걱정하며 집회 인파에 파묻혀보는 일.
그런 것들이 사춘기 시절의 어둠을 잊게했다.
하지만 나는 이듬해 여름.
독서실에 쳐박혔다.
- 족보는 바꿔도 학벌은 못바꾼다 -
그 격언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나는 내일이 없을 것처럼 모의고사를 풀어댔다.
그날 내 자신감은 그런 열정,
혹은 다른 수험생보다 좀더 나이들어 인생을 안다는 자만. 같은 데서 기인했다
그리고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어리석게도 시계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보이는 전자시계만 들고 간 것이다.
하.........
애니콜은 잠시 꺼두셔야 했기에
시력이 나쁜 나는 맨 앞 교탁에 놓인 벽시계에 의지해야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수도 없이 받은 언어영역의 신이니까.
그런데
그해 언어영역은 역대급으로 난이도가 높았다.
나는 당황했다.
늘 문제를 풀고 답안지 마킹을 해도 시간이 남았던 나인데
마킹을 막 시작한거같은데 이제 오분 남았단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귀에서 연기가 뿜뿜 나오는거 같았다.
열심히 마킹을 했다. 수도없이 사용한 컴퓨터용 사인펜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그런데.
어?
이상하네 문제번호랑 내 답이 왜 안맞지?
어? 머지?
시계는 째깍째깍..
사각사각 사인펜 칠하는 소리.
이미 답안지를 완성하고 문제지를 팔랑팔랑 덮는 소리
하품소리.
나는 깨달았다.
내 마킹이 밀렸다는걸.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떨리는 목소리로 감독관을 불렀다.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뻣뻣한 머릿결에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답안지를 잘 못 마킹했어요
바꾸고 싶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3분 남았어요
바꿔줄 수 없어요
하늘이 내려앉는 소리
머릿속이 핑글핑글 도는 거같았다.
나는 애원했다.
빨리 할 수 있어요.
제발 바꿔주세요
그녀는 완강했다.
나와 부감독관을 노려보며 안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교실에 모든 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1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지옥이 있다면 그날 그 교실이 아니었을까.
나는 당장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가방을 주섬주섬 싸는데
혹시 어쩌면 그 칸만 미룬걸지도 모르잖아.
다섯문제 정도 틀려도 다른과목 다 만점 받으면 될거야.
나의 주특기인 긍정회로에 불이 들어왔다.
바늘 구멍만한 확률만 있어도 포기를 모르는 나.
그래서 늘 힘든 나.
그냥 포기하면 편하게 살텐데.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앉아서
나머지 과목들도 열심히, 마치 1교시에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시험에 임했다.
점심시간에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이런때 친구들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냥 혼자 있고싶었다.
위로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머지 과목을 다 맞출 것이므로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시험을 다 치르고 힘이 빠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수험생들보다 한 시간은 족히 늦게 교문을 나섰다.
학교가 워낙 높은 곳에 있었던 탓에 학교 앞에 주차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엄마는 학교에서 도로쪽으로 내려가는 긴 계단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계단 끝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엄마.
영문도 모르는체 나오지 않는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지만
나와 같은 딸은 정말이지 키우고 싶지 않다.
그날. 밤.
나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했다.
쪽팔렸다.
화가 났고
뉴스에서 이번 수능을 평가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걸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날 엄마는 베란다 앞에서 밤을 보냈다.
엄마가 베란다 앞을 지키던 그 마음을
딸을 키우고 보니 어렴풋이 알거 같다
너가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라는 표면적인 이유 말고
그 이면에 더 깊은 아픔을.
내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 할때.
최선을 다 한 것을 알아도 도와줄 것이 없을때
그리고
그 사람이 너무나 아파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볼때.
부모라는 이가 느끼는 감정을.
마치 내 살을 도려내듯
내 자식의 아픔을 온전히 지켜보아야만 할때 느끼는 고통에 관하여.
나는 매년 수능날이면 마음이 저 멀리 어딘가로 뒹구는 기분이 든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날.
모두가 알려주는 1년에 한번 있는 추운날.
기온이 올라가도, 바람이 잔잔해도, 햇살이 포근해도.
나에게는 변함 없이 춥기만 한 날.
오늘도 교실에서는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덤덤할테지
누군가의 어머니는 베란다를 지키고
누군가의 가족은 따뜻한 저녁을 나누며 지난 노력을 치하할테지
인생이란게 원래 1+1=2 가 아니어서.
삶이 늘 내가 만족할 결과를 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춥다.
어쩌면 생에 첫 시련을 맞보는 젊음이여.
수고했다.
나는 오늘밤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에서 이글을 쓴다.
베란다 앞에 선 엄마의 마음으로
그대를 지켜줄 누군가가 세상에 꼭 있다.
날 봐라.
까짓 수능 못봐도 지금 잘 살고 있지 않나.
우리가족은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베란다에서 딸을 지키던 엄마는 오늘도 저 하늘 어디에선가 웃고있겠지.
시계 꼭 챙겨라.
잔소리도 함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