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나무 3이 갖는 의미
엄마,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거 같아.
이런 말 들어본 엄마가 많을까. 듣지 못한 엄마가 많을까
세상에 '잘하는 게 없이'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 거 같은데
잘한다는 게 뭐지
얼만큼 잘하는 게 잘하는 건가.
아이가 며칠 전 저녁에 지나가는 말로 내뱉었다.
조금 놀랐다.
이 녀석은 아주 긍정적인 녀석인데
지금까지 늘 본인은 친구를 정말 잘 사귀고, 그림도 잘 그리고
스캐이트도 잘 타며 책도 많이 읽는 멋진 사람이었다.
샤넬처럼 멋진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을 바꾸겠노라 하던 아이가.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거 같아, 라니.
뜨끔. 했다.
어느 정도 성장발달을 마무리하기까지
나는 조기에 발달한 지능이 미치는 전방위적 기능에 관해 인정한다.
지능이 높은 아이는 모든 것을 빠르게 습득한다.
몸을 쓰는 일,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사귀는 다양한 영역에서
본인을 보호할 줄 알고, 좋은 결과물을 내는 지름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낸다.
그래서 지능 혹은 유전자가 우수한 아이들은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소위 에이스,라고 불리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이 동네에 모여 산다.
한국에서 좋은 유전자를 받아,
좋은 환경에서 최적의 교육을 받으며
안 그래도 좋은 지능을 더 높인 아이들.
못하는 것이 없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정의 아이들을 한데 모으니
이건 뭐.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가 1학년 겨울에 자퇴를 결심하는
우리 학교 전교 1등의 이야기처럼-
근거 없이 자신만만하던 내 딸아이는 비로소 세상과 마주 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상.
에이스들이 사는 세상.
두 번째는 엄마의 문제다.
칭찬만 해대던 대책 없던 엄마가 변한 것이다.
처음으로 주부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서 내 아이의 역량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된 것.
그리고 주변 아이들을 보며 조급해진 탓에
나의 칭찬 폭격은 현저히 감소했고
너 그림이 너무 작아. 좀 더 크게 그리면 좋을 거 같아.
야, 이걸 아직도 못 푸니, 도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되는 거야.
너는 달리기를 할 때 몸을 너무 뒤로 젖히는 거 같아. 그러니 휘적거리며 뛰게 되잖아.
이런 입으로 하는 조언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입만 나불대는 조언.
알고 보면 비난에 가까운.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본다.
불안한 나.
지고 싶지 않는 나.
채찍질을 해서라도 끌고 가고 싶은 나.
내 유년기와 학창 시절.
늘 주인공을 해야 직성이 풀렸던 내 유년기.
새로 이사를 간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연극을 했다.
등록하고 1,2주 후에 있는 공연이었다.
원장선생님은 이미 정해진 역할들 중에 추가가 가능한
나무 3을 나에게 지정해 주셨다.
나무가 2까지 있었겠지. 나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무 3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연에 불참했다.
나무3 말고 좀 더 비중 있는 역할을 원했던 건가.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속상했던 기억이다.
그래도 공연은 잘 마무리되었고
나무 1과 나무 2도 멋지게 자기 역할을 해내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한해도 빠짐없이 반장을 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애들이 나를 찍어줘서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나는 '관종'이었다.
항상 주목받아야 하고 일등 이어야 하고 엄마의 자랑이어야 했다.
그리고 아주 기운 센 사춘기를 맞았다.
그 간의 모든 관종 역사를 전면 부정하는 대혁명.
나는 알고 보니 I였고 (MBTI측정이 당시에도 있었다면)
내 관종기질은 후천적 노력의 발로였다는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숨었다.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너무 통쾌했다.
내가 나를 찾은 해방감에 취했다.
결국 나는 I와 E사이, 관종과 은둔자 사이를 넘나들며
나의 2,30대를 무사히(?) 보내었다.
그런 내가. 내 역사의 절반은 관종의 세월인 그런 내가.
주연으로 발탁되지 않는 딸을 키우게 되었다.
기말통지표에 '항상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성실한 아이입니다.' 이런 코멘트를 받는 딸을.
선생님들은 내 아이를 모른다.
24명 중에 한 명인 내 아이.
키가 커서 늘 맨 뒷자리에 앉는 아이.
발표를 시키면 쭈뼛쭈뼛 주눅 드는 아이.
무슨 일이든 약간씩 늦게 마무리하는 아이.
하지만 규칙을 잘지키고 친구들과 무난히 잘 어울리는 아이.
그 정도로, 24분의 1만큼 내 아이를 안다.
그 조용함 이면에 엄마의 관종 유전자를 받은 아이임을.
주목받고,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 열망을 감춘 아이라는걸.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하려 하지만
본인 생각만큼 잘 안된다는 걸.
몸도 머리도 손도 생각만큼 빠르고 야무지게 움직여 주지 않아
글씨는 구불거리고 달리기는 휘적거리며
수학시험지는 줄줄이 엑스인 내 아이.
잘한다는 확신이 줄어들수록 아이는 더 숨게 된다.
나무3 역할을 받고 공연에 불참한 나처럼.
아이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나는 제법 냉정한 사람이라 아이에게 근거 없는 칭찬은 하지 못한다.
못하는데 잘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날 밤에 나란히 누워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너는 지금 누구보다 잘하고 있어.
내가 살면서 본 누구보다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래서 지금 성장하고 있어.
네가 여기 와서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탑을 높이 쌓아 올린 아이들이야.
엄마가 주부여서 아이의 글쓰기를 늘 봐주고
함께 그림대회, 글짓기 대회에도 종종 출전한 아이.
좋은 동네에서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사립초등학교에 가서 열심히 스포츠와 악기를 다룬 아이.
대치동 학원가에서 늦은 시각까지 수학과 영어를 공부한 아이
하다못해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어깨너머로 뭐든 조금씩 일찍 배운 아이
모두가 그렇게 탑을 쌓아 올린 아이들이야.
너는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런 것들을 챙겨주지 못해서 조금 늦는 거야.
봐. 네 동생은 네 덕에 벌써 체조도 하고 영어도 쉽게 배우고 있잖니.
너도 이제 너의 탑을 쌓고 있는 거야
엄마가 여기서 너를 도와줄 거야.
나는 네가 쓴 글을 읽을 때 항상 웃는다.
너의 상상력이 너무 예뻐서
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고
남에게 이기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인생에서 중요한 재능은
너보다 어려운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것. 그리고
오늘 안 돼도 내일은 될 거라 믿고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야.
엄마가 이 나이 되고 보니 결국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 결국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더라.
게다가 너는 머리도 좋아.
나는 네가 한글을 배우지 않고 글을 읽을 때
천재를 낳았다고 으쓱했대도!!!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우리 문제는 마음이 약한 거라며
이건 다 엄마를 닮아서라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꿈나라로 함께 달려갔다.
나는 묵묵한 아이의 엄마이다.
이 아이는 아마 나무 3을 맡겨도
키가 커서 그런 거 같다며 엄마 꼭 보러 와야 해, 해줄 아름다운 아이다.
나무는 중요한 존재다.
나는 지금도 창밖에 붉고 노란 나무 3, 나무 4, 나무 5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글을 쓴다.
내 아이의 삶이 그 자체로 온전하도록
내 아이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나는 무대뒤에서 조명을 조정한다.
무대 위의 조명이 저기 뒤에 있는 내 아이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이.
때로 조연 혹은 엑스트라 같아도
스스로 가치롭고 의미 있음을 내 아이가 알게 되는 그날까지
나는 무대 뒤에서 분주할 것이다.
알고 보면 나는 관종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