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삐를 다루는 법
이제 곧 10살이 되는 내 아이는 금사빠다.
문어발식 금사빠이면서
베프 만들기에 집착하는 외사랑 금사빠이기도 하다.
이 대책 없는 아이는 일찍이 만 4세부터 금사빠의 기질을 보였다.
어린이집에 본인이 좋아하던 친구 ‘에이’가 다른 유치원으로 전학을 가버린 후
아이의 이상행동이 시작되었다.
남들은 잘 모르는, 내 눈에는 잘 보이는 행동
아마도 아이는 전학을 가버린 '에이'를 대신할 다른 친구를 물색했던 거 같다.
그리고 에이와 함께 놀던 '비', '씨' 중에 한 명에게 집착했다.
'비'와 가까워지고 싶어 했지만 이미 '비'는 '씨'와 가장 친한 상태.
그래서 눈치 없고 무모한 내 아이는
비와 씨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따, 를 당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 눈에는
단순히 그 나이 또래 친구들 간의 사소한 트러블로 보일 법한.
한창 둘째에게 모유수유를 하느라 정신없던 그 봄.
늘상 엄마에게 안겨있던 네 살 터울 동생에 대한 질투로
종종 전에 없던 투정을 하던 아이.
아이와 이야기를 하던 중
왜 그렇게 너랑 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매달리냐는 내 질문에
내 뒤통수를 후려치던 아이의 단호한 변.
"비는 에이야. 에이가 나에게 안녕 인사도 없이 가버렸어. 그래서 내 하트가 부서졌어"
그날 밤 둘째를 안고 있느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세상 전부였던 그 아이를 안고 함께 울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의 이런 상태가 정상범위안인지 궁금했다.
생전 처음으로 상담을 신청했다.
30여 분간의 놀이 탐색 후 선생님을 마주했다.
- 더 오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니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세요. -
더 오지 말라는 진단(?)에
안도감이 밀려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웠다.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상담센터를 나온 후였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고 자랐다
무서운 COVID 시절도 무사히 지나고
나를 초등학생 학부모로 한 단계 격상시켜 주었다.
아이의 친구생활은 무난했다.
싫어하는 친구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했고
좋아하는 친구는 수시로 바뀌기도 했다.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기도 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고 다이소에 들르는 코스를 남들처럼 밟았다.
모든 것이 아이를 정상, 이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에 왔다.
아이는 다시 만 4세였던 그때처럼 또 허둥댄다.
제2의 에이와 비, 씨가 등장했고
아이의 친구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흐트러진 책상 위를 보는 듯
난감한 기분에 한숨을 삼킨다.
조언도 해보고, 다그쳐도 보고, 응원도 해본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밤.
내 잘못인가.
아니면 유전자 잘못인가.
또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똑 부러진 이유를 찾으면
아이의 어려움이 한방에 해결이라도 될 것처럼 집요하게.
답은 없다.
생각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
너는 또 넘어지고 깨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일어서는 법도 배우겠지.
너의 어설픈 표현을,
너의 눈치 없는 애정을,
번짓수를 잘 못 찾은 택배 박스처럼
무가치하게 밀어내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지.
너의 가치를, 아름다움을, 사랑스러움을
끝내 알아주지 않을 누군가에게
의미도 없는 편지를, 다소 비굴한 구애를,
때로 비참한 굴종을 바치려 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어찌하면 좋으니.
나는 그런 너에게 어떤 말로 이제는 그만 멈추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밀당에 밀이라고는 모르는 너를.
나는 어떻게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 낼 수 있을까.
나처럼 아프지 말라고
너는 나처럼 견디지 말고 힘들면 그냥 놓아버리라고
너는 공주님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고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로 너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래.
아픈 연애는 한 번만 하렴.
그리고 그때 내 어깨에 기대어 울어줄래.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10년, 100년이 흘러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네 아픔도 오래전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눈물의 염도는 일정하니까.
네 젊은 눈물이라고 설마 떠 짜기야 하겠어.
늙은 내 위로도 괜찮다면 기꺼이 널 안아줄게
하지만 딸아.
사람과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미리 아는 것은 아주 유용하단다.
그래서 나는 이제 너에게 수학이나 영어 같은 것 말고
또 하나 가르쳐야 할 과목이 생겼다.
철학이나 역사 같은 것.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이란 없단다.
나의 마음을 잡는 법을 배우자.
나의 달려 나가는 마음을 잡는 법
추락하는 자존감을 붙잡아 세우는 법
미워하는 마음을 외면하는 법
인정받고 싶어 나 자신을 잊은 내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법
나는 이제 너에게 내가 낙제로 수십 번 다시 시험을 봐야 했던,
그래서 아직도 정답을 찾고 있는
그것을 알려주마.
나를 사랑하고, 내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최고의 방법을.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네 마음도 언젠가는 길들여질 거야.
그러니 딸아,
나와 함께 마음의 고삐를 다루는 방법을 배워보자
멋진 기수가 되어 내게 웃어줄 너를 생각하니
벌써 어깨가 으쓱하다.
마음, 그게 뭐라고.
그지.
그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