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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커피를 좋아한다.
일요일 아침이면 식사를 마치고,
그릇들을 싱크대 한쪽에 쌓아둔 채
가스레인지에 커피 물을 올린다.
“엄마, 그냥 원두커피 마셔. 이런 거 유방암에 안좋아.”
“괜찮아. 아직 재발 안 했으니 완치로 본다잖아.”
“지난번 건강검진때 뭐 있다고 안했어?”
“별거 아니야.”
5년전, 엄마는 정기건강검진에서 발견한 유방암 조직을 떼어내면서
한쪽 유방을 절제했다.
엄마의 봉긋하고 탐스러운 가슴은 짝작이가 되었다.
그때 재건수술이 제대로 된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잔소리를 하면 엄마는 늘 스트레스가 더 안좋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별거 아니라는 말과 함께.
엄마 앞에 인스턴트 커피가 놓인다.
엄마는 내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으로
내 걱정을 마무리하려는듯하다.
오늘도 새로운 전화번호를 내밀며 당부한다.
“갔다가 와도 되니 제발 가.”
“그 정도로 중요한 거야. 결혼이?”
“응. 중요해.”
“대체 왜?”
“남들도 다 하는 거야.”
“그게 이유야?”
“응. 남들이 그렇게 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편성으로 무장한 엄마가 내 공격을 방어한다.
“모두가 똑같이 살 필요는 없어. 엄마.”
나는 다시 삶의 개별성에 대해 피력한다.
“아니. 그렇게 사는 게 좋아. 그게 편해.
나는 네가 남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사는 게 편한 거야?”
엄마는 작정한 듯 나를 본다.
“모나게 살지 마.”
“나 모 안 났어.”
나는 샐죽해서 받아친다.
“너 모났어. 많이.”
엄마가 커피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힘을 주어 덧붙인다.
“힘든 길 가지 마라. 어렵게 살지 마.”
내 앞에 놓인 머그컵에는 남은 커피가 없다.
“갔다 와도 되는 거지? 갔다 와도 되면 한번 생각해 보고.”
눈을 흘기는 엄마를 외면하려 시계를 보며 일어난다.
“시간 다 됐네? 다녀올게.”
엄마는 얕게 숨을 내쉰다.
“그래. 모나게 굴지 말고.”
모난 딸의 등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거친 마음의 모서리마다
내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생살이 맺혀있는 것을,
나를 낳아 여태 키운 당신의 눈에는 보일까.
인정하기 싫지만, 엄마의 우려대로
내 연애들은 예쁜 순정만화로 시작해
불편한 심리스릴러로 막을 내리곤 했다.
나는 한 번도
서운함 혹은 사랑받고 싶은 갈망에 대해 올바르게 표현해 본 적이 없었다.
정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허들을 만들고
상대가 피를 흘리며 덫을 넘어오면
그제야 안도감과 후회로
상처 난 발을 안아 주곤했다.
그런 것도 사랑이었다.
환희와 설렘으로 시작한 로맨스가 중간지점을 통과할 때 즈음
어김없이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들을 만들었다.
시험의 질문은 하나였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난이도 상중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고
누군가의 남자친구 혹은 내 근처를 맴도는 남자들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난이도 하.
작은 실수도 물고 늘어져 트집을 잡고,
용서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과나 애원 따위를 외면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남자와 연애를 하는듯한 자세로
상대를 궁지로 몰았다.
난이도 중.
그러고도 안되면 헤어짐을 통보했다.
문제는 이별이 도구였다는 것이다.
마음의 결심이 아니라 상대를 굴복시키는 협박으로 그것을 사용했다.
물론. 당시에는 진심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 말에 격한 반대 의사를 타진했다면,
분명 그것은 그저 시험문제였을.
결과를 알고 전쟁에 임하는 전사는 없기에
나는 때마다 절박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치명적인 매력의 팜므파탈이 아니었다.
그저 불안에 휘둘리는 난폭한 파괴자였다.
참으로 한심한 출제자였다. 나는.
모난 내 등 뒤로 엄마의 둥근 시선이 닿는다.
‘힘든 길 가지 마라.’
조용히 등을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