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태국과 베트남 묶어 떠난 이번 여행. 딸 역시 처음 가 본 나라지만, 태국은 워낙 세계적인 관광도시 겸 대도시라 참 여행하기 편했다. 알아보기 좋게 색칠해 둔 지하철 노선도 따라 지하철을 탔고, 택시 타고 싶으면 우버로 택시도 쉽게 불렀다. 방금 탈피를 끝내 껍질이 없는 듯 부드러운 ‘소프트 크랩’. 그 부드러운 살을 통째로 튀겨 코코넛 커리에 볶아낸 ‘푸팟퐁 커리’는 둘 다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태국 국민 수프라는 ‘똠얌꿍’은 시큼하고 뜨뜻미지근한 맛이 입에 맞지 않아 둘 다 새우만 건져 먹고 말았지만 말이다. 엄마에게 알찬 경험 선물하고 싶어 딸이 열심히 계획한 만큼, 태국 여행은 찬찬히 계획대로 흘러갔다.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가 ‘비엣젯’ 항공으로 하노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다. 남은 태국 돈은 동전 하나까지 탈탈 털어 푸팟퐁 커리와 망고밥으로 바꿔먹었다. 비엣젯 항공은 타고 온 비행기보다 좌석 간 거리가 약간 좁았다. 158cm, 163cm인 우리 모녀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리 긴 외국인은 참 곤욕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내렸다. 공항버스로 쉽게 시내에 닿을 수 있다 했다. 공항버스를 찾아 밖으로 나섰다. 태국도 ‘덥다 덥다’ 하며 다녔지만, 베트남은 차원이 다르다. 위도상 하노이가 훨씬 시원해야 맞는데…? 더위에는 기온만 관여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태국은 덥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로 피하면 살 만했다. 여기는 습도마저 자비가 없어서 한숨 한숨 들이 마시고 내 쉴 때마다 답답할 지경이다.
“이럴 수는 없어. 엄마 우리 커피라도 한잔 사서 나갈까?”
“그러자.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지?”
다시 공항으로 들어와 아이스 커피를 두 잔 샀다. 첫 ‘베트남 커피’를 공항 카페에서 급하게 맛봤다. 갈증 해소용으로 쭉쭉 들이키느라 커피 맛은 기억도 안난다.
공항에서 숙소 있는 곳까지는 버스로 40~50분 정도면 닿는다고 했다. 가이드북에 쓰여 있었으니 틀림없으리라. 공항버스에 짐과 몸을 실었다. 40분은 무슨. 1시간이 다 되도록 알 수 없는 도로 가운데다.
‘태국 도로는 양반이었구나…….’
베트남 도로는 버스, 자가용, 수많은 오토바이, 자전거 인력거,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로 얽히고설켜 뚫릴 생각을 않는다.
‘30km를 몇 시간 동안 가는 거야…….’
이동이 잦은 날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피곤하다. 아침부터 공항 간다고 서두른 데다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왔으니. 엄마도 꽤 지쳤을 것이다.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어이없는 도로 사정 구경에 여념이 없다.
“이것 좀 봐. 도로가 아주 엉망진창이다. 무단횡단하는 것 봐 예술이다. 어떻게 길이 이 모양이지?”
“글쎄. 오토바이가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사실 나도 이유는 잘 모른다. 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짐 던지고 푹신한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다. 에어컨 팡팡 틀고.
1시간 반 정도 시내까지 달려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렸다. 여기서 숙소까지는 400m 정도라고 구글맵이 알려줬다.
“엄마 여기서 숙소까지 400m밖에 안 돼서 굳이 택시 탈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냥 걸어도 괜찮지?”
“그래 오늘 종일 탈것 탔는데. 좀 걸어도 되지 뭘.”
오산이었다. 도보 8분은 짐가방 없을 때 이야기였다. 나는 27인치 캐리어, 엄마는 20인치 캐리어를 끌고 걷는 길. 도로 근처는 각종 탈 것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열기로 더 덥게 느껴진다. 보도블록은 또 어찌나 난장판인지. 조금 과장하면 두 발 걸어 한 번씩 캐리어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멈춰 섰다. 길 건너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왕복 4차선 도로의 광활한 도로 너비도, 건널목에서 소리 없이 번쩍이는 신호등도 소용이 없다. 찻길이라면 어김없이 오토바이, 차, 무단횡단하는 사람으로 뒤범벅되어있다.
“여기를 어떻게 건너?”
“어떻게 건너긴 저기 현지인들 막 건너는 거 안 보여?”
라고 잘 아는 척 말은 했지만, 이 끝도 없는 교통 무질서 향연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 참. 캐리어 꼭 붙들고 건널목 앞에서 눈치만 보는 외국인 보이면 잠시 멈춰줄 법도 한데……. 경적과 차와 오토바이의 꼬리물기가 멈추지를 않는다. 이토록 자비 없는 행렬 틈새로 현지인들은 능수능란하게 몸을 통과시킨다. 누군가가 끼어들어도 절대 멈추지 않는 차들. 그 흐름에 맞춰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는 현지인의 지혜.
‘끼어들어야 산다’는 알겠는데 언제 한 발을 내디뎌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주변에 현지인이 다가와 무단횡단할 때까지 미어캣처럼 좌우만 살폈다. 현지인 발걸음과 우리 보폭을 맞춰 겨우 건널목을 건널 수 있었다.
오늘 파타야에서 방콕 공항으로 자동차 이동,
방콕 공항에서 하노이 공항으로 비행기 이동,
하노이 공항에서 하노이 시내로 버스 이동,
하노이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도보 이동을 했다.
그 먼 거리 자동차 이동보다도, 수백 km를 나는 비행기 이동보다도, 단 400m짜리 도보 이동이 힘들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집어 던졌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엄마도 그 400m 걷는 도중에 어지간히 지쳤나 보다. 나란히 침대에 대(大)자로 뻗어 엄마가 하는 말.
“여기 사람들은 뭐 이래 질서가 없어? 신호등도 없고, 건널목도 없고.”
“신호등이 있긴 했어….”
“아이고 아이고…. 그래도 너무 빵빵거리고 그래서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엄마…….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