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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시나몬롤 스콘

 

 새해가 밝았다. 마침 1월 1일이 일요일이다. 메모지를 한 장 꺼내 들고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이번 주는 뭐에다 밥을 주나’


 옆에서 거의 눕듯이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두루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게임 영상에 정신이 팔려 대답이 없다. 세 번을 물어보니 겨우 ‘오이’라고 대답하는 녀석. 나는 ‘또 오이야? 다른 건 없어?’ 하고 묻는데, 이번에는 TV속 유튜브 진행자의 말에 호응하느라 정작 옆에 있는 엄마 말엔 대답이 없다. 한 살 더 먹었어도 여전히 말을 안 듣는다. 이럴 때는 친정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스린다.     


 “애가 말을 잘 들으면 어디가 아픈 거다.”     





 ‘오이, 달걀, 두부, 콩나물, 생선’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먹던 것을 먹는데 희한하게 결제 버튼을 누르기까지 기본 40분은 걸린다. 어떤 날은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다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 세상에 특별한 반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너 엄마랑 통화했어? 아유, 또 시작이다’ 한다. 이상하다. 어제 분명 다 같이 모여서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박수까지 치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는데 뭐가 우리 엄마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까? 이럴 때는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오늘은 말고 내일 아침에 전화해 봐야지 하고는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러면서 빨래를 널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중간중간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일흔의 나이에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자주 힘들어하는 엄마. 나는 가끔 이런 엄마의 모습을 여전히 삶의 적극적인 어른의 태도라고 봐야 할지, 엄마 인생의 거의 절반 가까운 세월 동안 풀지 못한 마음의 짐을 이따금씩 자식들에게까지 전가하는, 그 방면으로는 무책임한 부모라고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습게도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그날의 내 기분에 좌우된다. 단,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우리 엄마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것이다.

 결론은, 엄마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가끔 그렇게 해주기가 싫은 날이 있다는 것이고, 언니에게는 하필이면 그게 새해 첫날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새해 첫날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없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최대한 즐기면서 잘 살아보자고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는 날일 뿐. 엄마 기분이나 얼른 나아졌으면 좋겠다.     


 아! 그래도 새해를 맞이해서 한 가지 특별하게 한 것이 있긴 있다. 커튼을 빨았다! 정말 큰맘 먹고 했다. 내친김에 평소보다 손이 한 번 더 가는 과자도 구워야겠다. 무려 반죽을 밀대로 펴서 설탕을 뿌린 다음 신중을 기해 말아야 하는 과정이 들어간 과자이다. 이 정도면 새해 첫날 기분 제대로  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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