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일시적 호르몬 분비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죠. 이러한 사랑 호르몬의 수명은 보통 2년 정도라고 해요. 안타깝게도 남자의 경우 여자보다 호르몬의 수명이 더 짧다고 알려져 있죠. 그러니 대체적으로 남녀 간의 만남중 마음이 먼저 돌아서는 쪽이 남자인 경우가 많을 수밖에요. 글의 제목을 보고 왜 모든 남성을 일반화시키냐며 발끈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현대 과학까지 들먹여봤습니다.
죽도록 사랑했던 남성이 마음이 식어 떠나거나 다른 연인으로 환승하는 바람에 버림받고 상처받은 여성들의 한 맺힌 스토리는, 아무리 세기를 거듭해도 여전히 먹히는 소재임은 분명합니다. 그런 일이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닌 듯하죠? 여기 이탈리아 사람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속에 등장하는 일본 여인도 순정을 바쳐 사랑에 빠졌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거든요.
오페라 나비부인은 초연 당시 아주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푸치니가 그 이후 여러 차례 작품을리바이즈 했고 1904년에 비로소 다섯 번째 버전이 탄생하고서야 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최종 버전이 오늘날까지 푸치니의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한 거예요.
이 작품을 들어보면 그 안에 일본 음악의 특징적 요소가 아주 잘 녹아들어 있는데요, 놀라운 점은 푸치니가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저 당시에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이던 일본인 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에게 조언을 얻어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과 콘셉트를 잡았고요, 일본 외교관의 부인이었던 오야마 히사코에게 부탁해 일본 노래가 담긴 레코드와 악보를 구해 혼자 공부해 보며 그 나라의 음악풍을 딱 캐치해 냈다고 합니다. 역시 이런 대작을 내놓은 작곡가의 역량이란 정말 넘사벽인 거죠.
나비부인은 1900년대 초반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사실 공식적으로 미군이 나가사키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그전부터 미군의 왕래가 잦았던 곳인가 봅니다. 여하 간에 이제부터 나비부인의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미 해군 장교인 핑커톤이 나가사키의 한 언덕 위에 집을 렌트합니다. 이제 곧 아내가 될 쵸쵸상, 나비부인과 함께 살게 될 집이에요. 곧 이 집에서 혼인식을 거행하기 위해 신부와 신부의 친척들이 당도할 예정입니다. 나비부인이 천천히 언덕을 올라오며 등장하는 장면의 음악은요, 그야말로 천상의 선녀가 내려오는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답니다. 그만큼 순수하고 맑은 쵸쵸상의 이미지를 그려내려 했던 것 같아요.
신부는 이토록 진지하고 결혼의 꿈에 들떠 있건만, 이야기가 더 나아가기 전에 이 나쁜 남자 핑커톤의 속마음을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핑커톤에게 있어 나비부인은 잠시 지나가는 장난과도 같은 사람이에요. 그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현지처'가 필요했던 것뿐이고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인 아내를 맞이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자신의 속마음을 친구이자 미국인 대사인 샤플리스에게 다 이야기합니다. 이런 핑커톤을 보며 샤플리스는 연약한 날개를 다치게 하지 말라는 진지한 충고를 하죠.
이런 대화가 오가는 부분의 음악은 살짝 들어보고 넘어갈게요. 양키 방랑자는 전 세계 곳곳의 꽃들과 아름다운 여성들의 사랑을 모두 얻어낼 때까지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며 America Forever까지 외치는데요, 시작 부분에 미국 국가가 아주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어요. 푸치니의 음악적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죠!
사실 결혼식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아요. 당시 상당히 보수적이었을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나비부인이 미국인 남편과 혼인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神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에 대해 분노하여 가문의 수치이니 호적을 파내라며 저주를 퍼붓고 가버리거든요. 슬퍼하며 우는 나비부인을 핑커톤이 부드럽게 달래주고요, 그런 핑커톤에게 나비부인은 말하죠. 당신의 위로가 너무 달콤해서 이제 그들의 저주에 대해 더는 걱정하지 않겠다고요. 그리고 이 순진무구한 아가씨는 핑커톤에게 묻습니다.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나비를 잡아서 핀으로 고정해 둔다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세상 사랑스러운 남자의 가면을 쓰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나비가 날아가버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도 당신을 잡았으니 이제 당신은 내 것입니다.."
(세상 행복한 나비부인)
"네, 평생 동안 당신의 것입니다.."
하~ 이 동상이몽의 대화를 보며 이를 악물게 되는 건 관객들의 몫인 거죠!? 핑커톤의 얼굴 한대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그렇게 아름다운 첫날밤이 지나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이 스피디한 전개 무엇!) 지금 어떤 상황이 되어 있을까요? 네, 짐작 가능하시겠지만 핑커톤은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나 잠깐 고향에 좀 다녀올게~라는 뻔하디 뻔한 거짓말을 남기고 가버린 거죠.
나비부인은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요.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조차 보여주지 않는 미국인 남편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죠. 여기서 어떤 게인 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라는 애절한 내용을 담은 나비부인의 아리아가 등장하는데요, 사실상 이 작품을 대표하는 가장 잘 알려진 곡입니다.
'어떤 게인 날,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그가 탄 배가 나타날 거예요. 그녀는 언덕 위에서 기다릴 겁니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면 한 남자가 걸어오며 'Butterfly!'라고 부를 테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너무 흥분돼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일 테니까요. 그럼 그는 늘 부르던 애칭으로 불러주겠죠. 나의 자그마한 아내여...'
그러던 어느 날 샤플리스와 이들을 만나게 해 줬던 중매쟁이 고로가 찾아옵니다. 샤플리스는 사실 핑커톤이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읽어주려고 온 거예요. 미안하지만 사실은 어쩌고 저쩌고 등등의 뻔뻔한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런 곤란한 임무를 수행하러 온 샤플리스에게 이 순진무구한 일본 아가씨가 묻는 말 좀 들어보세요.
"미국에서는 개똥지빠귀가 언제 둥지를 트나요? 남편이 개똥지빠귀가 둥지를 다시 틀 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본에서는 이미 세 번이나 둥지를 새로 만들었거든요... 당신네 나라에서는 그 새들이 둥지를 여기보다 덜 자주 만드는 건가요?"
당황한 샤플리스는 자신은 조류학자가 아니라 잘 모른다며 얼버무립니다. 임기응변이 대단하죠. 그 와중에 중매쟁이 고로는 돈 많은 이혼남인 야마도리와 결혼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합니다. 나비부인은 물론 불쾌해하죠. 여전히 그럴리는 없지만 당시의 일본 결혼법이란 게 정말 얼토당토않았던 게, 999년간 결혼 계약을 맺고 매 월마다 결혼을 취소할 권리를 갖게 되는데, 그 권리가 남자 쪽에만 주어진다는 점이었어요. 고로는 나비부인에게 빈정대며 아직도 결혼한 상태인 줄 아냐고 말하는데, 나비부인이 발끈하며 샤플리스에게 묻죠.
"나는 일본의 법을 따르지 않고 남편 나라의 법을 따릅니다! 미국에서는 이혼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맞죠?"
샤플리스는 그렇다고 수긍합니다. 문제는 머잖아 핑커톤이 탄 배가 항구에 도착할 예정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샤플리스는 빨리 핑커톤의 편지를 읽어주려고 하는데, 사실 편지의 내용은 핑커톤 자신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미리 샤플리스가 편지를 통해 '예고' 해주길 바랐던 거예요.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만일 그 작고 사랑스러운 아가씨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를 대신해서 조심스레 그리고 신중하게 그녀의 마음을 준비시켜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뭘 준비시키냐고요? 청천벽력의 소식을 맞이할 준비시키라는 건데, 그저 남편이 돌아온다는 내용에 나비부인이 너무도 들떠 버린 거예요. 샤플리스도 그 상황에 차마 끝까지 내용을 알려줄 수가 없어 편지를 구겨 치우며 외칩니다.
"이런 망할 악마 같은 핑커톤 같으니!!"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한 거죠.
샤플리스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만일 핑커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겠느냐, 차라리 야마도리와 결혼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물어봅니다. 너무 당황하고 화가 난 나비부인이 하녀 스즈키에게 손짓하죠. 그녀가 방에 가서 조용히 데리고 나온 건 두 살 먹은 금발머리의 남자아이였어요. 결코 나비부인이 미국인 남편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던 거죠.
핑커톤이 아이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아직 모른답니다. 아이는 그가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태어났다고 이야기해요. 관객 입장에서 애초 핑커톤이 떠날 줄은 알았지만 너무 빨리 떠난 거 같아요 그렇죠? 아 이런 정말 나쁜 남자분!
이쯤 되니 나비부인도 뭔가 낌새를 눈치챈 거 같아요. 샤플리스에게 말합니다. 가서 핑커톤에게 아이에 대해 말해달라고.. 그리고 그가 서둘러 오는지 안 오는지 기다려보자고 해요. 그리고는 자리를 뜨려는 샤플리스에게 아이의 손을 쥐여줍니다. 샤플리스가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자 나비부인이 이렇게 답해요.
"오늘 나의 이름은 '슬픔'이지만, 아빠에게 전해주세요.. 아빠가 돌아오는 날 나의 이름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요,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려옵니다. 커다란 범선이 항구에 들어왔어요. 그것은 바로 에이브라함 링컨호, 핑커톤이 타고 있는 배였던 거죠. 나비부인은 항구를 바라보며 너무 기뻐합니다. 그거 보라고! 그가 돌아왔다고! 모두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고구마 백개 먹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결혼식날 처음 핑커톤이 자신을 봤던 그날과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겠다며 목욕재계합니다. 혼인 때 입었던 옷도 꺼내 입어요. 아이도 단장시키고 자신도 곱게 화장을 합니다. 밤은 깊어가고 모두 잠이 들었는데, 나비부인은 꼿꼿이 앉아 남편을 기다립니다. 이때 등장하는 허밍 코러스가 또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이 쓸쓸한 상황을 무척 슬프고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요. 한번 들어보실까요.
날이 밝아오고 꼬박 밤을 새운 나비부인은 잠든 아이를 안고 방에 들어가 잠이 들어요.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핑커톤과 샤플리스가 찾아왔어요. 핑커톤은 잠든 나비부인을 깨우지 말라며 3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집안을 둘러봅니다. 이 나쁜 남자분의 몇 걸음 뒤에는 그의 미국인 부인, 케이트가 함께 대동했어요.
핑커톤은 샤플리스에게 말합니다. 나비부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아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고 말을 해요. 샤플리스는 연약한 그녀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느냐며 타박을 주고요, 핑커톤은 자신의 비겁함에 도저히 나비부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아 뛰쳐나가 버립니다. 케이트가 스즈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데려가 잘 키워주겠노라 얘기를 전해달라고요.
나비부인이 밖으로 나와 울고 있는 스즈키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케이트도 발견하죠. 그리고, 그녀는 곧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립니다. 나비부인은 생각을 정리하고 얘기해요. 30분 안에 핑커톤이 직접 오면 내 아이를 보내주겠다고요. 모두가 자리를 뜨고 나비부인은 쓰러져 웁니다.
나비부인은 무릎을 꿇고 조상신들에게 기도를 올린 후 일어나 아버지의 칼을 집어 들어요. 칼에 키스를 하고 거기에 새겨진 문구를 읽습니다. '영광스럽게 살지 못할 바엔 영광스럽게 죽어야 한다'
아이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나비부인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요.
"엄마의 결정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엄마를 기억해 줘.."
그리고는 아이의 눈을 가립니다. 아빠를 맞이할 때 흔들라며 조그마한 미국 국기를 손에 쥐어준 채로요.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그녀는 병풍 뒤로 들어가 자결합니다. 그녀는 쓰러지고 뒤늦게 나비부인을 부르며 핑커톤이 뛰어 들어오지만 때는 이미 늦어 그녀는 세상을 떠난 뒤였죠.
너무 슬픈 결말입니다. 그녀의 순수했던 마음이 전혀 순수하지 못한 마음에 짓밟힌 것 같아 많이 안타깝고 안쓰러운 작품이에요. 스토리를 펼쳐놓는 동안 사실 푸치니의 음악 자체가 너무도 훌륭한 분위기 메이커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음악을 삽입해 봤어요.
한 가지만 더 들려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해 볼까 하는데요, 마지막 부분 핑커톤과 샤플리스가 찾아왔을 때, 스즈키와 함께 이 세 사람이 함께 부르는 삼중창이 등장하거든요. 핑커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는 내용이고, 샤플리스는 핑커톤을 나무라기도 하고 스즈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요, 스즈키는 이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한탄하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오페라의 묘미라 한다면, 여러 명의 생각과 대화를 이렇게 화음으로 담아 아름다운 음악 한 곡에 다 담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람이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다 이해하려면 (설사 모국어일지라도) 자막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요,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빅토르 위고가 희곡에서도 오페라처럼 여러 사람이 할 말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었다지요. 세 사람의 삼중창 한번 들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