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만을 줄곧 찍어 온 이창재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독특하다. ‘노무현입니다’라는 다큐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보다 앞서 찍은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종교적이고 영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함께 이야기 나누려는 2014년 작 ‘목숨’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말기 질환 환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호스피스 종사자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닥뜨리게 하는 영화이다.
감독은 호스피스에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돌봄 종사자들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본다. 호스피스 병동이니 왠지 엄숙하고 무겁기만 할 것 같지만, 그곳에도 기쁨과 유머가 있고 일상의 소소한 갈등과 부딪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런 일상이 마음을 울리는 것은, 드러내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멀지 않은 시간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은 많이 있지만, 이창재 감독의 ‘목숨’이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환자와 가족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그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정성껏 길어 올리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호스피스 환자 당사자와 가족들의 아주 내밀한 곳까지를 들여다보는데, 이것은 그가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대상자를 만나기 때문이고, 그런 애정은 기술적인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성싶어 보인다.
‘목숨’에 앞서 이창재 감독이 찍은 영화는 봉쇄 사찰인 백흥암에서 수행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인 ‘길위에서(2012년)’이고, 그보다 앞서 찍은 영화는 무속인들의 신내림과 무병을 주제로 한 ‘사이에서(2006년)’이다. 그러니까 그는 영적인 것, 종교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이런 관심은 단순히 외부자가 영화의 소재로 삼기 위해 한때 기웃거려 보는 피상적인 호기심이 아니며, 감독 스스로가 영적인 질문을 오래 품은 채 나름의 곡절과 수행 과정을 지나온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주제와 관심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사람이 어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뛸 수 있을까. 이창재 감독이 호스피스 이야기를 다큐 영화로 만들게 된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앞선 영화들을 만들면서, 그리고 자신만의 화두를 붙들고 수행하면서 쌓아 온 내면의 힘을 바탕으로 이 영화에서 대상자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꽤 오래전에 어느 지역의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 연자로 가서 ‘암 환자와 명상’이란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임상 의사도 아닌 내가 호스피스 환자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당시에 내가 속한 대학병원 암센터에서 진행하던 암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이완과 명상 프로그램의 안내 경험 때문이었는데 그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 발표에 앞서서 여러 호스피스 기관들이 했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는 젊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환자를 위해 센터와 가족이 힘을 모아서 결혼식을 준비했던 이야기, 가족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위해 기력이 쇠해 잘 걷지도 못하는 환자를 말 그대로이고 지고 다니면서 함께 여행을 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밖에도 여러 호스피스 프로그램 경험이 발표되었다. 그 구체적으로 따뜻하고 아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호스피스 센터에서 널리 시행하는 프로그램인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건만 유독 마음이 출렁였던 건 환자와 가족을 보살피면서 돌봄 종사자들이 느꼈을 감정과, 온 마음과 몸을 기울인 그 이들의 수고가 간곡하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고 난 끝이라 정작 내가 발표할 때는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창재 감독의 이 영화에는 호스피스 환자의 가족과 돌봄 종사자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핍진(逼眞)함이 있다. '애정이 안받침된 객관적인 거리두기'라고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화면에서는 지나치게 감상에 빠지지는 않은 채로 대상을 감싸는 슬픔이 전해진다. 그 서늘한 껴안음이 보는 이에게는 더 큰 슬픔과 공감으로 다가와서 마음이 사방으로 울렁이고,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2013년 KBS에서 방영했던 호스피스 다큐멘터리 ‘블루베일의 시간’에서, 호스피스를 카리스마로 하는 수녀회인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소속 박삼화 스텔라 수녀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삶하고 죽음은 같이 붙어 있어서... 그래서 삶을 잘 살아야 죽음도 잘 사는 것 같아요.”
참으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말씀이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죽음도 잘 살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죽음을 떠올리기 싫어하지만, 죽음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삶을 잘 살아낼 방도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출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인데, 신에게 인간에 대해 가장 신기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셨단다.
“살 때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것처럼 죽는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타인의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우므로, 흔히 우리는 그 일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나는 저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라고 위안 삼곤 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처럼 엄정한 진리가 또 있을까. 타인의 죽음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동정으로만 바라보는 한,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이와 나의 죽음이,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죽음이 일상적인 삶과 겹쳐져 있는 엄연한 실재(實在)임을 제대로 살피고 받아들일 때 또한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목숨’은 그렇게 우리에게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지금 잘 살고 있느냐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죽음을 잊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