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어 본 적도 말을 더듬어 본 적도 없지만, 맡아야만 하는 일과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부담을 느낀 적은 당연히 있고, 두려움이나 열등감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느껴 본 적도 꽤 있다.
통치하는 자로서 오직 한 명뿐인 왕과, 그의 통치를 받는 자로서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신민-臣民, 매우 고루하게 들리지만 왕이라는 단어와는 짝을 잘 이루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 좌절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위해서 왕위를 포기한 형 때문에 앨버트 왕자는 어쩔 수 없이 영국의 왕위를 이어받는다. 하지만 그는 말더듬이라는, 실질적인 통치권이 없는 상징적인 군주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할 대중연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이런 약점을 지닌 앨버트 왕자(후에 조지 6세가 된다)와 그의 장애를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라이언) 로그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앨버트 왕자는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될 법한 선천적인 지위를 타고 났지만, 자신의 장애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한다. 그에 비해서 치료사인 라이언은 어떤 세속적인 자격도 갖추지 못했지만 - 영화에는 그가 박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 자신의 치료 경험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사회적인 지위들, 그러니까 우리가 붙이고 사는 딱지들이 다른 사람과의 참되고 풍성한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가 된다. 왕족에게는 어쩌면 딱지에 따른 그런 차이가 너무도 당연하고 강력한 것이라, 라이언이 앨버트 왕자를 ‘버티’라고 부르겠다고 하자 앨버트 왕자는 가족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못한다고 펄쩍 뛴다. 하지만 라이언은 자신의 치료실에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해야 하며, 친구가 되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그러한 관계로부터 비로소 치료가 시작된다.
실제로는 라이언이 왕자를 ‘버티’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못했고, 영화에서처럼 평등하고 분방한 관계를 맺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왜 영화에서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설정이 인간 관계의 보편적인 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너무 높은 지위, 영향력이 큰 사회적인 위치는 때때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 그러니까 스스로가 참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사실은 스스로를 이런 딱지들로부터 놓아줄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딱지가 아님을 알아볼 수 있다. 영화에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우리가 어떻게 참된 인간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훨씬 호소력 있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학력이나 지적인 능력, 재산이며 용모, 사회적인 지위나 소속 따위들은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도구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입고 있는 옷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더 풍료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주어진 것일 뿐 그 자체로 나일 수는 없다. 기왕이면 갖고 있는 옷들로 분위기에 맞게 잘 차려 입으면 좋지만, 그 옷을 입었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거나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많은 경우 그 옷은 내가 직접 짓거나 만든 것도 아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라서 왕이라 한들 다를 리 없다.
자신에게 부과된 역할이나 지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그것이 그저 도구이거나 옷일 뿐임을 알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주어진 재능과 도구를 잘 사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성장이고 성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보편적인 주제를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공감할 수 있게 보여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면 킹스 스피치는 좋은 영화의 범주에 들어갈 것 같다.
섬세하고 유약하지만 강인한 면이 있는 조지 6세 역을 콜린 퍼스가 맡았다. 콜린 퍼스는 이 역으로 201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말을 더듬을 때의 그 사실적인 느낌이라니!
그를 치료하는 언어 치료사인 라이언 로그 역은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 바르보사 선장 역을 맡았던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다. 얼핏 보기에는 바르보사 선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 보다 보면 어쩐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두 주연 배우의 호연(好演)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랑을 위해 왕좌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 역의 가이 피어스나 조지 6세의 아내를 연기한 헬레나 본햄 카터도 좋은 연기를 보여 준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거리와 사람들의 복식을 꼼꼼하게 재현해서(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보는 재미가 있고, 영화에 사용된 클래식 음악이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세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들도 영화를 한층 분위기 있게 해준다.
영화를 보노라면 ‘왕이라는 직업도 참 고달픈 일이구나’ 싶어지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역시 왕은 왕인 거니까‘라는 부러움도 살짝 든다. 그렇지는 하지만 시켜준대도 할 것 같지는 않다. 근데 왜 안 시켜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