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 콰르텟
더스틴 호프만 감독, 매기 스미스, 톰 커트니, 빌리 코놀리, 폴린 콜린스 등 출연, 2012년 개봉
어느덧 오십 중반을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점점 늘어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잘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관절 가동범위는 자꾸만 줄어서 잘못 다리를 뻗었다가는 몇 주 동안 파스를 치덕치덕 바르면서 지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런저런 증상과 질병도 차곡차곡 생겨나면서 신체적으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새로운 걸 배우기는 더 어려워지고 이미 익힌 것들도 자꾸만 잊어버리는데 잘난 척, 많이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오히려 더 커져서 조금만 살피지 않으면 교만하고 강퍅해지는 것도 금방이다.
그다지 대단한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도, 크게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닌 나도 이럴진대 한때는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으면서 뭇사람들에게 칭송받던 스타였다면, 하지만 진작 전성기는 지나가 버린 데다 늙고 병든 몸이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남은 삶을 품위 있게, 외롭지 않게 잘 갈무리할 수 있을까.
한창일 때는 열두 번 이하로 커튼콜을 받은 적이 없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진 호튼. 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관절염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지경인데 경제적인 형편도 썩 좋지는 않아서,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인 비첨 하우스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 사실조차 죽기보다 싫은데 하필 그곳에는 젊은 날 자신의 실수로 결혼한 지 아홉 시간 만에 파경을 맞아버린 남자 레지날도 페짓이 살고 있다. 진은 과연 이 양로원에서 순탄하게 지낼 수 있을까.
개봉 당시 이미 칠십대 중반이었던 더스틴 호프만이 감독하고, 주요 출연 배우들도 모두가 칠십 대를 넘긴 영화 ‘콰르텟(Quartet)’은, 그렇게 한때는 잘 나갔던 음악가들이 자신의 노년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따뜻하고 경쾌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떤 이는 관절염을 앓고 있고 어떤 이는 치매이며, 어떤 이는 전립선에 문제가 있지만 어쨌거나 그럭저럭 일상을 꾸려가고 있던 비첨 하우스의 거주자들에게 왕년의 스타 진 호튼의 등장은 반드시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잊어버리고 있던 열등감을 되살리거나 젊을 때의 라이벌 의식을 되씹게 하고 마음속에 오래도록 묻어 두었던 사랑과 배신을 떠올려야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당혹감은 진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져 버린 레지날도를 만나는 일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쇠락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야만 하는 일도 모두 너무나 끔찍하다.
클래식 음악가라는 다소 극적인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들과 평범한 양로원에 비하면 거의 궁궐처럼 보이는 비첨 하우스는 관객들에게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안에서 겪게 되는 노년의 감정과 상황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래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장면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마음 한편이 아련해지기도 한다. 결국 누구나 늙고 병드는 것이고, 그 엄연한 현실을 피할 도리가 없다면 그다음은 그 상황을 어떻게 직면하고 받아들이는지가 남은 시간 동안 우리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거니까. 그리고 사실 그런 과정은 꼭 많이 늙고 난 다음에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내려가는 법을 끊임없이 직면하고 배워야 하니 말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주인공 레지날도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봉사 오페라 강의에서, 오페라에서는 칼에 찔리면 피를 흘리는 대신 노래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래와 음악이 흘러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을 밖으로 다 쏟아내는 게 오페라라고 부연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소년들은 지금은 힙합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한 소년이 자신의 이야기와 오페라에 대한 내용을 힙합으로 노래하면서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두 장르가 서로 어울리고 만나게 된다.
예술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묻어 두었던 우리 안의 다채로운 감정과 추억들을 만나고 표현하게 하는 것, 그래서 조금은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해묵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존심에 발목 잡혀서 허덕이거나, 쓸데없이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하느라 삶을 낭비하는 대신 지금의 삶을 충만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해 주어서 말이다. 장르가 오페라이든, 대중가요이든, 영화이든 그림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나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고 보았던 영화 한 편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맑히고 드러내 주었는지 대개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쌓아두지만 말고 다양한 예술적인 활동을 통하여 잘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지고, 그런 정서적인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하는 능력이 늘어가는 것이 심리적인 성장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정서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통해서 환기와 정화를 체험하는 것, 그것도 가능하다면 자주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 나이가 얼마이든, 늙었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가끔씩 음악회도 가고 전시회도 둘러보고 가까운 사람과 영화관에도 가고 하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영화도 역시 예술적인 정화의 경험을 전해 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어찌 보면 밋밋하고 예측 가능한 전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노년의 음악가들이 모인 양로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자칫 지루해지거나 뻔해지기 쉬울 텐데, 친숙하고 따뜻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비첨 하우스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서 푸근한 마음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음악이 중요한 영화이니 가능하면 좋은 음향이 받쳐주는 여건에서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일 좋은 건 영화관에서 보는 거겠지만 재개봉을 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니, 그리고 그럴 리 아무래도 만무하니 나름대로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다행히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위해서 화질이 괜찮은 프로젝터와 비교적 넉넉한 출력으로 멀티채널이 지원되는 음향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학생들이 나눈 이야기 중에서는 이렇게 좋은 시스템으로 보지 않았으면 영화가 주는 감동과 메시지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겠다는 것도 있었다. 수업을 위해서 장비를 준비하고 세팅하는 일은 꽤 번거롭지만, 참여하는 학생들한테 충분히 영화에 집중하고 좋은 경험을 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 번거로움이 보상되는 마음이 든다.
좋은 음악이 짧지만 적절하게 사용되고 어우러져서 많은 장면이 우아하고 따뜻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사중창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이여(Bella figlia dell’amore)”를 놓치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와 함께 흐르는 엔딩 크레딧을 잊지 않기를. 영화 전체를 꿰어 주는 감동과 탄식을 만나게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