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 존큐
닉 카사베츠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 2002년 2월 국내 개봉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돈 걱정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고만고만한 여건 가운데서 적당히 선택한, 사실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서 선택되었다고 해야 더 맞을 직업과 업무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토록 그 일이나 그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마련이다.
전통적인 농경 사회나 봉건제 사회에서는 타고 난 신분을 바꾸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비록 아주 넉넉하거나 풍족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익힌 일을 하면서 사는 동안에는 생계 수단의 아주 급격한 변동이나 위험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장경제 사회, 그것도 금융자본주의가 대세가 된 사회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배운 일을 성실히 하면서 하루하루를 꾸려 가고 가족을 돌보면서 가능하면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내 삶의 조건들은 내 능력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기전을 통해서 결정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 과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뿐더러 작은 영향력조차 행사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 그런 처지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조건이 점점 불안정해지는 한 남자가 있다. 철강 공장 노동자로 성실히 살아가지만 수입은 자꾸 줄어서 아내의 출퇴근용 자동차까지 은행에 압류당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투잡도 뛰어보려고 하고, 어떻게든 가외의 수입을 만들어서 하나뿐인 아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생계를 꾸려 보려 애쓰지만 나빠지는 형편을 되돌리기에는 그가 가진 능력이 너무 뻔해 보인다.
비록 처지는 어렵지만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남편임은 분명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삶의 작은 기쁨을 통해 힘을 얻으려는 순간, 동네 야구대회에 나가 달리던 아들이 쓰러진다.
급하게 방문한 병원에서의 진단 결과는 이미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린 심장과 이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은 심장 이식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가 가진 의료보험에서는 심장이식 비용은 보험급여 대상이 아니라는 통고를 받는다. 냉정한 병원 책임자와 심장외과 의사는 의료서비스에는 비용이 든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하고, 그저 편안하게 죽도록 하는 것도 선택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치료법이 있는데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으니 주인공 부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면서 이리저리 애써 보지만, 이식 비용 십만 불은 이 가난하고 선량한 이들에게 너무 크고 까마득한 비용이다. 잘 될 거라는 소리는 그만 하고 뭐든지 해보라는 아내의 날카로운 비명을 들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수만 갈래로 흩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가슴 아프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연을 보여주고 난 후, 거기서부터 영화는 액션물의 길을 택한다. 현실에서라면 절대로 가능할 리 없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이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마음을 졸이면서 그를 열심히 응원한 결과 기적적인 해피엔딩이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우리는 물개박수를 보내고 꽤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린 후에, 흐뭇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현실은 전혀 다른 길로 나 있는 게 아닐까. 비정규직이라 보험급여에 수많은 제약이 붙어 있고, 그나마 고가의 시술은 아예 보험적용 대상이 되지도 않는 빈약한 민간보험을 가진 수백만, 혹은 수천만의 다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두가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있지야 않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고가의 치료비가 필요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모두 총을 들고 자기 동네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2년 아들 부시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 촘촘하고 복잡하게 짜여져 있지만 결국은 보험회사들의 이득이 가장 우선순위일 수 밖에 없는 민간의료보험제도를 가진 미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면서 그런 줄도 모른 채 내몰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날마다 발견된다.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고 필요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이 원칙인 공적 의료보험제도를 택하고 있고 보장률도 과거보다는 높아졌다지만, 중병에 걸리면 본인부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데다 소득이 끊어져 금방 빈곤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비급여 시장의 틈새를 노려서 만들어진 실손형 민간보험때문에 여유가 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은 치료와 이득을 얻는, 빈익빈 부익부의 이상한 상황도 여전하다.
대중성을 염두에 둔 상업영화이므로 실제 현실과는 맞지 않는 상황(응급실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은 좀 심했다)이나 이야기 전개에서의 비약과 과장이 꽤 눈에 띄지만, 심하게 개연성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주연을 맡은 덴젤 워싱턴은 아버지 역을 맡아 누구라도 뭉클하지 않을 수 없는 가족애로 영화의 이런저런 단점들을 다 벌충했다고 할 만큼 간절하고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보건학 혹은 예방의학 수업의 주제로 돌아오면, 결국 질병 치료와 건강 보장이 단순히 의학적인 문제일 수만은 없음을 영화는 여러 갈래로 보여준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속담처럼 국가가 모든 사람의 삶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겠으나,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여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얼마나 보장하는가가 한 국가의 품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문명의 척도라는 말이 있다. 아프지 않을 수는 없고 가난한 사람이 없을 수도 없지만 적어도 그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거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면 좋은 국가, 좋은 사회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2021년 7월에 개최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무역개발이사회에서 우리나라가 그룹 B로 지위 변경이 되어서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단다. 축하할 일이지만, 선진국이라는 명칭이나 1인당 국민소득 수준같은 것이 좋은 사회임을 보증해 주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소득 격차는 점점 커지고 집값은 끔찍하게 올라서 미래가 너무도 불확신한데, 덜컥 병이라도 나면 아프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제도를 고치고 다듬어서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을 좀 더 온전히 품을 수 있도록 나아가는 길 위에 서 있다고 하겠다. 모두의 삶이 계속되는 한 그 길도 완전히 끝날 리는 없겠지만 함께 힘을 모으면 몇 걸음은 더 나갈 수 있을 것이고, 딱 그만큼 좀 더 많은 이들이 좀 더 건강하고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우리 공동체가 인간다운 삶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표지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