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들보다 좀 둥글둥글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다 타고나기를 웃상이라 눈만 마주쳐도 미소부터 지어지는 타입이에요. 첫 만남에도 웃고.. 쑥스러워도 웃고, 때론 다수 속에 묻혀 굳이 웃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도 제 눈과 입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 보니 어디 가서 인상 좋다는 소리는 좀 듣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얼굴만 둥글둥글한 게 아니라 성격도 좀 모나지 않게 타고난 편이에요. 좋은 게 좋은 거지 싶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 맺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대부분은 좋게 넘어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무조건 참지는 않습니다. 보기보다 아닌 건 아니라고 잘 말하고요 요구할 건 모자라지 않게 넌지시 요구도 잘하는 편입니다.
반면 제 옆에 있는 남자는 표현이라는 걸 잘 못하는 로봇 같은 남자예요.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았지만 수 세월 동안 보아온 표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요. 얼마 전 딸내미가 엄마아빠의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는 어떻게 모든 사진에 표정이 다 똑같아?" 라구요. 놀라야 하는 상황이나 웃긴 상황이나 화가 나는 상황에도 늘 변치 않는 무표정. 무표정이라는 겉모습 속에 굉장히 여린 마음이 숨겨있지만 그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요.
이런 그는 거절이란 걸 잘 못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거절하는 걸 제일 힘들어하는 사람이에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얼마나 거절해야 할 일이 많겠습니까?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하는 게 전쟁터 같은 조직생활인데, 집에 와 힘들다며 제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는 걸 보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았어요. 감정이 몽글몽글한 애교 많은 여자가 표현이 서툴고 자신의 감정조차 잘 알아채지 못하는 무뚝뚝한 남자를 만난 거죠.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성향이 있습니다. 저는 외향형(E)에다가 감정형(F)의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관계가 중요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또한 무엇을 하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이지요. 반면 남편은 내향형(I)인 데다가 극 T인 사고형의 사람이에요. 그는 어려운 데이터 분석은 몇 분 안에 척척해내면서 미묘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사람이에요. 이처럼 타고난 성향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형의 사람은 감정형의 언어를 사용하고, 사고형의 사람은 사고형의 언어로 말을 합니다. 말하는 스타일이 분명히 다르죠. 서로 다르게 타고난 것에 불과한데, 서로의 다름으로 대화 시작부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 한 기업에서영업하시는분들과 인연을 맺을 때였어요. 각 전시장에서 고객분들과 직접 소통하시는 세일즈 팀원 분들은 대인관계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고객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친근하게 설명하며, 상황에 맞게 센스 있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분들은 분위기에 맞게 고객니즈를 순간순간 파악하면서 스무스하게 응대를 하시곤 했습니다.
반면 모 연구소의 연구원분과 교육을 진행할 때에는 많이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연구원분들은 시종일관 과묵하고 일관된 표정으로 앉아계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앞에서 제가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말이지요. 이런 차이는 각 직군의 특성과 업무 방식에서 오는 부분도 있지만, 그분들의 타고난 성향에도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180도 다른 방식으로 그분들에게 다가서고 소통을 해야 그분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지요.
자신이 평소에 어떻게 말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대화의 성공을 좌우할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자신의 말하는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대화 스타일을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똑같은 상황을 A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상대방은 B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대화 스타일을 이해하며 조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어떤 대화도 술술 풀어나갈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될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하는 특성을 알고, 그에 맞춰 대화의 주파수를 맞추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 내가 T 성향이 강하다 보니 내 말투가 조금 딱딱하고 업무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이 조금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내가 F 성향이라서 감정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T 성향의 부장님과 대화할 때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겠어. 다음부터는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준비해서 보다 명확하게 의견을 전달해야겠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진정한 소통은 자신의 말하는 스타일을 고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성향과 대화 스타일을 이해하며 그에 맞는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말하는 스타일을 기본으로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의 성향과 말하는 스타일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하고,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다 보면 더욱더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