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얗게 팡'팡' 튀어 오른 팝콘 같기도 하고 보송보송 솜사탕 같기도 한 벚꽃을 보기 위해 후다닥 저녁을 먹고 노란 조명이 비추는 산책기로 들어섰다.
"오늘 중요한 발표는 어땠어? 별일 없었어?"
"응... 별일 없이 끝나긴 했는데 그냥 기분은 좀 별로네"
"왜?"
"지난번에는 말도 술술 잘 나오고 목에 힘이 안 들어가 편안하게 잘했는데이번에는 그냥 뭔가 좀 위축되더라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잘 될 때도 있고, 좀 안될 때도 있는 거지 뭐~"
"이번달 실적이 좀 안 좋다더니.. 맘속에 그런 부담이 있어서 알게 모르게 위축됐던 거 아닐까?"
"회사 오래 안 다닌다며~ 실적이 남편점수는 아니니까 쭈굴스러워지지말고 그냥 맘을 편하게 먹어."
"그러게..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랬나 보다."
........
"난 오늘 아줌마들 만나고 왔어. 개학하고 나니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 만나느라 바쁘다 바빠"
"그런데 왜 점점 만나고 오면 올수록 맘이 허한 걸까?그냥 혼자만의 시간도 괜찮은 거 같고.. "
"어떨 땐 좋다가도 또 어떨 땐 웃고 떠드는 수다가 다 부질없게 느껴기도 하고.."
"그러게... 나이 들어 그런가. 나도 요즘엔 사람들이랑 점심 먹는 것도 좀 귀찮아서 혼밥 후딱 먹고 청계천 걷잖아. 그냥 혼자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하면 좋더라고"
"그지.. 우리 왜 그러지? ㅎㅎㅎ 우리 나이 들었나 봐 ㅋㅋ"
다음 날 독서를 절대 하지 않는 남편이 점심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하다 서점을 들렸나 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책을 찍어 보내더니 "우리가 어젯밤 나눴던 얘기가 여기 다 있네?" 한다.
1800년대 사람이 품었던 마음이 어찌 이리 똑같을까. 사람들의 일생이라는 게.. 그냥 다 이렇게 비슷한가 보다. 누구보다 치열했던 우리의 30대도 그렇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무언가 원하는 바를 이뤄 어느 정도 결과를 기대하기도 하는 40대.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메여있어 여전히 바쁘고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여유는 없는.. 그러면서도 스멀스멀 가둬 두었던 내가 궁금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점.
그게 바로 우리의 지금이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한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마흔은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기이자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시기란다.
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이 출세, 부, 명예를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무게 중심이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밖에 있다. 그래서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며 더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란다. 진짜 행복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고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무게 중심을 자기 밖에서 자기 안으로 옮겨야 하며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져야만 하기 때문에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을 좇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다.
남편과 많은 얘기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우리가 뭔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무심코 행동을 해도 그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가 묻어있고 지혜로워 본연의 모습 자체로 '참 괜찮은어른'이다.. 말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직은 많은 상황들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 나는 어떤 사람 이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더 나은 관계를 맺을까?.. 하며여러 가지 경우를 따져가며 생각들을 하는데, 어릴 적보다는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었나 돌아보면 아직도 부족함 투성이고 후회되는 말과 행동이 많다.
난 이곳 브런치에서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게 참 좋다.
'나도 10년 20년 후엔 이런 삶을 살아야지... 내가 훗날 시어머니가 되면 이렇게 배려해야겠다..'등등 다양한 인생 얘기를 들으며 마음 깊이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