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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Oct 28. 2023

스승님과 함께한 시간들...

스승님과 함께한 시간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출가 전부터 영화 스님과 같이 훌륭한 스승님과 동행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은근히 그런 걸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간과 기회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노산사는 아주 작은 절이고, 볼품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화 스님에게는 제자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께서 알려주시는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지식이고 유산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스승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영화 스님을 모시고 많은 곳을 가보았습니다. 출가 전부터 영화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선 명상을 전하고 가르치는 많은 일에 참여했습니다. 스님은 늘 유쾌하고, 많은 걸 가르쳐주셔서 즐거웠습니다. 영화 스님과 함께 한국뿐 아니라 뉴욕, 샌프란시스코,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등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영화 스님에게는 평범한 대화 속에도 늘 놀라운 지식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분명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들었는데, 영화 스님의 통찰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영화 스님은 권위감이나 무게 없는 자상한 아버지 같았습니다. 어쩔 땐 천방지축 어린아이 같기도 했습니다. 농담도 많이 하시고 밝았습니다. 나는 그런 스승님과 함께 있는 사실만으로 행복했습니다. 나의 호기심과 배우고 싶은 욕망을 채워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니 스님은 늘 제자들을 곁에 두고 끊임없지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지나서 보니 스님이 걷는 모습, 대화하거나 식사하는 모습, 옷 입은 모습,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모든 것에서 배울 것이 많았는데,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출가 전, 영화 스님과의 여행, 2018

수행이란 우리의 문제들을 직면하는 일.

영화 스님은 선 명상을 지도하면서 우리들에게 늘 결가부좌로 앉도록 훈련했습니다. 저는 사실 불교나 선 명상보다는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스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결가부좌로 앉았을 때 겪는 통증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통증을 피하고 싶은 욕망보다 더 컸습니다. 


하지만 영화 스님은 결가부좌의 아픔과 괴로움보다 더 많은 문제들도 만들어줬습니다. 예를 들어 스님은 같이 다닐 때 사전 계획을 세우거나 더 효율적인 방향을 제시해도 잘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번뇌로울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우리 같이 갈래?"라고 묻기만 하면, 저는 절대 주저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오브 콜스 마스터! 아이 워나 고!"라며 따라나섰습니다. 아무리 큰 사업의 기회가 생기더라도 스님과 함께 할 시간이 있다면, 바로 버렸습니다. 그와의 시간이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님 곁에 있을 때에는 세상의 모든 문제와 장애가 더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승님과의 행복한 시간이 끝나면 나의 문제들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꼬고 아픔을 참아야 했고, 앉을 수 없으면 단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상태가 더 좋을 때, 그것이 어떤지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더 좋은 상태가 돼 보지 못하면, 문제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명상이나 수행을 해보지 않으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또는 명상에서의 작은 결과만으로도 그냥 만족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경험하거나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은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높은 기준을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구글 초청 선명상 수업, 2018

글쓴이: 현안(賢安)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선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으며, 영화 선사의 경전 강설집인 『불유교경』(어의운하, 2023)의 번역 및 출판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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