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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Oct 26. 2023

아메리칸 선禪  
그리고 스승과의 첫 만남

미국 영화 선사와의 인연

제가 처음 선禪을 접한 곳은 미국 노산사(廬山寺, Lu Mountain Temple)였습니다. 노산사는 영화 선사의 첫 도량이며, 그 이름은 정토종 발상지인 중국 노산(廬山 또는 여산)에서 왔습니다. 

인터넷에서 토요 명상 교실을 무료로 한다는 광고를 보고 노산사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노산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거기엔 영화선사와 스위스계 미국인 제가인 현계스님뿐이었습니다. 한국 전통사찰의 모습에만 익숙한 나에게 노산사는 너무 낯설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낯설고,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노산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영화스님의 선 다르마톡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에게 다르마톡은 가장 매력이었습니다. 나는 법문 때마다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영화스님은 질문들 중에 멍청한 질문이나 쓸모없는 질문이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제가 했던 모든 질문에 술술 답해주셨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아라. 그리고 참아라.'

처음 선 명상을 배웠을 때, 지침은 간단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아라. 그리고 참아라.' 그래서 일단 배운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멈추지 않고 달리는 생각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명상하는 일도 사업상 필요한 중요한 행사일정처럼 여겼습니다. 아침 6시만 되어도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생각과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명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앉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 다리가 너무 뻣뻣해서 결가부좌로는 할 수 없었지만, 반가부좌로 30분씩 앉았습니다. 사실 앉아서 명상은 커녕 쓸데없는 생각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부터 앉아서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지금 이게 명상하는 건 맞나?', '중요한 이메일이 왔겠지?', '아직 30분은 멀었나?' 등등 많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명상으로 어떤 결과가 생길지 너무 궁금해서 계속 앉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앉으니 명상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근무시간 동안에는 '아하'하며 순간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음은 전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고, 몸도 가뿐해졌습니다.  

미국 노산사 전경. 사진 현안 스님.

'선칠(禪七)' 수행을 하다

매일 앉으니까 토요일이 기다려졌습니다. 영화스님의 다르마톡에 가서 명상하면서 생긴 질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은 항상 막힌 데 없이 개운했습니다. 내가 가진 여러 문제들이 다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선칠(禪七)'이라고 불리는 집중 수행 기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하려면 제대로 올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3주 동안 노산사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무턱대로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3주간의 선칠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선칠은 새벽 3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앉고, 20분 걷기를 반복하는 강력한 수행법입니다. 타고난 몸도 뻣뻣한 데다가, 결가부좌로 앉으면 최장 10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감히 선칠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선칠에 도전하는 것이 무섭지 않았고 꼭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노산사의 선칠수행

영화스님은 법문에서 곧 선칠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파서 앉을 수 없다면 절에서 부엌일을 돕거나 청소를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짐을 꾸려서 절로 향했습니다. 창피한 일이지만 첫겨울 선칠동안 잠만 많이 잤습니다. 심지어 개인용 에어베드까지 가져가서 계속 잠을 잤습니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초저녁부터 잠들어서 다음날 점심식사 시간까지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해서 늘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절에서는 계속 잠이 쏟아졌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그냥 푹 잤습니다.


잘 앉지도 못하고, 절에서 그냥 허송세월만 보내는 건 아닌지 근심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영화스님의 말만 믿고 암튼 절에 계속 있었습니다. 왠지 그냥 집으로 가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엔 하루종일 3시간만 앉은 날도 있었습니다. 조금밖에 앉질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프기도 하고, 그냥 온종일 졸린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스님과 노산사에 오는 사람들은 잠만 자고 먹기만 하는 게으름뱅이에게 아무런 질책도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칠이 끝날 무렵 영화 스님은 나에게 선칠동안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말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그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스님이 사람들에게 했던 말은 기억납니다.


“샤나는 본래 본성이 매우 착한데, 도와주려 하다가 오히려 늘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순간 가슴속에서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 후 노산사는 제게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었고, 영화 스님은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주었습니다.


청주 보산사에서

청주 보산사, 2021

보산사에서 살고 있을 때, 절에 찾아온 젊은이들을 보면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해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절에 오면 처음엔 잠을 많이 잡니다. 틈만 나면 방에 가서 잠을 잡니다. 조금이라도 눈치를 받으면 불편해할까 봐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바깥세상이 고단한 겁니다.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수행으로 이득을 경험하면 스스로 더 열심히 정진합니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불안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배운 일반적인 잣대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만, 바로 그 잣대가 사람들을 고단하게 만듭니다. 진심으로 수행해서 변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스스로 변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일단 이들에게 스스로 변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위한 진정한 수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글쓴이: 현안(賢安)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선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으며, 영화 선사의 경전 강설집인 『불유교경』(어의운하, 2023)의 번역 및 출판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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