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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Oct 30. 2023

사부(師父)의 역할

2020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청주 보산사에서 첫겨울을 맞았습니다. 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오랫동안 많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첫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스님들과 재가인들이 청주 보산사에 모여서 겨울 선칠을 했습니다. 영화 스님은 불칠이나 선칠동안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법문을 해주시는데, 우리와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이 듣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보산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줌을 통해서 영화 스님의 예전 선 법문을 들으면서 통역해 주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저야말로 그걸 통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 스님의 2013년 법문 중 '사부'라는 주제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여기서 여러분과 공유해 볼까 합니다.

청주 보산사 법당, 2021.

사부는 스승+아버지

우리는 미국에서 '사부'라는 단어를 영어로 '마스터'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티쳐(teacher)'라고도 합니다. 사실 '사부'를 영어로 온전히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부(師父)의 ‘사(師)’는 스승이고, ‘부(父)’는 아버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스터'는 완전히 정확한 번역은 아닌 겁니다. 그렇다면 스승이란 무엇인가요? 스승은 우리에게 혜명(慧命, Wisdom life)을 제공해 주는 자입니다. 그러니 사(師) 즉 스승은 지혜와 지식을 전해주고, 부(父) 즉 아버지는 우리를 보살펴줍니다. 자기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사부란 '주는 것' 즉 ‘Giving’의 개념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영화 선사와 현지 노스님, 2015.

우리 제자들은 미국에서 영화스님을 ‘마스터(master)’라고 부릅니다. 중국인들은 원래 중국어대로 ‘씨푸(师傅)’ 즉 '사부'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 명상반 학생들은 저에게 간혹 무의식 중에 '선생님'이라 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는 "아이고 죄송해요, 스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기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맘속에서 나는 그들의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도 중국인 할머니가 영화스님에게 "티쳐!"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난 그 호칭이 참 듣기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사부의 개념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출가자가 재정적인 부분을 스스로 모두 해결해야 한다면, '사부'의 단어 속 아버지[父]라는 개념도 없었을 겁니다. 스승이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제자를 꾸짖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야단치고 꾸짖을 때를 기억하나요? 불평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아닌가요? 이처럼 아버지의 역할은 교육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동양의 전통에서 스승과 아버지는 강인하고 터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자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에서 모든 교육에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스승에게서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스승이 제자들을 보살핀다는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영화 스님을 만났을 때, 그의 출가한 제자는 현계스님과 현순스님뿐이었습니다. 후에 더 많은 이들이 계속 출가했는데, 스님은 자상하고 유쾌하다가도, 제자들에게 큰소리로 야단치고 호되게 대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깝고 단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난 어제쯤 저렇게 야단쳐주지? 스님이 나한테도 거리 없이 저렇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스님은 현명합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함부로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늘 어느 정도 지킬 것들은 지켰습니다. 아무리 존경하고 고마운 스승일지라도 내 마음은 언제든 홀연히 돌변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그건 완전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후 영화스님은 나를 호되게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영화스님이 엄청나게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스님이 심하게 아픈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스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서 경전 강설을 하셨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스님은 캘리포니아 북부 산호세에서 리모델링 중이었던 금림사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저를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속은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스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병 중에도 에너지를 모아서 그렇게 하고 계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내가 못난 제자라 아픈 스승님이 기운을 소진하게 만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일어났던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평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못나고 문제 많은 나를 제자로 받아주시고, 보살펴주고 계신 영화스님께 늘 감사할 뿐입니다.


글쓴이: 현안(賢安)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선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으며, 영화 선사의 경전 강설집인 『불유교경』(어의운하, 2023)의 번역 및 출판에 참여했다. 


글쓴이: 현안(賢安) 

2012년부터 영화 선사(永化 禪師)를 스승으로 선과 대승법을 수행했으며, 2015년부터 선 명상을 지도했다. 미국 위산사에서 출가 후 스승의 지침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에서 정진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어의운하, 2021)가 있으며, 영화 선사의 경전 강설집인 『불유교경』(어의운하, 2023)의 번역 및 출판에 참여했다. 

영화 스님과 한국 첫 방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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