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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May 20. 2024

선지식: 진정한 사부에겐 비밀이 없다

여러분들은 무술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무술 영화에 보면 마스터가 학생에게 제일 중요한 기술을 하나 감춥니다. 그래서 만약 학생이 배신하고 마스터를 치려 하면, 그때 이 비밀스러운 기술, 필살기를 써서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영화에서만 그런가요? 전 무술은 못하지만 무술 영화에 보면 이것이 주요 레파토리인 듯합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선 수행을 하면서 쿵푸 영화가 더욱 흥미롭게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영화는 너무 잘 만들어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보통 계승자로 점찍어놓았던 학생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지막 한 동작을 남겨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 가차 없이 그 배신자를 죽여버립니다. 심지어는 영화 <쿵푸 팬더>에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혹시 <쿵푸 팬더>를 보셨나요? 그 영화에 보면 시푸(사부)가 ‘비밀의 문서’를 숨겨놓지 않았나요? 보통 제자가 둘 있습니다. 한 학생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리고 사부가 나와서 “너희는 내 제자다. 너희는 내가 뭘 아는지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사부님이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건 비밀이다. 왜냐면 언젠가 너희가 세계 일인자가 되고 싶다면 날 배신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선의 훈련에서는 그런 관습이 없습니다. 사부들이 뒤에 아무것도 감추지 않습니다. 절대 감추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승의 선(禪) 수행에선 선지식이란 비밀스러운 개념이 있습니다. 오직 선에서만 그런 게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왜냐하면 선에선 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쿵푸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쿵푸를 합니다. 그리고 결국 세계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선의 세계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선지식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어 합니다. 전 그렇게 들었습니다. 선지식은 전부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 한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식은 아는 것을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조사(祖師)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대승에 조사라고 불리는 개념이 있습니다. 대승에서 우리는 조사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조사는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을 다음 세대에게 확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들은 절대 뒤로 감추지 않습니다. 그런 정신을 갖고 있으므로 그들은 여러분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누군가만 있다면, 그게 누구이든 가르칩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태국인이든, 스위스인이든, 한국인이든 차별하지 않습니다. 조사 스님들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면 훈련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려운 시험을 줄 것입니다. 그 시험에 통과하면, 그건 여러분이 그들의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때 다음 시험, 그다음 시험, 또 다른 시험을 줄 것입니다. 그게 그들이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진전하면 할수록, 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계속 더 어려워집니다. 그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들은 뒤로 감추지 않습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에겐 무슨 일이 생길까요? 그때 스승님이 다 안 가르쳐 준다고, 뒤에 뭘 감춘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걸 해내지 못하고, 다루지 못한 것은 바로 학생입니다. 여러분이 시험에 통과만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더 어려운 시험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부는 학생에게 감출 게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선을 가르치는 스승은 제자들을 호되게 훈련합니다. 아주 힘든 시험을 줍니다. 그리고 그들 중 준비된 학생들은 산으로 보내서 선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침을 받는 사람도 모두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남보다 더 낫다고 느낄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늘 시험을 겪는 중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에서는 스승이 여러분에게 모든 걸 가르쳐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아닙니다. 선 수행에선 비밀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설명해주는 걸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걸 비밀로 여깁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알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선지식을 만나서 스승님이 안 가르쳐주실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을만한 그릇이 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진정한 선지식은 모든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선지식을 만났을 때, ‘난 이미 불교에 대해서 충분히 많이 알고 있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늘 더 겸손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지식을 만났을 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승의 복을 지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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