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과정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낯익은 청년이 선원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신발을 벗고 방석 위에 앉는 동작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조계사 맞은편, 종로 한복판의 작은 수행 공간.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지만, 이곳은 요즘 매일 누군가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조계사처럼 크고 좋은 절 바로 앞에 그런 선원이 생기면 누가 오겠냐"며 걱정 섞인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은, 그동안 명상 수업을 듣기 위해 분당까지 오가던 청년들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 보러 멀리까지 안 가도 돼서 좋아요."
그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속으로는 '이 자리가 정말 필요했구나' 싶었습니다.
청년들은 저를 스님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습관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저는 "그렇게 불러도 돼요"라고 답합니다. 그런 학생들이 무척 귀엽게 느껴집니다. 저를 권위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유익한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생긴 이 선원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숨통 트이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퇴근길에 가방을 멘 채 들르는 직장인, 지나가다 포스터를 보고 들어온 청년, 명상을 배우러 온 이들은 친구를 하나씩 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수행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인도, 영국, 벨기에, 미국, 그리고 스페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광화문 근처의 한국 회사에 다니며 몇 주째 명상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는 '미트업(Meetup)'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선원을 알게 되어 직접 찾아왔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온 젊은 치과의사 커플은 어설픈 스페인어로 안내하는 저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며 연신 웃었습니다.
서로 언어는 달라도, 눈빛을 마주하며 합장하는 그 순간, 국적이나 문화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통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습니다. 매주 함께 수행하는 학생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꽤 많습니다. 우리 맘속 선함을 키우는 일은 종교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을 함께 지키고 있는 스님들과 자원자들도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킵니다. 조금씩 마음을 보태며 서로 도와주고 있고, 이 공간은 이제 불교 사찰이라기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명상센터' 같은 분위기의 열린 수행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서양인 수행자들과 동양인 수행자들을 비교하며 느끼는 점도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 명상 중 생기는 여러 경계, 우리가 수행하는 방식이 왜 이로운지 등 일일이 설명을 듣고서야 납득합니다. 그리고 납득이 되어야 비로소 시도라도 해봅니다. 반면 동양인은 설명 없이도 먼저 잘 따라오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으면, 마치 동의하는 듯 따라하다가 조용히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수행은 결국 누가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