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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텅 빈다'는 말, 오해하지 마세요

by 현안 XianAn 스님

“마음이 텅 비었다.”


선 명상을 하다 보면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줄고, 말도 잦아들고, 멍한 고요가 찾아옵니다. 이 상태를 ‘공(空)’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뭔가 특별한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일시적인 고요, 삼매(samādhi)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이 상태를 체험하면서 “아, 이제 나는 공을 체험했어”라고 단정짓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공의 체험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정(究竟), 즉 아라한과의 경계에 이르러, 거친 생각뿐 아니라 미세한 의식의 움직임까지 완전히 멈춘 상태, 그 경계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공을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조차도 스승의 증명 없이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선 명상을 하다 보면 졸음과 비슷한 고요 속에 빠지거나, 아무 생각이 안 나는 듯한 멍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걸 깊은 선정, 특별한 깨달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나타나는 여러 삼매의 경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물론 선 명상에서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몸이 이완되는 상태를 경험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정진하면서 얻는 보너스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이점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합니다. 삶에서 실질적인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선 명상은 고요함 너머까지 나아갑니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괴로움, 습기, 아상(我相)까지 직면하고, 통과하고, 타파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수행하면서 때로는 불편함이 올라오고, 감정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선 명상은 괴로움을 피해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번뇌와 감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그 뿌리를 철저히 타파해 가는 과정입니다. 단지 생각을 멈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로 가는지를 꿰뚫어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멍한 고요함이 전부가 아닙니다. 선 명상은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갑니다. 거짓된 평온을 지나, 마음속 뿌리 깊은 괴로움까지 비추는 길. 그 길 위에 오늘도 앉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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