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나는 기억 속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기억은 감정으로 남고,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기억들이 우선되어 남는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가장 강하게 남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설렘 가득 안고 도착했던 새로운 나라에서,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히며 느낀 감정들을 적어나갔다.
하나씩 꺼내어 적다 보니, 그때는 잃고 아프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오히려 내가 성장하며 얻은 것들로 바뀌어 있었다.
피하고 싶었던 기억,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아픔들이 글로 승화되었다. 내 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꺼냈을 뿐인데, 그것은 어느새 나의 소유도, 나의 감정도 아닌 제3의 것이 되어 있었다. 글로 마주하고 나니, 같은 기억에서도 전혀 새로운 감정이 피어났다. 이것이 글로 아픔을 승화한다는 것일까?
그렇게 한 편, 또 한 편씩 내 안의 기억들을 글로 옮기며, 예전의 혼돈들이 제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유 없이 나에게 온 고난은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우주는 늘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과제를 정확히 보내준다.(주1)”는 것을...
고난의 한가운데에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삶 속에서 하나씩 이유가 드러난다.
글쓰기도 그런 역할을 했다.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의 이유가 찾아지고, 신의 큰 뜻을 깨닫고 나면 그저 고개 숙이게 된다. 작은 나를 크게 쓰시려, 그래서 강해져야 하기에 단련시키신 그 마음을 헤아리면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신은 그 어떤 것도 실수로 만들지 않는다.(주2)”
그렇기에 삶에 다가오는 모든 일들—고통이든 기쁨이든—모두 나에게 주어진 역할임을 알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책임감, 의무, 쓰임, 역할…
내 정신에 하나씩 우주의 원리를 넣어가고 있을 무렵, 같이 독서하시는 작가님이 쓰신 책을 잇는 작업을 같이 하자고 말씀하셨다.
브런치에서 만난 작가님과의 인연은 나에게 회복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공저 제안은 마치 사명처럼 다가왔다.
내가 적합한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즈음 나는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첫 모임 날, 화면 너머로 보인 30명의 얼굴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서로 다른 곳에 살지만, 같은 목표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 벅찼다. 그렇게 나의 꿈이었던 출간 작업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시작되었다.
매주 주어진 미션과 마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글을 쓰고, 발행하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은 내 한계를 시험하는 동시에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갔다. 책을 발간하겠다고 한 순간 글쓰기는 이미 더 이상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훈련이자,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오래 꿈꿔왔던 출간 작업은 마침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의 삶과 글쓰기에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했고, 때로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그 여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주 1> 멘탈의 연금술, 보도 섀퍼, 토네이도, 2020.
주 2> 황제의 철학,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세종서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