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간, 첫 공저 작업.
‘처음’이라는 건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유치원에서 처음 초등학교로 들어갈 때, 그저 신나기만 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출간 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거웠다.
그렇게 ‘같이'의 힘에 이끌려 시작했다. 난생처음 글쓰기 수업을 듣고, 팀 스터디를 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내 경험들을 인풋으로 더하고, 새로운 아웃풋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물의 수준은 생각보다 높았다. 첫 책에 실릴 글이라는 무게가 있었기에, 부족한 부분을 서로 메우고 다지며 시간을 쪼개야 했다. 하루 일분일초가 아까울 정도였다.
다른 것들은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살림, 육아, 심지어 씻고, 먹고, 자는 일조차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약속한 시간에 모두가 함께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몰입했고, 나도 그 열기에 함께했다.
1월부터 시작한 작업은 5개월이 지나면서 두 편의 글이 틀을 잡았고, 이후에는 끝없는 퇴고와 수정이 이어졌다. 먼저 개인 수정,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함께 읽고 고치는 전체 수정. 이 과정에서 시차로 인한 졸음을 참아야 했다.
우리 책의 작가들은 뉴질랜드, 호주, 미국, 한국에 흩어져 있었다. 시차가 모두 달라 한국 시간을 기준으로 맞추려면 나만의 일정을 조율하고 개인적인 것들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수정작업에 접어들면서 부엌엔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반찬은 동나고,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신호였다.
8시간은 자야 했던 내가 6시간만 자고, 제때 챙겨 먹던 식사도 몇 분 만에 때우기 일쑤였다. 반찬과 살림은 밀리고 밀렸다.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줄이기 위해 집 안에서도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 순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의문보다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는 확신이 더 컸다. 그 과정에서 솟아나는 힘은 내 안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나도 모르는 힘이 계속 솟았다.
내 삶에서 이렇게까지 육체적 욕구를 뒤로하고 무언가에 몰두해 본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해야 할 일보다도 충분한 수면, 양질의 식사, 휴식을 더 우선시해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들을 뒤로한 삶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났다. 제때 밥을 먹지 않고도, 잠을 덜 자고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일에 쓰는 나. 그 모습은 내 삶이 아니라 내가 바라만 보던 ‘제삼자의 삶’ 같았다.
그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왜 저렇게까지 일을 하지?, 밥은 먹어가며 해야지, 잠은 자가며 해야지.’하고 걱정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그들이 기본적인 욕구들을 뒤로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먹고 자고 쉬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들이 기본적인 욕구를 제쳐 두고도 힘이 나오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밥하고, 청소하고, 씻고, 꾸미는데 흘려보낸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무엇 위해 살았는가, 진정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의미 있는 일,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다른 어떤 즐거움을 뒤로할 수 있는 삶에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죽음보다 의미 없는 삶을 두려워하라.(주 1)"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 내면이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주 2)”
나의 현재의 욕구를 잊게 만드는 것, 나라는 사람을 잊고 무언가 해야 할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초월’이며, 그로 인해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한 번의 출간 작업으로 내가 자아실현에 도달했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전에 내가 살아온 삶과는 다른 삶을 맛보았다. 신체적인 욕구를 뒤로 하고 그것보다 중요한 무언가에 나를 온전히 집중하고, 하루를 그것에 쏟아붓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뒤흔들었다.
자잘한 것들에 얽매여 있던 내가 그것을 넘어선 더 큰 것을 마주한 것이다
“한 가지 목표에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은 삶의 자잘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카푸치노 커피가 너무 뜨겁든 혹은 차갑든, 웨이터가 미적거리든 아니면 이래라저래라 간섭이 많든, 음식에 양념이 너무 많이 들어갔든 아니면 너무 적게 들어갔든, 호텔 숙박비가 광고에 나온 것보다 비싸든 싸든 괘념하지 않는다. 더 원대하고 멋진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주 3)”
나에게 의무처럼 다가온, 첫 공저 작업은 내 머릿속 지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자잘한 것인지, 내가 그동안 자잘한 것에 얼마나 얽매여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준 변혁이었다.
주 1> 영화 <탈주> 대사 인용
주 2>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2020
주 3> 블랙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동녘사이언스,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