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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영어 성장기 3탄

< 한 달의 공백을 무색하게 한 그녀 >

by 해보름

단어 몇 개로 의사 표현을 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루나의 입에서는 작은 기적들이 매일 흘러나왔다. 친구들과 놀다 “이젠 내 차례야.”라고 말할 때는 “This is my turn.”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친구에게는 “Do you need help?”
아빠와 게임을 하면서는 “Here is my card.”

옆으로 좀 비켜달라고 할 때는 “Can you move?”,

없어진 물건을 찾고 나서는 “I found it!”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놀라고 또 놀랐다.


어느 날은 깜빡하고 도시락에 숟가락을 챙겨주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이는 말했다.

“엄마, 수저를 안 넣어줬어. 그래서 선생님이 빌려줬어.”
“그랬구나. 루나가 선생님한테 말했어? 뭐라고 말했어?”
“음..‘My lunch box is no spoon. Can I have a spoon?’”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터지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알아서 한 걸까. 정말 신기했다.


며칠 뒤, 양치질을 하던 아이가 화장실에서 외쳤다.
“Mommy, 치약 is not getting out!”
그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벌써 머릿속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작동하는 걸까? 아이는 빠를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문장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영어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출간행사로 다시 한국에 가야 했다. 아이는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을 다시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이제 막 영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한 달의 공백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루나가 지금 영어를 재밌어하기 시작했는데, 괜찮을까요?” 나의 걱정에 유치원 헤드티처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한 달 다녀와도 금방 캐치업할 거예요.”

그 확신에 찬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우리는 8개월 만에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미리 등록해 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낯익었기에 금세 적응했다. 마치 뉴질랜드에 다녀온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영어로 말을 건네면 아이는 말했다. “엄마, 영어 하지 마. 여긴 한국이잖아.”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한국말할 거야.” 하며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아이가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 있는 동안은 즐겁게 지내기로 나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귀국하기 전, 아이가 영어로 문장을 말했다.
“이건 어디서 들었어?”
“어린이집에서 배웠어.”
그 말에 안도와 놀라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국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언어의 감각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한 달여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2주의 텀방학.
아이는 “유치원 언제 가?”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물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영어로 따라 부르며 스스로 가방을 챙기기도 했다. 두 달 가까운 공백 끝에 드디어 다시 등원한 첫날. 아이는 처음엔 낯선 듯 울음을 터뜨렸지만 하루 만에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친구들과 함께 놀며 금세 예전의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러면서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에서 영어 문장이 흘러나왔다.


“Can I have one?”
“Can I try this on?”

"Mommy, close your eyes."


친구 집에서, 놀이터에서, 어디서든 자연스레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아이. 새로 들어간 발레수업에서도 선생님의 물음에 답하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헤드티처의 말이 떠올랐다.


‘한 달의 공백쯤은 아무렇지 않아요.’


정말 그랬다.

아이의 뇌에는 이미 두 개의 언어지도가 따로 작동하고 있었다.
아이 말대로, 한국에서는 한국어 지도가, 뉴질랜드에서는 영어 지도가 펼쳐지는 듯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것을, 내 아이를 통해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니 새삼 경이로웠다.
일곱 살 이전의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는 말이 이제야 마음 깊이 와닿았다.


그 환경 속에서 아이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온몸의 오감을 통해 언어를 흡수하고 있었다.

귀로는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표정과 제스처를 읽으며, 분위기와 억양 속에서 뜻을 자연스레 이해했다.

책 속 단어를 읽고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려야 하는 어른의 학습과는 전혀 달랐다.


오감을 사용하는 아이와, 머리로만 배우는 어른의 학습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아이의 순수함과 그 순수를 담은 오감은 언어뿐 아니라 세상을 배우는 모든 과정의 핵심이었다.

머리로 재지 않고 온몸으로 흡수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정서지능을 자라게 하는 힘이었다.


이곳에서 루나는 언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며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언어든 삶이든, 성장의 열쇠는 결국 환경 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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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