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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보름 Nov 19. 2023

글루텐프리로 살아가기 좋은 나라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위장장애로 몇 번의 큰 고생을 한 후 나는 식단과 운동으로 나의 만성적인 위장장애를 치료해보고자 했고, 그 일환으로 그간 관습에 젖어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조차 모른 채 수십 년을 먹어왔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들은 각기 다른 영양소들을 가지고 있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어느 하나 영양가 없는 음식이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와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영양소가 풍부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음식을 열심히 먹다 보면 오히려 그 음식은 나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 자체를 보고 그 음식이 좋다 안 좋다, 영양가에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것보다 우선 나의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자.


 모든 것은 '내'가 중심이고, 나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적용되는 법칙이었다. 우선 나의 몸 상태를 알아야 한다. 내가 약한 부위가 어디인지,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힘이 나는지, 아니면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지 등등 평소에 나의 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판단이 쉬울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사람들은 이러한 반응들을 살피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의 몸을 살피고 나의 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내가 먹는 음식들이 나와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예민하게 내 몸의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20대 때까지는 나의 몸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위가 큰 편이 아니라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을 뿐 크게 먹고 나서 안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음식들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20대 반에서 30대 반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음식을 빨리 먹게 되고, 일의 특성상 식사시간과 수면시간이 불규칙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점점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소화가 잘 안 되면서부터는 과식을 한다던지, 저녁 늦게 음식을 먹는다든지, 고기류나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체기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가면 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야 할 것들은 과식, 찬 음식, 밀가루, 튀긴 음식, 자극적인 음식들이. 알면서 고쳐지지 않았던 것들에 이제는 단호히 결단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결단을 했지만 막상 밀가루로 만든 많은 음식을 섭취할 수 없다는 사실은 큰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한쪽면만 보면 괴로움 가득한 것도 고개를 완전히 돌려 반대편을 보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가 열리는 것처럼,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음식들 (치킨, 피자, 떡볶이, 자장면, 빵, 과자)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내가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재료들이 더 많이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니 그 괴로움들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무래도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과 식재료들을 접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것도 큰 몫을 했다. 뉴질랜드는 이민국가로 유럽, 아메리카, 아시안 등 많은 인종, 많은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쇼핑몰 푸드코트에만 가도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골고루 접할 수 있고 각 나라의 식자재를 전문으로 파는 곳에 가면 그 나라의 식재료들을 손쉽게 구할 수도 있었다.




 주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된 것도 그 시기였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안 사람들은 밥을 주식으로 먹지만 서양의 많은 국가에서는 밥이 주식이 아닌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파스타가 주식이다. 그런가 하면 옥수수나 감자가 주식인 나라들도 있다. 그렇다면 주식이란 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환경적으로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많이 재배가 되는 것이 주식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쌀 대신 밀이 더 많이 재배가 되었다면 우리는 빵이 주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식이라 함은 자고로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어 에너지와 함께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결국 그 종류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쌀이든, 고구마든 감자든 옥수수든 빵이든 환경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많이 재배된 것을 주식으로 각 나라 사람들이 먹게 된 것이지 딱히 그 음식이 몸에 맞아서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국인이니 밥을 먹어야 하고, 서양인이니 빵을 먹어야 한다'가 아니라 나에게 쌀보다 감자가 먹기 편하고 소화가 잘되면 나는 감자를 주식으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밥보다 감자가 소화가 더 잘되었다.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어야 해서 먹었지만 나의 몸을 살펴본 후로는 속이 좋지 않았을 때 밥보다 더 속이 편한 음식은 감자였다. 이렇게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매운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매운 음식을 파는 곳이 거의 없는 곳에서 지내다 보니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내가 그다지 매운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집에서 음식을 할 때에도 고춧가루는 거의 쓰지 않고 꼭 넣어야 할 때에는 고추장만 조금 넣어 최대한 매운 기를 없게 해서 먹는다.


 밀가루 끊고 글루텐 프리 음식으로


 그다음으로 식단에서 내가 제하게 된 것은 밀가루다. 밀은 한국인의 주식은 아니지만 떡볶이, 국수, 빵, 과자, 피자 등의 소비가 늘면서 한국에서도 밀의 소비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라면과 칼국수 같은것좋아하지 않아 거의 잘 먹 않았지만 군것질을 좋아해 빵이나 과자, 케이크와 같은 달달한 것들 자주 먹었다. 그리고 뉴질랜드 와서 지내며 피자나 햄버거, 파스타, 빵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을 아무래도 많이 먹게 되었다. 그렇기에 밀가루를 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 힘든 일이었다. 건강을 위해 소화가 되지 않는 주범인 밀가루를 끊겠다고 막상 결단을 하고 나니 처음에는 정말 하늘이 반쯤 주저앉는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니 다 살 구멍은 있었다. 결단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동안은 관심조차 없다 보니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웬걸, 글루텐프리(gluten-free,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재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아닌가? 글루텐프리 파스타, 글루텐 프리 가루, 글루텐프리 쿠키 등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은 재료들이 다 있었다. 심지어 'Gluten-free'혹은 'healty diet' 섹션에 따로 밀가루가 들지 않은 토스트, 머핀, 쿠키, 과자 등등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들이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뉴질랜드는 천국이야~!!

 그날 장 보고 와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기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에 신랑에게 이야기하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직도 그 기분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모든 것을 다 해 먹을 수 있었다. 글루텐프리 파스타 면으로 파스타를 해 먹을 수 있었고, 글루텐프리가루(밀가루를 제외한 쌀, 타피오카 등으로 만든 가루)로 쿠키, 빵, 부침개 등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예 글루텐프리 쿠키와 칩들을 사서 만들어 먹기 귀찮을 때는 바로바로 일반쿠키처럼 똑같은 맛으로 즐길 수 있었다.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외식이었다. 집에서야 이러한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재료들로 맘껏 만들어 먹을 수 있었는데 밖에서 그런 음식들을 먹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글루텐프리 가루와 아몬드가루로 직접 만든 케잌들, 왼쪽부터 바나나케잌, 치즈케잌, 초코케잌

 그러나 이것 역시 기우였다. 평소에 자주 가던 피자집을 가게 되어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밀가루가 들지 않은 글루텐프리피자와 글루텐프리 파스타가 주문이 가능했다. 카페에 가서도 메뉴를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뉴질랜드에는 메뉴 위에 조그맣게 gf라고 적혀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gluten free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 외에 dairy free, vegeterian, 등등 다양한 식단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특정한 나라의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뉴질랜드 음식점에는 대부분 이런 다양한 식단을 가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 거의 구비가 되어 있었고, 심지어 글루텐 프리, 비건 음식만 파는 카페들도  많이 . 피자집에 가서 글루텐프리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카페에서는 글루텐프리 케이크와 아몬드밀크로 만든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것이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외식을 할 때 이렇게 나의 식단을 갖춘 음식점들이 많이 있어 어딜 가도 밀가루 음식을 먹지 못하여 혼자만 못 먹는다든지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글루텐프리 토스트로 바꾼 브런치 메뉴와 글루텐프리 머핀, 두유디카페인커피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와 인식!


 '나는 밀가루 음식을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의 건강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마인드가 내가 밀가루 음식을 끊어내고 식단을 바꾸는 데 큰 작용을 했다. '내가 못 먹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나만 이상하고 별난 느낌, 나만 뭔가가 문제 있고 결핍 있게 느껴지지만, '나의 건강을 위해 내 선택으로 좀 더 건강한 음식들을 먹기 위해 상대적으로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들을 먹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굉장히 달라진다. 나의 몸에 해가 되는지도 모르는 음식을 주위사람들이 먹기에, 그저 입에 당기기에 별생각 없이 먹는 것이 아닌 나의 몸을 위해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음식을 선택하여 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더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인드와 함께 중요한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다. 혼자일 때는 나의 식단을 유지하기 쉽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때는 아무래도 나만의 식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살면서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그들의 문화 속에서 나는 더 당당해질 수 있었고, 그런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내가 글루텐 프리 음식을 먹는 것이 전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뿐 아니라 상당수가 고기나 생선을 먹지 않는 베지테리언, 우유나 유제품을 먹지 는 데어리 프리, 나처럼 밀가루를 먹지 않는 글루텐 프리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특정 질환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그런 식단을 스스로 선택해서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나에게 맞지 않거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특정 재료는 빼달라고 요청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보통은 그런 요구를 까다롭게 받아들이지 않고 기꺼이 받아준다. 이렇게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나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낼 수 있으며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당당함 속에서 자존감 또한 올라가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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