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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쓰레기통

1분 동화 별빛동화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가까운 사람에게 버린 감정이

온도가 되어 돌아온다면...


요즘 아침 공기가 쌀쌀하다.

무더웠던 숲이 하루 만에 숨을 고르고, 바람은 차갑게 변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옷장에는 옷이 넘쳐나는데,

나 다람쥐 솔이의 마음에 드는 옷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 순간, 엄마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아, 오늘은 추워. 긴팔 입고 가.”

“입을 옷이 없어! 괜찮아. 그냥 둬.”


엄마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긴팔 입고 가. 엄마 말 들어. 도토리 시장 늦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힐끗 쳐다봤다.


“왜 항상 엄마 말만 맞다고 생각해?”

내 말이 점점 커졌다.

“엄마는 맨날 잔소리야! 나 좀 내버려 둬요.”


엄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는 엄마 말, 제대로 듣기라도 했니?”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감정 쓰레기를 마구 쏟아냈다.

상처로 된 말이 감정통에 버려지고

머릿속에서는 자꾸 맴돌며 마음을 후벼 팠다.


사실 나는 밖에서는 꽤 괜찮은 아이다.

친구들에게는 웃으며 인사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다.

“솔이는 예의 바르네.”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는

내 안의 화와 짜증이 마음대로 흘러나왔다.

아마 엄마는 다 받아줄 거라 믿어서였을까.


그날 밤,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따뜻한 내 방에 앉아 있다.

엄마가 매일 햇빛을 털어 넣어주던 방이다.

그런데 오늘은 불 꺼진 방 안에 내 호흡 소리만 들린다.


식탁 위에는 식지 않은 도토리죽이 있다.

엄마가 만들다 만 것 같았다.

숟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책상 밑에는 ‘감정통’이 있다.

엄마가 만들어준 도토리 상자다.

나는 그 안에 내 마음을 쏟아 넣었다.


‘싫어요.’

‘엄마는 나만 미워해요.’

‘엄마 없어도 돼요.’


뚜껑을 여니, 냄새가 났다.

썩은 냄새.

단단했던 말들이 부풀어 터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참았다.

눈물이 났다.


그때, 문틈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미끄러졌다.

엄마의 글씨였다.


'솔아, 잠시 쉬러 간다.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너에게 상처대는 말을 던진

내 자신이 너무 미워져서.

이젠 무거워진 감정통으로 쓰러질 것 같아. '


나는 그 쪽지를 꼭 쥐었다.

엄마 손 냄새가 났다.

갑자기 추위가 밀려왔다.

내가 반팔을 입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엄마의 방은 초라하면서 작고,

내 방은 크고 옷장도 크다.


엄마는 늘 내게

따뜻한 말을 입히려 했는데,

나는 그걸 벗어던졌다.


나는 감정통을 들고 숲으로 나갔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강가에 서서 통을 던졌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엄마, 나 이제 따뜻하게 입을게요.

말도, 마음도요.”


물결이 달빛을 반사하며 흔들렸다.

감정통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숲은 고요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 자라고 있었다.


엄마가 매일 내 방에 털어 넣던 햇빛처럼,

조용하지만 따뜻하게.

서로를 비추는 것 같다.



“엄마는 왜 맨날 그래?”

아이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다람쥐 솔이와 같았습니다.

밖에서는 웃고, 선생님 말도 잘 듣고, 친구에게 양보도 잘했는데상하게 엄마 앞에서는 자꾸만 날이 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가장 거칠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감정쓰레기통' 동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감정의 찌꺼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놓는 사람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통을 계속 이어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가까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로 던진 말이 있다면, 용기를 내세요.


“괜찮아. 미안해”

그 한마디면, 다시 따뜻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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