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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주식회사

1분 동화 별빛 동화 : 서른 번째 이야기

진심이 말이 되려면.....


나는 숲 한가운데 서 있는 평화의 나무다.

매일 아침, 나는 ‘숲속회사’ 건물로 향하는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여우의 총총, 방울뱀의 스르륵, 사자의 쿵쿵

그중에서도 곰의 발소리는 가장 무겁다.

그의 어깨엔 언제나 ‘누군가의 일’이 걸려 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도 곰

야근하고 숲속회사 문을 닫고 나가는 동물도 곰이다.


“곰 과장은 믿음직하지.”

“조용하고 착실하잖아.”

동물들은 칭찬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곰 책상 위에 툭툭 올린다.


그렇게 곰은 하루 종일 일한다.

기획팀 여우가 맡은 문서도,

뱀이 놓친 회의록도,

결국 곰의 책상 위로 모인다.


밤이 되면 사무실 불빛 아래,

곰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진다.

누구도 그 그림자를 안쓰럽게 보지 않는다.

곰은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냥 열심히 할 뿐이야.”

하지만 그 말은 점점

“나는 그냥 버티는 거야.”로 변해갔다.


회의가 열리면 여우는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이번 성과는 전적으로 제 아이디어 덕분이에요!”

곰이 밤새 고쳐놓은 보고서도

여우의 입을 통과하면 “팀워크의 성과”가 된다.


사자는 그 말을 좋아했다.

“말을 잘해야 리더가 되지.”

그 한마디에 여우의 꼬리는 더 높이 말려 올랐다.


방울뱀은 사자의 발밑에서 늘 웃는다.

“사장님, 여우 팀장이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자가 돌아서면

그의 혀끝엔 다른 말이 묻어 나왔다.

“곰 과장, 사자가 당신이 느려서 불만이 많대요.”

“여우 팀장은 당신이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하던데요?”

그 말마다 독이 섞여 있었다.


곰은 점점 더 말을 잃었다.

방울뱀은 다시 여우에게 기어가

딸랑딸랑 웃으며 말했다.

“곰이 말이 없는 건 불만이 많아서래요.”

강한 자 앞에서는 부드럽고,

약한 자 앞에서는 독을 품는 뱀의 말.

그 말들은 숲 속 공기의 온도를 서서히 식혔다.


사자는 번쩍이는 보고서를 유난히 좋아했다.

숫자가 크면 좋고,

말이 화려하면 일 잘한다고 칭찬했다.


“여우 팀장, 이번에도 수고 많았네.

곰 과장은… 조용히 잘하고 있지?”


사자는 곰의 이름을

‘문제없음’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 말이 곰에게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야근을 하던 곰이 일에 지쳐 간신히 창밖을 보았다.

달빛에 비친 나뭇가지 사이로

그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조용히 잎을 흔들어

바람을 이용해 잎사귀로 곰에게 속삭였다.


“곰아, 너가 한 일을 말해.

너가 원하는 걸 이야기해.

침묵은 미덕이라고 하지만,

착함이 네 목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단다.”


곰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에 작은 불빛이 비쳤다.

그건 처음으로 자신을 믿는 눈빛이었다.


다음 날 아침, 회의실.

여우가 또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제가 중심이 되어—”

그때 곰이 입을 열었다.

“그 보고서는 제가 작성했습니다.”


순간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자는 곰을 바라보았다.

뱀의 혀가 멈칫했고,

여우의 꼬리가 뻣뻣해졌다.


“그리고…”

곰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번엔 제 의견으로 개선할 부분을 이 보고서에 담았습니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묵직했다.


그동안 숲 속에 쌓여 있던 곰의 무거운 마음이

처음으로 소리로 바뀐 순간이었다.

며칠 뒤, 사자는 곰의 자리 앞에 섰다.

“곰 과장,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나?

좋은 제안이야. 다음 회의는 당신이 주도하게.”

여우는 말이 없었다.


뱀은 방울을 흔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평화의 나무는 잎사귀를 흔들며 속삭였다.

“그래, 이제 네 목소리가 숲의 바람이 되었구나.”


그날 이후, 숲속회사에는 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우도 곰의 성과를 가로채지 않고 직접 문서를 만든다.

방울뱀의 딸랑 소리는 작아지고 스르륵 일을 한다.

사자는 동물을 보는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정한 눈, 공정한 평가"

숲속회사는 이제 일의 무게가 동물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평화의 나무인 나도 숲의 바람을 잔잔하게 일으킨다.



“말 안 해도 다 알아.”

과연 정말일까요?


우리는 종종 침묵을 배려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때로 그 침묵은 자신의 마음을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이 동화는 그런 ‘조용한 착함’이 겪는 불평등과 오해,

그리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한 존재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숲속회사 주식회사’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묵묵히 일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곰,

언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자 상사.

그 속에서 곰은 묵묵한 미덕과 침묵의 굴레 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한가운데의 평화의 나무가 곰에게 속삭입니다.

“너의 일을 말하고, 네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렴.”

그 조언은 곰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말’의 용기를 일깨웁니다.


겉으로는 소통의 시대라지만,

정작 진심의 언어는 가장 작게 들리는 오늘,

이 동화는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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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