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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자기야!

소소한 부부싸움에 일어난 아이의 반응

"소란아, 밥 먹어! 학교 늦겠다"

"소란 아빠! 소파에 이거 뭐야? 바로 옆이 휴지통인데 버리질 않았네!

원균 씨 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우리 엄마는 참 이상해요. 우리 아빠를 어떨 때는 아빠, 기분 좋을 때는 오빠, 화가 날 때는 야! 원균!  기분에 따라 부르는 모습이 달라져요.


"선이야! 왜 아침부터 잔소리야? 기분 좋게 출근시켜 주면 안 돼?"

"출근? 난 출근 안 하나? 아침마다 치우느라 화장할 시간이 없어!"


이건 누가 봐도 싸움인데 엄마 아빠는 대화래요. 뭔 대화가 이렇게 살벌하죠?

엄마 아빠의 그 이상한 대화 때문에 학교 가는 기분이 똥 되었네요.


사람들은 우리 엄마 아빠를 보고 성격이 시원시원하다고 해요.

왜냐하면 목소리도 크고 잘 웃고 잘 울고 화도 잘 내길 때문이죠.

이런 엄마 아빠를 저도 사랑하지만 가끔은 제가 벅찰 때도 있어요.


아빠는 먼저 7시 40분에 나가고 엄마는 저를 챙겨 8시 40분까지 학교에 보내요.

약 1시간 동안 저는 엄마의 잔소리 폭탄을 독차지해요.


"소란아, 오늘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수업 끝나면 돌봄 교실 가서 책가방 두고 선생님께 인사한 다음, 방과 후 댄스 가야 된다. 그리고 태권도 갔다가 미술학원 그리고 피아노까지 들러야 한다"


늘 반복되는 일상인데 엄마는 이 말을 하루도 안 빠뜨려요.


"엄마, 끝나고 편의점에 가서 과자 사면 안 돼? "

"배고프면 사도 되는데 장난감은 안돼. 뽑기도 안되고!"


엄마는 한 번이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어요.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학교에 오니 아이들이 앉아서 받아쓰기 급수 표를 보고 있네요.

아차! 오늘은 받아쓰기 날이에요. 저도 깜빡, 엄마도 깜빡, 아빠도 깜빡 모두가 잊었네요.

오늘 시험 보는데 받아쓰기 급수 표는 가방에 없네요.

옆 친구한테 받아쓰기 급수 표 같이 보자는 말을 한 후 힐끗힐끗 문장을 외워요. 아마 공부 안 한 아이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우리 1학년 2반 친구들,  벽시계로 10시가 되면 받아쓰기를 할 거예요. 그동안 공부하는 거예요"


지난주 시험은 엄마와 같이 공부해서 100점 받았는데 오늘은 모든 문장이 새로워요. 결국 시간이 되어 받아쓰기를 하는데 받침이 헷갈려요. 하나가 헷갈리니 다 모르겠네요. 그래도 정신 차릴 려고 애를 쓰는데 잘 안되네요.


짝꿍끼리 채첨 하는 시간, 착하고 바른 민준이는 100점, 저는 60점 나왔네요.

순간 얼굴이 빨개지고 창피해서 받아쓰기 공책을 얼른 책가방에 넣었어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100점 받았다고 자랑질을 하네요. 그리고 저한테 점수를 물어봐요.


"100점은 아니야. 안 가르쳐 줄래!"


물론 받아쓰기 60점 받은 것은 제 잘못도 있어요. 하지만 챙겨주지 않은 부모님의 잘못도 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집에 가면 엄마 아빠에게 말할 말도 나름대로 준비했어요.



"엄마, 아빠! 아무리 바빠도 나 챙겨줘야지. 엄마 아빠가 챙겨주지 않아서 나 60점 받았어!"


이 말을 한 소란이는 울고 싶은 표정을 지었어요. 그 모습을 본 후 엄마가 저를 안아줘요


"어머나! 엄마가 지난주 금요일에 가정통신문을 안 봐서 그랬나 봐. 어떻게 하니"


엄마도 저를 안고 울려고 해요. 그러자 TV 보던 아빠가 한 말을 하네요.


"그러니 잘 챙겨주지 그랬어. 우리 소란이 많이 속상하지?"

"......."

엄마는 잠깐 머문 거리더니 아빠를 보고 쏘아붙이네요.


"소란이는 나만 챙겨야 돼? 소란이 아빠는 왜 안 챙기는데?"

"엄마가 먼저 챙겨야지! 네가 잘못했대며"

"뭐? 듣고 있자니 화가 나네. 아이는 같이 양육하는 거야. 오빠도 챙겨야 되는 거야!"


소란이는 그저 혼나지 않으려고 내뱉은 말이 엄마 아빠의 싸움으로 번지네요.

그동안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을 소란이 앞에서 마구 쏟아내네요.


그날 밤 엄마 아빠는 서로 대화를 안 해요. 아빠는 거실에서 자고 엄마는 혼자 자요.


'우리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이혼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이에요.

소란이는 방에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나 때문에 부모님이 싸운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쓰려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싸우지 마세요

두 분이 다정하게 여보, 자기야 했으면 좋겠어요'


편지를 냉장고에 화장실 앞에 붙여요.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엄마가 아빠를 오빠,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난 뭐지? 늘 생각했어요.

아빠가 엄마를 보고 이름 부를 때에도 꼭 싸우는 거 같아요.

아침에는 엄마 아빠가 이 편지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소란이가 눈을 뜨니 아침 7시 30분이네요. 깜짝 놀라 문쪽으로 향해요.

엄마 아빠가 식사를 준비하며 이야기하는 게 들려요.


"우리 소란이가 많이 컸네. 우리가 너무 사이가 안 좋게 보였나 봐"

"이제부터 소란이 말대로 여보, 자기야 하자고요"


소란이가 문을 열고 힘차게 말해요.


"엄마, 아빠 잘 주무셨어요?"

"어?! 소란이가 알아서 일어났네. 밥 먹고 어서 학교 가자!"

"네!!"

"여보! 여기 소란이 수저 놔주세요"

"자기야! 이렇게 하면 되지?"


엄마 아빠가 소란이 말대로 '오빠, 아빠' 대신 '여보, 자기야'라고 말하네요.

훨씬 아침 분위기가 좋아진 거 같아요. 소란이는 어깨가 으쓱 솟아나요.

햇빛도 소란이 어깨처럼 환하게 솟아올라 거실 베란다로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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