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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서 할 거야

초등학생 독립 선언

아침 햇살이 오늘도 소란이의 방으로 들어와요.

햇살은 소란이의 침대와 책상에 드리워져 소란이를 깨우는 듯 어깨와 다리를 비춰요.

소란이는 방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떠져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침 7시네요.

다른 때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어요. 늘 그렇듯 일어나면 눈을 비비고 거실로 나가요.

엄마는 소란이가 먹을 밥을 그릇에 담으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네요.


"오늘 내가 야근할 거 같은데 혹시 잠깐 집에 올 수 있어?

 아 그래? 할 수 없지. 알았어.  다시 알아보지 뭐!"


엄마는 불안한 사람처럼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분주하네요.

소란이가 아침밥을 먹고 양치질을 할 때까지 엄마는 계속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해요.

학교를 가기 위해 가방을 멘 순간 엄마가 소란이의 팔을 잡아요.


"소란아! 엄마 말 잘 들어! 엄마가 오늘 회사 일로 밤 8시에 도착할 거야.

피아노 끝나면 6시인데, 2시간만 거실에서 TV 보면서 기다릴 수 있지?"

"아 그래? 엄마, 걱정 마! 나 할 수 있어! 나 초등학교 1학년이야! "


엄마는 학교 앞에서도 한번 더 소란이의 어깨를 잡고 말해요.


"소란아! 엄마가 최대한 빨리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저녁밥은 7시에 맞춰 배달시켜 줄게."

"알았어! 엄마! 나 초등학교 1학년이야. 알아서 할 수 있어!"


소란이는 드디어 꿈이 이뤄졌어요. 엄마가 늘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원으로 데리러 올 때마다 혼자 가는 언니 오빠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소란이는 이미 언니 오빠가 다 되어 있는데, 엄마가 자꾸 유치원생으로 보는 것 같아 속상했거든요. 오늘 드디어 엄마에게 알아서 하는 멋진 소란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요.


학교에서도 소란이는 씩씩하게 수업을 들었어요.

드디어 소란이가 혼자서 하는 날이 되니 학원에서도 마치 초등학생 고학년이 된 듯이 같은 학년 친구들이 동생처럼 느껴져요.


"기찬아! 내가 도와줄게! 파란색으로 색칠하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기찬아, 나 오늘 집에 혼자 있는다!"

"뭐? 너 무섭지 않아? 놀이터에서도 난 혼자 놀지 못하게 하는데, 집에 혼자 있는다고?"

"맞아. 엄마가 오늘 회사에서 늦으신대 2시간만 밥 먹고 기다리래"

"우와! 멋지다! 나도 엄마가 늦었으면 좋겠다!"


소란이는 태권도, 미술, 피아노 등 학원을 다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요. 엄마가 전화기에 문 카드를 넣어줘서 아파트도 손쉽게 통과해요.  엘리베이터도 잘 내려오고 현관 비밀번호도 단번에 성공해요. 혼자서 하는 모습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져요.

집에 들어서니 집안이 깜깜해요. 순간 오싹한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한번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하니 어둠 속에서도 불을 킬 수가 있어요.  거실이 환해지니 소란이 마음도 밝아져요.

두리번두리번 집을 둘러보니 식탁에는 소란이가 먹을 간식과 책이 놓여 있어요. 아마도 엄마가 올 때까지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며 기다리라는 거겠죠.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소파에 던지고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어요. 우와! 이제는 소란이 세상이에요.

잔소리하는 엄마도 안 계시고 2시간 동안 소란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


"우와! 유튜브 실컷 봐야지! "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먹방, 게임 영상, 장난감 놀이 등 소란이가 그동안 보고 싶던 유튜브를 실컷 보아요.

30분 정도 텔레비전에 소란이가 빠지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벨을 눌렀어요.


"딩동! 딩동!"

"어? 뭐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어요. 소란이 가슴이 쿵당 쿵당 거려요. 하지만 얼른 도어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버튼을 눌러요.


"누구세요?"

"음식 배달 왔습니다!"


맞아요! 엄마가 저녁 7시에 저녁밥을 시켜 준다고 했어요. 소란이는 안심하며 문을 열어요.

음식을 받은 후, 소란이가 좋아하는 치킨 도시락에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아요.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동영상을 이렇게 마음껏 즐길 수 있다니 엄마가 계속 늦었으면 좋겠어요.

 

밥을 다 먹고 이제 엄마가 읽으라고 한 책을 펼쳐요. 소란이는 엄마와 한 약속은 잘 지키려고 하죠.

베란다 창으로 바람이 들어와요. 소란이는 자기도 모르게 베란다 쪽으로 향해요.

그 밝던 세상이 어둡네요. 소란이의 전화 벨소리가 들려요. 엄마네요.


"소란아, 엄마가 출발했는데 퇴근시간이어서 그런지 길이 막히고 있어요. 8시 넘을 거 같아."

"엄마, 괜찮아!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소란이는 언니 오빠처럼 불안해하는 엄마를 달래며 전화를 끊어요.

그런데 왜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스물스물 몰려올까요?.

 밖이 어두워질수록 소란이의 두려움은 더더욱 몸 밖으로 나오는 거 같아요.

소란이는 안방, 공부방, 거실, 화장실 등 집에 있는 불은 다 키기 시작했어요.

집안에 있는 불을 켜고 소파에 다시 앉았는데, 텔레비전에서 좀비 영상이 나오네요.

평소에는 재미있게 보았는데 좀비가 TV에서 나올 거 같아요. 얼른 리모컨을 찾아 TV를 꺼요.


오늘따라 어항 여과기 소리가 크게 들려요. 물고기 구피도 빠르게 헤엄치네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뚝, 뚝' 소리가 들려요.  소란이의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해요.

화장실에서 나는 것 같아요. 용기를 내어 화장실을 둘러보니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네요.

소란이가 집에 들어올때 손을 닦았는데 수도꼭지를 잘 안잠갔나봐요.

안심을 하고 다시 소파에 앉아요. 이번에는 천장에서 '우~웅' 소리가 들리네요.

아마 윗층에서 뭔가를 하는 거 같아요. 평소에는 안 들리던 소리가 지금은 너무나 잘 들려요.

소란이는 소파에 있는 곰인형을 꼭 안아요. 그리고 두 눈을 감고 기도해요.


"하나님, 예수님! 우리 집에 좀비 나타나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 빨리 오게 해 주세요!"


조금 전에는 엄마가 늦게 오길 바랬는데, 지금은 엄마가 왜 이리 안 오는지 불안하네요.

벽시계를 바라보니 8시예요.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 마음에 새겨요.

숫자를 100까지 세고 시계를 바라봐요. 8시 10분이에요. 조금 늦는다고 엄마는 했는데 왜 아직까지 안 오죠?

소란이의 두려움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순간 벨소리가 나요.


"띠리링!"

"누. 누구세요?"

"미안해! 소란아! 엄마가 조금 늦었어"


소란이는 엄마를 향해 뛰어가고, 엄마는 소란이를 꼭 안아요.

오늘 처음으로 소란이는 2시간 동안 혼자서 미션을 잘 지켰어요.

비록 무서워서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주 잘한 거에요.

다음에도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소란이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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