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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일까?

친구와 사소한 일로 싸움이 일어날 때

"애들아 멋지지?"


소란이의 블록이 탑 꼭대기에 올라간 순간, 30분 동안 친구들과 모여서 블록을 하나하나 쌓은 성이 드디어 완성되었어요.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봐요.

마치 알록달록 블록들이 높게 쌓아져서 아름다운 빛을 내는 거 같아요.


"이 성에서 살고 싶다!"

"우리 여기서 공주와 왕자 놀이할까?"

"전쟁 게임은 어때?"

아이들은 신나서 놀고 싶은 아이디어를 쏟아내요.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말하니 무슨 놀이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리 원래 공주와 왕자 놀이하려고 성 만든 거잖아! "

"야! 무슨 공주와 왕자야. 유치원생도 아니고 우린 초등학생인데, 그냥 전쟁놀이하자!"

"공주와 왕자 놀이 안 하면, 성 그냥 무너 뜨린다"


소란이는 공주와 왕자 놀이를 빨리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말해요.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아요. 반은 찬성을 하고 반은 반대를 하네요.

그중에서도 기찬이는 소란이의 공주와 왕자 놀이를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순간 기찬이는 전쟁놀이를 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고 바로 한쪽 블록을 무너뜨렸어요.


"야 적군이 침범했어!  빨리 적이 오지 못하도록 하자!"


무려 30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쌓아 올린 노력이 기찬이 팔로 무너지게 되었어요. 너무나 아깝고 놀이가 이제 끝난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가슴을 후벼 파요.


"선생님, 기찬이가 블록 성을 무너뜨렸어요"


소란이는  선생님에게 그만 기찬이의 행동을 일러버렸어요.

선생님은 아이 곁에 가 주위를 살펴보았어요. 소란이는 울고 있고, 기찬이는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에요. 나머지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러요.


"기찬아, 성 무너트렸어? 그럼 소란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

"왜요? 소란이가 성을 무너 뜨리자고 했어요!"

기찬이는 답답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불끈 쥐워요


소란이도 질세라 모두가 듣도록 소리를 높여 말해요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놀이를 안 정하면 성을 무너뜨린다고 말한 것뿐이야."


소란이는 설움이 복받쳐 올라 더 크게 울기 시작해요. 여자 아이들은 소란이 편에 붙어 위로를 해요.

그런데 기찬이 편에는 남자아이 두 명 만이 선생님의 결정을 기다리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어요. 솔로몬처럼 선생님의 지혜가 요구되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기찬이가 잘못한 거 같아요.


"기찬아! 친구와 열심히 만든 성을 화났다고 무너뜨리면 안 되지!"


선생님이 '기찬이가 잘못했다'라고 한 말에 기찬이는 억울하고 또 억울해요.

분명히 소란이가 성을 무너뜨린다고 했고, 전쟁놀이를 하기 위해 행동한 건데 사람들이 왜 자기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모든 활동이 끝나고 기찬이는 집에 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는 직장을 다니느라 기찬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늘 한쪽 마음이 아련했는데, 오늘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다니 마음에 상처가 나는 거 같아요.


"엄마, 소란이가 성을 무너뜨리자고 해서 내가 팔로 친 건데 선생님이 내가 잘못했대. 그리고 소란이는 자기가 그런 말 안 했다고 거짓말해"

"우리 기찬이 마음이 너무 아팠겠구나" 엄마는 기찬이를 꼭 안아줘요.


"엄마, 그리고 선생님이 날 때렸어. 소란이에게 사과하라고 내 어깨를 쳤어. 너무 아팠어!"

"어느 어깨? 때린 거 맞아?"

순간 엄마는 '선생님이 설마 아이를 때렸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의심을 해요.

한편으로 직장 다니느라 기찬이를 잘 챙기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거 같아 안타까워요.


소란이도 기찬이처럼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제부터 기찬이와 안 놀겠다고 이야기해요. 그 이유는 분명해요. 소란이가 정성 들여 만든 블록 탑을 기찬이가 무너뜨렸기 때문이죠


"엄마, 기찬이가 블록 성을 내가 무너뜨리자고 했대. 난 그런 말 한적 없는대"

"그리고 나 때문에 혼났다고 나를 째려봤어. 나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데, 나 이제 기찬이와 안 놀 거야!"


둘이는 단짝 친구였는데 오늘 일로  너무 멀어졌네요.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소란이는 기찬이의 뒷모습이 보여요. 소란이의 발걸음이 무거워져요.

기찬이도 소란이의 인기척을 듣고 잰걸음을 해요. 실내화 갈아 신는 곳에서 서로 마주치기가 싫어서죠.

엄마들은 학교 앞에서 마주쳤지만 출근을 바로 해야 하기 때문에 가슴에 궁금한 것을 꼭꼭 숨기고 회사로 출근해요.


학교에서는 기찬이가 잘못했다는 소란이 편 아이들과 소란이가 잘못했다는 기찬이 편으로 자연스레 나눠졌어요.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째려보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으려고 해요.


체육시간이에요. 다 같이 하는 줄넘기 시간인데 두 번 돌리기, 한번 돌리기 , 뒤로 넘기, 하나도 못 넘는 아이 등 모두들 제각각이에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도록 시범을 보여요.

아이도 슬슬 선생님을 보며 줄넘기를 따라 해요. 그런데 기찬이와 소란이는 같이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해요.


"야! 줄넘기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저리 가!"

"네가 가라! 왜 나보고 가라는 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요.  옆에 있던 소란이 친구들도 거들어 주네요


"네가 왜 소란이한테 저리 가라고 하니?"

"선생님! 기찬이가 소란이한테 화내요!"


선생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예요. 평소에 사이가 좋은 것으로 손을 꼽았던 두 친구가 오늘은 서로 으르렁 되기 때문이죠.


기찬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오늘도 엄마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말했어요


"엄마, 소란이가 오늘도 날 선생님한테 혼나게 했어.

소란이가 자꾸 째려봐서 저리 가라고 한 건데 내가 소란이한테 화냈다고 선생님과 반 아이들도 뭐라 했어"

"소란이하고 자꾸 부딪치네?"

"난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다 나만 잘못했대!"


엄마는 이내 마음이 불편해요. 아이들 싸움에 학교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해야 할지, 소란이 엄마를 만나야 할지 혼란스럽네요. 일단 자초지종을 알아야 될 거 같아 늦은 저녁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선생님 고생 많으시죠. 요즘 기찬이가 학교에 돌아오면 화가 많이 나 있네요. 혹시 아시는 것이 있을까요?"


30분이 지났을까요? 선생님이 전화를 하시면서 요즘 기찬이의 모습을 설명하네요.


"소란이와 기찬이가 사이가 좋았는데, 요즘 서로 화내고 째려보고 하네요. 둘이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풀어지겠죠. 오늘은 그 과정에서 기찬이가 화를 냈어요. 그래도 아이들은 싸우다가도 친하지기도 해요. 기다려 보죠."


엄마는 선생님에게 기찬이가 무엇을 잘못해서 혼내고 때렸는지 콕 집어 묻고 싶었어요. 하지만 오해가 생길까 봐 입까지 올라온 말을 꾹 닫아요.


다음날 학교에 가는데 소란이와 기찬이가 딱 마주쳐요. 참으로 어색하네요.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조별 미션을 준다고 했어요. 10명씩 2개의 조로 누가 먼저 선생님이 내는 미션을 잘 수행하는지 보겠대요. 아이들은 공을 뽑아요. 청색이 나오면 청팀, 백색이 나오면 백팀이 되는데 소란이와 기찬이는 같은 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같은 팀이면 너무나 불편하고 안 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기찬이도 소란이도 청색공이네요.


둘 다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요. 아이들도 얼굴이 하얗게 변해요. 청색팀은 망했어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끼리 모였으니깐요. 마치 백팀이 된 아이들은 행운아처럼 보여요.


팀이 다 나눠진 후 선생님은 미션지를 주셨어요. 미션 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파랑이와 노랑이가 한 마을에 살았어요.  

파랑이는 열심히 파랑이를 만들고 노랑이는 열심히 노랑이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초록이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초록이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왜일까요? 나머지 이야기를 친구들과 만들어보세요"


초등학생 미션 중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만들라니, 아이들은 너무 머리가 아팠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은 잠시 뿐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파란색과 노란색을 합치면 초록색 되는 거 아니야?"

"파랑이와 노랑이 사는 곳에 경계를 만들어 넘어가지 않게 했으면 초록색이 안 나왔을 텐데 말이지?"

"그런데 그 경계를 파랑이가 만들어 노랑이가 만들어 어차피 만나지 않을까?"


좀처럼 답이 나오지가 않아요. 이때 소란이가 아이들한테 물어봐요.


"초록이를 만든 것은 파랑이와 노랑이 중 누구 책임일까?"

"그거야 먼저 간 색이 잘못 아닐까?"

소란이는 기찬이를 바라봐요. 며칠 전 성을 무너뜨린 기찬이의 행동을 머릿속에서 꺼내는 거 같아요.


"아니? 파랑이와 노랑이 둘 다 책임이지!"


우리 반 반장이 다른 의견을 내네요.

기찬이는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말을 해요.


"파랑이와 노랑이가 자연스럽게 부딪혀서 초록색이 생겼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섞이게 된 거지!"

  둘 다 자연스럽게 초록색으로 된 거 아닐까?"


기찬이가 소란이를 쳐다봐요. 이후 아이들은 이야기를 다 만들었어요. 마을에서 파랑이와 노랑이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섞일 수밖에 없고 초록색을 많이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죠.


"청팀은 누가 발표할래? 파랑이와 노랑이 역할할 친구 두 명 나오세요!"

선생님이 질문했어요. 그러자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다 같이 불러요.


"소란이와 기찬이요!"

"야! 기찬아, 소란아,  둘 다 발표 잘해야 한다!"


둘이 발표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은 사실이에요. 솔로몬 같은 선생님의 지혜로 풀리는 건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의 마음이 풀리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파랑이와 노랑이처럼 둘은 만날 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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