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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 여름아!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 추억으로 간직하기

8월의 햇살은 눈부시다 못해 따가워요.

짙은 초록의 나뭇잎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뜨거운 햇살은 계곡에 금가루를 뿌려주고, 튜브를 타고 한여름의 낮을 즐기는 아이들을 비추어요. 그 무리에 제가 있어요.     


제 이름은 소란이고 나이는 8살이에요.

친구들과 노는 게 제일 좋고,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요. 또 앞머리를 내리고 양쪽 갈래머리를 하면 저절로 춤이 처지는 아이죠.   

  

오늘 드디어 부모님과 함께 계곡에 놀러 왔어요. 방학이지만 학원과 집을 도는 저에게 엄마 아빠가 모처럼 선물을 주셨어요. 마침 날씨도 반겨줘서 하늘은 에메랄드 바다 같고 시원한 계곡물은 탄산수같이 짜릿하고 달콤해요.     


마법사 같은 계곡물은 낮은 곳에서는 무릎 정도에서 깊은 곳은 제 어깨까지 와요. 그런데 때때로 흐르는 물살이 절 무섭게 감아요.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으면 자신감이 풍선처럼 부풀어져요. 마치 계곡 탐험대가 된 것처럼 다리 밑으로 스쳐 가는 송사리 떼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열심히 물고기를 따라 계단처럼 돌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다랐어요. 그때, 마치 보석이 반짝이듯 무언가가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숨을 죽이고 자세히 보니 잠자리네요. 조심스레 손끝에 올렸더니 잠자리가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어요.   

  

"어? 왜? 날아가지 않지?"     


잠자리가 죽었나 ‘뚝’ 쳐 보는데 제 손가락을 더 ‘꽉’ 지네요. 분명히 살아있는데, 도망가지 않고 저에게 꼭 붙어 있어요. 아무래도 물속에서 구해준 제가 고맙나 봐요.

   

잠자리가 제 손에 있으니, 튜브를 타고 계곡물을 조심조심 유유히 따라가요. 잠자리도 제가 좋은지, 햇빛이 반사된 날개가 점점 더 빛나요. 아마도 날개가 다 마르면 자연으로 돌아가겠죠?. 비록 잠자리가 제 곁을 떠난다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꼭 살려야 될 거 같아요.     


시간이 계곡물 흐르듯 지나요. 이제는 제법 잠자리의 날개가 말라 건드리면 바스락바스락해요. 마음껏 날아가라고 잠자리를 제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려봤어요.  

   

"어? 왜? 안 날아가지? 내가 좋은가?"     


잠자리는 날개를 내리고 제 어깨에서 곤히 자요.

한동안 꿈나라에 빠진 잠자리가 깰까 봐 제 어깨를 더 꼿꼿이 세워요.

그런데 몸에서 신호를 주네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화장실은 계곡 위에 있어요.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는데, 저를 알지 못하는 아저씨가 제 가슴에 있는 잠자리를 보고 깜짝 놀라요.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이야! 잠자리가 너를 엄마인 줄 아나?."     


순간 제 어깨가 으쓱 올라가요. 잠자리가 날아가면, 너무 아쉬워 눈물이 날 거 같아요. 하지만 잠자리를 살려야 하니 날아가라고 가슴 쪽에 잠자리를 살짝 내려놓아요. 그런데 수영복에서도 안 떨어지는 잠자리. 정말 제가 좋은가 봐요.     


‘이제 너의 이름은 여름이야!’     


화장실을 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계단을 내려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 아빠가 안 보여요. 제가 놀았던 캠프 존이 아니에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아요. 제가 정말 길을 잃고 미아가 되는 건가요? 그럴 수 없다고 아래 캠프 구역까지 뛰어다녀요.     


"분명히 여기인데 왜 아니지?"     

제 가슴은 기차가 달리듯이 쿵쿵 치네요. 마지막 캠프 지역까지 내려가니 이제는 정말 제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위에서 남자 2명이 내려와요. TV에서 나오는 나쁜 아저씨인 거 같아요. 마치 절 잡으러 내려오는 거 같아요. 순간 저는 나무 뒤로 숨었어요. 모자 쓴 아저씨는 저를 흘깃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가요. 다행히 여름이가 제 옷을 꽉 잡아 절 안심시켜요.   하지만 코끝이 시리고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부모님을 꼭 찾아야 되어요. 마음을 다시 잡고 올라가요. 걸음은 빨리 움직이지만, 가슴은 세차게 흔들려 제대로 걷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시 처음부터 캠프 구역을 하나하나씩 훑어봐요. 저 멀리 화장실이 보여요. 부모님을 꼭 만나야 하는데 한곳 한곳 가는 곳마다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아요.

      

‘엄마, 아빠! 어디 계신 거죠?’     


결국, 화장실 앞까지 왔어요. 앞이 캄캄해요. 이제는 정말 어른의 도움이 필요해요.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한테 핸드폰으로 엄마한테 전화해달라고 해야겠어요. 아니면 캠프 관리사무소로 가 안내방송을 해달라고 부탁해야겠죠. 그때였어요. 누군가 제 등을 쳐요.     


"소란아! 너 화장실 갔었어? 갑자기 사라져서 엄마가 나왔어!"

"엄마! 엄마! 으앙."     


이제야 마음껏 울 수 있을 거 같아요. 콧물 눈물이 범벅되어 엄마의 따스한 가슴에 눈물 도장을 찍어요.      


"화장실 갔다가 엄마 아빠 있는 곳을 못 찾아서 여기저기 다 뛰어다녔어요."

"어머나!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딸! 엄마가 이제 알게 되어 미안해."     


엄마가 세차게 저를 안으려고 해요. 순간 여름이가 생각났어요     


”엄마, 잠깐 여름이가 내 가슴에 있어! 조심해줘!“     


이제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있어요. 엄마 손을 잡고 우리가 놀았던 장소로 가보니, 부모님은 화장실 옆 캠프 존이었네요. 왜 화장실 옆에 있는 것을 모르고, 그 다음부터 뛰어다녔을까요?. 속상하면서도 부모님을 찾았다는 생각에 배가 고파졌어요.     


엄마는 치킨과 콜라를 건네줘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저희 기분을 살랑살랑 기쁘게 해요.      


‘여름이도 배가 고플 텐데, 무엇을 먹여야 하지?’      


여름이를 조심스레 마른 돌 위에 올려놔요. 그리고 풀잎을 하나하나씩 갖다 줘요. 먹는 게 힘들까 봐 풀 위에 생수를 조금 뿌려 잠자리 얼굴에 가져다줘요. 하지만 여름이는 돌이나 풀 위보다 제 몸이 더 좋은가 봐요. 다시 제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려놔요.     


간식을 다 먹고 조금 더 노니 집에 갈 시간이에요. 엄마는 짐을 챙기면서 "여름이 어떻게 할 거야."라며 계속 묻네요. 돌 위에 여름이를 놓아봤어요. 힘없이 쳐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엄마! 여름이 데리고 갈게요!"     


드디어 여름이와 같이 차를 타요. 정말 이때까지 내 곁에 있을 줄 몰랐어요. 풀밭에 내려 주려고 했지만, 기운이 없는 거 같다가도 제 옷에 올리면 옷자락을 꽉 잡아요. 마치 제 곁을 떠나기 싫은가 봐요.     

차가 움직이고 30분이 지났을까요? 조금씩 제 눈꺼풀이 무거워져요. 솔솔 잠이 몰려와요. 그 순간 여름이가 제 옷에서 떨어졌어요. 그것도 바닥에 누워있어요. 저는 깜짝 놀라 안전띠를 풀고 여름이를 안아요. 전혀 미동이 없어요.     


"여름아, 여름아!“     


다시 한번 제 옷 위로 올려봐요.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힘없이 떨어져요.     


"엄마! 내가 여름이 풀숲에 내려 줄 걸, 내가 욕심부려서 죽은 거야?"

"아니야, 여름이는 너와 함께 있는게 좋았나봐 그리고 편안하게 무지개 다리를 건너려고 너의 곁을 안 떠난 거야. 여름이는 네가 끝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웠을 거야."     


또다시 슬픔이 찾아왔는데, 엄마의 말로 위로를 얻어요. 하지만 여름이와의 소중한 순간이 이게 마지막이라니 제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요. 그 눈물이 여름이의 날개에 닿아요.      


집에 도착했어요. 마침 란다에 노란 화분이 보이네요. 노을이 들어오는 그곳에 여름이를 묻어줬어요. 그리고 거기에 조화 노란 꽃을 놓았어요. 여기는 여름이 무덤이에요.      

짧지만 저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힘든 시간을 함께해 준 소중한 친구 여름이가 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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