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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초상화

예기치 않은 사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올 때

밝은 햇살이 창으로 들어옵니다.

햇빛은 어느새 소란이 2층 침대 위에 드리워지네요

침대에는 소란이와 구월이(고양이)가 잠들어 있어요.

구월이는 소란이와 같은 자세로 옆에서 잠을 자요

골~골~ 소리를 내며 팔을 위로 뻗어 마치 사람이 바로 누운 것처럼 자지요


소란이는 구월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밥도 챙기고, 고양이 똥도  치우며 이젠 제법 고양이 집사가 되었어요.

동생이 없는 소란이에게 고양이는 동생과 같은 존재예요.


그러던 어느 날, 소란이는 구월이랑 놀기 위해 고양이 장난감을 들고 흔들었어요.

구월이는 흔들리는 장난감을 보면 점프를 해요. 쥐 인형을 꼭 잡겠다고 두 팔을 뻗어 점프를 하거나 회전을 하면서 잡아 그 모습이 참 우습고 재밌어요


"구월아~ 구월아~ 놀자!"


그런데 오늘 구월이는 캣타워에서 술래잡기를 하듯 나오지를 않아요.


"구월아 아파! 오늘 이상하네"


소란이는 구월이 몸을 쓰다듬어요. 평소 같으면  벌러덩 흰 배를 보여주며 눕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개를 돌리고 손을 피하네요.


"엄마! 구월이가 삐졌나 봐!"


소란이는 서운해하면서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덮어요.

밤에는 구월이가 침대 위로 올라가 자기 옆에서 잘 것이라 생각했지요.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직 아침이 안된 거 같은데 소란이 눈이 떠졌어요. 바로 엄마 목소리 때문에 새벽에 깬 거예요.


엄마는 거실에 뱉어놓은 구월이의 토를 연신 닦으며 한숨을 쉬네요.


"구월이가 베란다 트를 먹었나 봐. 스티로폼 같은 게 자꾸 나오네.

지난번 병원에서 타 났던 소화제를 먹여보고 안 나으면 병원으로 데려가야 되겠어"

" 알았어! 꼭 데려가야 돼"


소란이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자요. 잠을 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생각을 한 건지 소란이는 어수선한 마음으로 두 눈을 감아요.


다시 햇빛은 언제나 그랬듯이 창으로 들어와요.

소란이가 일어나 보니 여전히 구월이는 오지 않았네요. 거실로 나갔더니 엄마의 얼굴이 심각해요


"약을 먹어도 다 토하네. 자꾸 방귀만 끼고"

"어 방귀?"


소란이는 배 아플 때 방귀가 자꾸 나왔던 기억이 나요. 창피하지만 방귀를 계속 뀌다 보면 화장실을 가게 되고 뱃 속에 꼭꼭 숨어 있던 딱딱한 똥이 나오게 되지요.

 

"엄마 화장실에 가게 해! 똥 싸면 나아질 거야"

"어 똥도 설사를 계속하네. 다른 때와 다른 거 같아. 물도 전혀 안 마셔. 어제부터 지금까지 밥도 하나도 안 먹었어"


아무래도 소란이의 생각이 오늘은 잘 맞지 않네요.

소란이와 엄마는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구월이를 여러 방향으로 엑스레이를 찍었어요.

특별하게 이상 증상은 없어요. 하지만 다시 와서 초음파를 찍자고 하네요.

엑스레이는 장에 막힌 부분을 볼 수 없다고 하시면서.....


"오늘 소란이 옷과 신발 사주려고 했는데......별 일 아니어야 하는데........"


엄마는 늘어나는 병원비 걱정을 해요.

다시 의사 선생님이 왔어요. 초음파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구월이의 소장에 4군데나 매트 조각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검게 되는 부분을 가리키며 장폐색이 오고 있다고 말씀하시네요.


"장폐색? 그게 뭐예요?"

소란이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장이 썩어 들어가는 거예요. 장을 잘라내야 되어요. 그리고 장을 이어줘야 하는데 구월이는 지금 여러 군데가 이미 장폐색이 들어가서 큰 수술이에요. 수술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어요"


엄마는 소란이가 말 못 하도록 소란이의 손을 잡으며 말해요.


"수술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살 수 있나요? 수술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은요?"

"수술을 하지 못하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고 수술하면 50% 이상은 살 수 있어요"

"비용은 얼마죠?"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 나올 거예요."


한동안 울고 있는 소란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병원 의자에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소란아, 엄마가 구월이 수술하면 해외 나가려고 모아놓았던 여행 적금을 깨야 할 거 같아. 소란이 괜찮니?"

"어 나는 괜찮아. 구월이랑 헤어지기 싫어. 무지개다리 건너지 않도록 해줘"


엄마는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하더니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갔어요.


그날 구월이는 수술을 했어요.

엄마와 소란이는 집에 돌아간 후 울면서 베란다에 있는 놀이매트를 다 버렸어요.

구월이가 또 먹으면 이젠 정말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어요.


한바탕 집을 대청소한 후 소란이는 책상에 앉아 구월이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구월이와의 추억이 몽실몽실 떠올랐어요.


소란이가 잘 때 엉덩이를 맞대고 같이 자면 그 따뜻한 고양이 체온이 느껴 저서 좋았어요.

문을 열 때마다 그 앞에서 옆으로 누워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 모습 보면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고양이 그릇에 밥을 줄 때면 내 무릎에 얼굴을 비볐어요.

그런데 왜 이리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요?


다음날 소란이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어요.

구월이는 목에 깔때기 카라를 하고 주사를 맞은 채 힘없이 앉아있어요. 그런데 소란이를 보자 구월이는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울기 시작해요


"야옹~야옹~ 야옹~"

"엄마! 구월이가 살았나 봐. 집에 가고 싶대 "

"병원에서 며칠은 더 입원해야 된대. 몸 좋아지면 퇴원할 수 있대"


소란이는 구월이가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눈빛을 정확히 보았어요.

집에 오면 더 잘해줄 거라고 다짐하면서 전에 그렸던 구월이 그림을 캣타워에 붙여요


퇴원한 구월이는 며칠 동안 밥을 잘 안 먹었어요.

똥도 안 싸고 밥도 잘 안 먹어서 엄마와 소란이는  낮으로 걱정을 했어요. 똥도 5일 동안 못 싸 병원에서 관장(억지로 똥 빼기)도 했어요.


"구월이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지?"


소란이의 마음은 계속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살 수 있다고 믿었어요.

구월이가 그런 소란이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6일 지난날부터 물에 불린 고양이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오줌도 하루에 두 번, 똥도 물똥이지만 싸기 시작했어요.

10일 지나니 밥도 이젠 잘 먹고 똥도 한번 제대로 싸네요.


전에 처럼 활발하게 뛰어놀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살아있는 구월이가 있어서 힘이 나요.

소란이는 구월이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거예요.

고양이는 소란이 옆에서 늘 잠자는 모습을 지켜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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