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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작은 별

실망했지만 다시 도전하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첫 합주가 있는 날이에요.


혼자 매일매일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처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날이지요. 하늘도 유난히 파래요. 날씨도 저에게 용기를 주는 거 같아요.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왠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몰려오면서 으쓱해져요.     


“처음이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그냥 언니 오빠들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돼”     


엄마는 늘 나에게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해요.      

건물 5층으로 올라갔어요. 바이올린과 첼로 등 악기 소리가 복도에서 흘러나오네요.

악기 소리는 마치 저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건네 준 바이올린을 들고 합주실로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들어갔어요.     


맨 앞자리는 이미 차 있어요. 저같이 나이 어린아이들은 주로 앉는 곳인데 아쉬워요.

앞에 앉으면 지휘자 선생님의 표정과 말을 잘 확인할 수 있어 좋았는데, 뭔가 꼬이네요.

두 번째 줄에 앉았어요. 아직 선생님은 오시기 전이에요.

아는 친구가 있을까 두리번두리번했는데 아무도 없네요.

한 줄 차이인데 여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 오빠와 중학생 언니 오빠들이 앉아 있어요.

그런데 저를 유심히 바라봐요.     


'유튜브에서 봤던 무서운 언니 오빠들이 왜 날 쳐다 보지?'

애써 태연한 척 악기를 꺼냈어요. 그런데 계속 시선이 느껴지네요.   


“야! 이름이 무언지 물어봐봐! 오늘 처음 온 거 같은데?”     


왠지 가슴이 콩닥콩닥 거려요. 8살 인생에서 제일 낯선 상황이에요.

언니 오빠들은 나름대로 멋진 바이올린 곡을 연주해요. 그런데 악보를 펴고 연주하는 제 곡은 '작은 별'이에요.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 것 같아요. 아직 선생님은 안 오셨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죠.


드디어 선생님이 오셨어요. 첫 연주를 '작은 별'로 다 같이 연주해요. 여러 악기가 하나의 음을 내는 것은 저의 귀에도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어요. 그런데 저의 연주가 튀는 것 같아요. 자꾸자꾸 틀리니 바이올린을 크게 연주할 수 없어요. 틀릴 때에는 언니 오빠들이 일제히 저를 쳐다봐요. 그런데 선생님은 바쁘신지 저보다는 앞줄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요.      


’ 선생님 저 두 번째 줄에 있어요. 저 좀 봐주세요 ‘     


1시간 합주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어요. 저는 얼른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그 모습을 엄마가 보고 쫓아오네요.


엄마는 화장실로 가서 저에게 물어봐요.


"처음 와서 연주하니까 잘 안되지? 언니 오빠들이 쳐다봐도 연습해서 연주하면 잘할 거야"


우리 엄마가 맨날 하는 이야기예요. 연습하면 잘할 거라고, 그런데 왜 저는 마음이 답답할까요.


두 번째 연주가 시작되었어요. 이번엔  저 혼자 딴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언니 오빠들이 또 한 번 저를 쳐다보았어요. 선생님도 저를 쳐다보았어요.


'왜? 내가 뭘 어쨌다고? '


선생님은 괜찮다고 손짓을 해요. 하지만 아직 곡이 안 끝나서 그런지 계속 지휘를 하세요.  오늘은 정말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준비되지 않으면 연주하기 싫어요. 그만 저는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버렸어요.


엄마가 말해요.

 "소란아!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교실로 다시 들어가! 잘할 수 있어!"

"싫어! 싫어! 나 바이올린 안 할 거야!"

     

그 이후로 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고 있어요.

바이올린은 검은색 가방에 꼭 꼭 숨겨져 있어요.      

엄마도 제가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 이제 그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신대요.

어차피 '음악 전공을 시키려고 한 게 아니다'하며 속으로 위로한대요.          


어느 날 엄마는 토요일 오후에 공원으로 저를 데리고 갔어요. 연주회가 있다고 하면서

그곳에 가니 예전 바이올린 선생님도 계셨어요.


"소란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미소를 애써지어 보았어요.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요.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고 사회자는 어린이 소년소녀 오케스트라를 소개했어요.

어린이 소년소녀 오케스트라 단원이 한 명 한 명씩 무대 위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거기 내 유치원 단짝이었던 하늘이가 있네요.


'하늘이는 언제 바이올린을 배운 거지? 내가 1년 전에 다녔을 때만 해도 바이올린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


지휘자의 시작 사인에 맞춰 하늘이가 연주를 해요.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합주를 해요. 순간 제 마음에는 소용돌이가 일었어요.


"하늘이는 나보다 바이올린도 늦게 뵈었는데 언제 저기에 앉았지? 나는 지금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는데"


너무 화가 나고 저기에 없는 제 자신이 속상하고 초라해 보여요.


"소란아! 저기 하늘이도 있네. 언제 저기에 들어갔대! 멋있다!"


엄마는 제 화가 난 마음에 부채질해요.

공연이 끝나고 엄마는 하늘이가 있는 곳에 저를 데려갔어요.


"하늘아 너무 연주를 잘하던데. 언제부터 배웠니?"


엄마가 계속 칭찬을 하는데 보기 싫어요. 저는 애써 안녕? 하고 인사하고 뒤돌아섰어요.


집에 와서 내 방에 들어갔는데 바이올린이 검은 가방에 꼭꼭 숨겨져 있어요

저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어요. 그곳에 제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서운했어요.

침대 위로 올라가 조용히 울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방문을 열고 다시 문을 닫아요.


다음날 저는 다시 소란이에요. 어제 슬픈 기억은 안 하는 나름 긍정적인 아이예요.

엄마가 아침밥을 차려주며 말을 해요

  

"어제 소란이 슬펐니?

엄마도 어렸을 때 참 많은 실패를 했어. 하지만 계속 노력했더니 안 되는 것도 잘 되더라"


엄마가 절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이겠죠? 애써 잊으려고 했는데 다시 기억이 나네요.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그래도 유치원 때 바이올린 참 잘했었는데, 다시 시작해? '

'한번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니 그냥 잊어버려? '


바이올린이 걸려 있는 벽을 쳐다보니,  

검은 가방에 꼭꼭 숨겨 있는 바이올린이 열어달라고 외치는 거 같아요.  


오늘은 토요일. 엄마와 다시 바이올린을 하기로 했어요.

내 방에서 하얗게 먼지 쌓인 바이올린을 꺼냈어요.

'미용실 할 때 미, 라면 할 때 라' 선생님이 음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나요


나도 모르게 바이올린을 내 어깨 위에 올리고 '작은 별'을 연주해요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그래요. 전 작은 별이에요. 저 같은 작은 별은 세상에 너무나 많겠죠.

하지만 작은 별은 빛을 내요. 

언제 어디서나 저도 빛을 내는 작은 별이 될 수 있겠죠?


"소란아. 레슨시간 늦겠다! 어서 나와!"


사실 제가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지, 아님 그냥 취미로 연주할지, 아니면 도중에 그만둘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시작할 거예요. 이렇게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겠죠?

다시 연주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인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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