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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Mar 10. 2024

나의 첫 문장

에세이 : 나는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쓴다.

처음 글을 쓴 날이 생각난다.


2024년 3원 10일 오후 06:08이 막 지나는 지금처럼.

날은 쌀쌀했고 해는 많이 기울어져 있던 순간. 복잡한 마음에 두 눈이 시리도록 울고서는 겨우 쓴 한 줄.


‘병이 나서 하루를 버렸다.’


 오늘처럼 날이 맑고 좋은 날 글을 처음 썼던 거 같다.

앞에 쓰던 글에도 써두었지만, 난 우울에 빠졌었다. 하루 중 해가 세상에 첫 안녕을 고할 때쯤 눈을 감았다가 두 번째 안녕을 고할 때 눈을 떴다. 내게 반년 정도는 낮이 없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엉망진창인 마음을 따라 방 안은 언제나 어두웠고, 깔끔하지 못했었다. 그 시간을 지나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공간은 그 공간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는 것을. 글의 모양새도 그렇다는 것을.


 그렇게 처음.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저 짧은 문장을 시작으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어두울 거 같던 마음은 조금씩 해가 비추기 시작했고, 문장은 좀 더 길어졌다. 왜 내가 싫었는지. 가족이 왜 미운지. 지난 삶에서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멋지지 않은 글재주로 두서없이 쓴 글들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밉진 않았다.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하고 싶은 말이 늘어났다.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던 마음을 정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매일은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정신이 맑을 때, 글을 적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줄, 그 후엔 반 페이지, 그러다 앉은자리에서 서너 장은 그냥 써 내려갔다.


 잃어버렸던 표정을 글을 쓰며 다시 찾았다. 속상한 마음에 울상을 지어보기도 하고, 어제 쓴 글을 보며 창피해서 머쓱한 표정도 지었다. 글을 다 쓴 후 맑아진 기분으로 하늘을 볼 때면, 조금 더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어색한 미소도 지었다. 그렇게 멈췄던 삶에 다른 계절이 찾아왔다. 조금 더 적어보겠다고 세상을 보며 어울리는 문장을 떠올렸다. 계절을 보며 감정에 옷을 입히고, 날씨를 보고 마음의 색을 칠했다.


 어떤 날의 하늘은 내겐 기쁨이었고, 또 다른 날은 황홀, 또는 짐이 되기도 했다. 내게 살라고도 하고 죽으라고도 했다. 그럴 땐, 꼭꼭 다음 소설에 이 감정을 글로 쓰겠다며 같은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정말 이상했다. 겨우 적어내는 것인데, 적을수록 좋아졌다. 글이 좋아졌고, 그 글을 쓰는 내가 좋아지고 있는 거 같았다. 글을 쓰며 우는 모습도 어쩌면 귀여워 보였고, 진지하게 인상을 쓰던 순간도 멋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글이 좋아질수록, 부족한 것들도 선명하게 보였다. 창피했다. 그래서 혼자 몰래 공부했다.


못된 생각, 마음, 말투, 목소리, 삶을 대하는 자세, 태도, 눈빛.


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마음이 글에서는 금방 티가 나서. 내 마음부터 고치지 않고선 내가 원하는 글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국 바꾼 지금의 삶을 대충 되짚어보자면, 물리학과를 나와 지금 출판사 마케터를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반전의 삶을 산 거 같다.


처음 글을 쓰고 나서 7년이 지난 지금.

나의 글은 여전히 미숙하다. 그러나 여전히 글이 좋다. 글을 좀 못 쓴다고 혼낼 사람도 없고,  출판사에 일하면서도 여전히 글을 좋아하고, 새로운 원고가 무척이나 궁금하고, 새로 알게 될 작가님들이 기대된다.

 내가 쓴 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매일 순간을 결심으로 살아내는 내 모습도 퍽이나 마음에 든다. 그래도 늘 처음인 오늘이라 미숙한 점이 많지만, 그 미숙함 속에서 태연한 척 연기하는 회사 생활도 조금 웃기고 재미있다.


요즘도 우울이 종종 다시 찾아오지만, 이젠 그래도 퍽이나 금방 털어낸다. 글을 쓰고 읽고 울고, 잠을 푹 자고 밥을 잘 먹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먹어 버린다. 날아가는 감정을 가만히 보고 있는다. 행복도 우울도 훌훌 날아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언제는 우울조차 날아가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싶어 아쉬움도 같이 날려 보낸다.


이렇게 어제보다 조금 더 큰 나는 전과는 달라진 첫 문장을 적어본다.


오늘의 첫 문장

‘오늘도 잘 놀았다!’


늘 첫 문장은 별거 없으니. 어이없어도 오늘은 좀 웃어주세요.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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