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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Mar 25. 2024

마음을 지키는 일

에세이 : 계속 적어내는 것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 모호하고, 다채로운 감정.

알록달록한 단어들을 모아 나열한다고 해도 사랑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그러했다.


글을 쓸 때면 나의 일상이 소설처럼 특별해지고, 지나치는 모든 이가 가지고 있을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을지.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함이 없이 멍하니 지나치던 삶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작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었다.

다 커버린 내가 다시 아이 같을 수 있는 순간이라니. 그 작은 순간이 어떻게 삶을 행복으로 물들일 수 있는지. 이상한 감정이었다.


사랑하는 무언가가 찾아온다는 것. 잔잔히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이 찾아왔다는 것은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다. 떨리는 마음은 어쩌면 두려움과 같은 울림이라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 애정이 언젠가 사그라져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다채로운 세상을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다시 동굴 같은 방에 처박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게 될까 봐. 글이라는 이 한 단어가 세상에 나를 끌어내 주었는데, 그것이 더 이상 내게 그런 존재가 아니게 될 날이 찾아올 거 같아서 마음이 커진 만큼이나 두려움도 같이 커졌다.


글이 진저리 나게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더 이상 글자는 보기도 쓰기도 싫어지는 날이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휘저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생각을 하던 때에는 돌이킬 수 없이 글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그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 어설픈 글을 쓰며 울고 웃었던 날과 욕심에 쌓여버린 책이 방 한구석에 쌓여있었다. 내게는 이미 글이란 애정과 사랑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다짐보다 포기가 더 어려운 사랑이 되어버린 날. 나는 이것을 잃고 싶지 않아 무언갈 시작해야 했다.


사랑하는 것을 잃고 싶지 않다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이 그렇게 쉬이 마음이 사그라들었던 건, 사랑은 그냥 되는 줄 알아서. 그저 좋아만 하면 되는 줄 알아서. 노력 같은 건 사랑에는 필요가 없는 줄 알아서. 이전에 사랑했던 것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진 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도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출판사에서 일하기로 다짐했다. 글을 좋아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마음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 글을 곁에 두고, 종종 쓰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싫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다시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서. 덜컥 출판사에 취직했다. 그것이 나의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싫어진대’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 지금.

매일 같이 글을 보고 카피를 쓰다 보면, 글이 눈에 안 들어오거나 오늘은 글자는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들이 분명 오기는 했다. 하지만, 어떤 걸 싫어한다는 것도 다른 애정인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내가 글이 싫어져도 글을 좋아하기에 싫어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고, 이 마음이 지겨운 순간에도 나는 이 일과 글을 여전히 애정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출판사에 일하며, 이전만큼 내가 좋아하는 글을 골라 읽거나 쓸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내가 모르던 마음들을 들여다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출판계에 종사하지 않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글만 읽어 그 글들이 온 세상인 줄 알고 거들먹거리며 살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창피한 행동을 덜 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글을 읽어야 하는 매일 덕분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매일같이 상기할 수 있어서. 종종 눈을 지그시 감고 내 삶에. 내 선택에 감사하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나의 수많은 카피와 원고에 대한 나의 짧은 평가들. 그리고 내가 쓰고자 했지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쌓인 책상 위 이면지가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을 보여준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의 사랑은 눈에 보인다. 볕에 노랗게 바랜 문장들이 나의 이 마음에 시간이 쌓인 것을 알려준다.

늘 변함없는 사랑은 아니어도 사랑의 노력과 시간이 눈에 보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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