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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나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2)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을 자격

by 정린

1만 일을 살아낸 사람들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을 일해온 두 어른을 만났다.
30년이면 1만 시간도 아니고, 1만 일이 넘는 시간이다.

묵묵히 30년을 일한 사람은 제법 많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사람은 그보다 적고,
거기에 재능과 노력, 운까지 더해져 사회적 인정이나 성취에 이른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그 두 어른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공통점은 있다.
일의 결과물을 글로 남겨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는 것.
한 사람은 언론, 다른 한 사람은 연구.
분야는 달랐지만,
그들의 글은 분석은 깊고, 표현은 담백하며, 주장은 담담했다.
하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반론은 집요했다.

그들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하면,
수십 년간 쌓아온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들이 수북하다.
그러나 그들은 명예나 자리를 탐해 글을 쓰지 않았고, 권력에 타협하는 식의 글을 쓰지도 않았다.






돌아가고 싶은가요?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앞으로의 삶을 덜 후회하고 싶다는 사심이 올라오는 순간,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나이로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다른 사람인데도, 답은 닮아 있었다.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보고 싶기는 해요.
청춘이 다시 주어진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이 더 편해요.
과거로 돌아가면 가난했고, 가족들과 투닥거리는 일도 다시 겪어야 하겠죠.
지금은 배우자도, 자녀들도 관계가 좋고,
일은 하지만 스트레스는 없거든.”



또 다른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이 먹은 게 제일 자랑스러워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은 것도 감사하고.
근데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무엇을 바라서, 눈치 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






수천 일을 살아낸 나에게


1만 일의 오늘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이 정도라면,
나는…
비록 성취는 하지 못했더라도,
충실하게는 살 수 있었던가?
그럴 의지와 용기는 있었을까?

나는 한 직장에서 1만 일에는 모자라지만, 수천 일을 보냈다.
좋은 순간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왜일까.
후회 없을 정도로 다 쏟지 못해서일까?
내놓을 만한 결과물이 없어서일까?
지금을 충분히 감사하지 못해서일까?






생각은 계속된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 보았다.
현재에 머무는 삶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준다.
반면 세상은 점점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
배움과 경험의 기회도 넘쳐난다.

다만,
그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엔,
지금 내 나이가 애매해졌을 뿐.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그 선택은, 수천 일이 지난 후의 나에게 어떤 마음을 남길까.
그때 나는, 지금의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직은 자격미달이지만,
언젠가 나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을 자격을 갖게 될까?



#제나이로돌아간다면 #브런치북취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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