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법은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의사항은 미리 알아두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철학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살면서 깨달았고 지키려 하는 삶의 태도 중 하나다.
“사용방법보다 유의사항을 먼저 보자.”
애정하는 후배들에게도 가끔 건네는 말이다.
가습기, 정수기, 착즙기, 공기청정기, 세탁기, TV, 냉장고, 헤어드라이기, 커피머신, 밥솥, 청소기, 전동칫솔 등.
작은 집, 단출한 살림살이에도 전자제품이 20여 가지에 이른다.
사용하면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제품들인 만큼 고가이기도 해,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들이게 된다.
이들을 집에 들이는 날이면 얼른 상자에서 꺼내어 적당한 자리에 놓고, 플러그를 꽂고, 전원 버튼을 눌러 문명의 편리를 누려보고 싶어진다.
수십 가지 제품을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뻔해 보이는 과정이다.
플러그와 전원 버튼만 찾으면, 바로 가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뻔한' 물건들에도 대부분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다.
“나 이런 물건이야. 내 소개 좀 들어줄래?”
상자 안에서 설명서가 빤히 얼굴을 내민다.
사용설명서는 언뜻 보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 같지만,
막상 열어보면 첫 장엔 ‘주의사항’과 ‘경고’가 자리한다.
그 뒤에야 구성품 설명과 사용 순서가 이어진다.
나 역시 평소에 ‘사용법보다 주의사항이 먼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작년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처음 산 공기청정기의 필터 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 한 달을 살았던 것.
매일같이 청정 상태로 표시되기에
‘원래 공기가 나쁘지 않나 보네’
혹은
‘청정기가 아주 잘 작동하나 보다’ 하고 안심했다.
그러다 필터 청소를 위해 처음으로 커버를 열었고—
‘앗, 비닐에 곱게 싸여있네. 공기가 깨끗한 이유가 있었네.’
'아. 바보다. 나!'
‘올바르게, 안전하게, 오래 사용하는 법 = 주의사항 + 사용 순서’가 아닐까.
고장 없이 물건을 사용하려면,
갈등 없이 사람을 만나려면,
문제없이 돈을 쓰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의사항”을 익혀야 한다.
전자제품은 사용설명서의 첫 페이지를,
사람은 기본적인 예의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대출은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을,
법카는 회사의 지출 가능 항목과 사용 상한을.
인생이라는 시간을 잘 써 내려가기 위해서도,
행복한 사용법을 찾기에 앞서 '주의사항'부터 살펴보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은 꼭 해야 하는지.
그 구분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후회와 불행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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