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기다
"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문득, 칵테일 사랑 노래가 떠오르는 날이다.
금요일이 휴가였음에도 돌덩이 같은 일들을 해치우느라
채우지 못한 정서적 결핍이 머리와 마음에 맴돈다.
쇼핑으로라도 그 빈틈을 메워야겠다.
운 좋게도,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주말과 장날이 겹쳐야만 여유 있는 쇼핑을 즐길 수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날이 따뜻해져서인지, 시원한 우뭇가사리 콩물이 등장했다.
주말 브런치 메뉴로 딱이다.
투명한 컵에 담긴 투명한 우뭇가사리 한 잔, 고소한 콩물 속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천 원. 편의점 생수 한 병 값이다.
이렇게 쌀 수 있는 생산과 유통의 노하우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자리를 옮겨, 줄이 길게 늘어선 호떡집에 섰다.
종이컵에 반 접어 담아주는 K-팬케이크, 이것도 천 원이다.
호떡을 손에 쥐고 나니, 주말 장터 쇼핑의 달달함이 남아있던 화를 달래준다.
호떡집 맞은편,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꽃 매대가 시선을 끈다.
프리지아 두 단이 오천 원이란다. 오랜만에 생화를 샀다.
한 아름 안겨오는 노란 향기를 빨리 집에 들이고 싶어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그때, 앞서가는 아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키에, 양갈래로 묶은 머리가 앙증맞다.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가게 앞에 선다. 나도 따라 섰다.
핫도그 하나 이천원. 고속도로 휴게소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푸근한 정이다.
엄마가 핫도그에 설탕을 골고루 묻혀 아기 손에 쥐어준다.
작은 손에 들린 핫도그는 야구배트만큼 커 보인다.
묵직한 핫도그에 아기가 기우뚱하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아주었다.
코감기가 남았는지, 빨갛게 헌 코밑마저 사랑스러웠다.
나는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리고 다시 걸었다.
딸기 아저씨가 보인다.
아, 이제 딸기도 막바지구나.
스티로폼 박스에 가득 담긴 딸기 한 박스가 오천 원, 두 박스는 팔천 원.
한 박스만 샀다. 그런데 아저씨는 사천 원만 달라고 하신다.
주말 디저트를 듬뿍 확보했다.
집으로 돌아와, 유리병 네 개에 프리지아를 나눠 꽂았다.
햇살 한 줌을 살짝 쬐어준 뒤, 집안 곳곳 시선 머무는 곳마다 꽃을 놓았다.
오천 원으로 집 안에 봄을 들였다.
4월의 끝자락, 향긋한 봄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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