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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봄밤 산책

이팝나무 아래에서

by 정린

밤공기는 봄꽃 향을 품고 있었다. 그믐이라 보이지 않는 달빛 대신 하얀 이팝나무가 빛났다.



어제저녁, 집에서 먼 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모처럼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았는데, 메인 산책길을 따라 하얀 이팝나무 꽃이 만개해 있었다. 까만 밤하늘 아래, 커다란 가로등처럼 환하게 빛났다. '내일은 꼭 휴대폰을 들고나가 찍어야지.' 생각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오랜만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계절과는 맞지 않지만, 운치는 있다. 여름밤을 떠올리게 하는 잔나비의 '밤의 공원', '가을밤에 든 생각', 그리고 겨울의 노래, 카더가든의 '명동콜링'을 번갈아 들으며 공원을 거닌다.

여기도 이팝나무가 있다. 어제 먼 공원은 강변을 따라 한 그루씩 이팝나무가 늘어서 있었다면, 이곳은 네모지고 작은 공원 안에 커다란 이팝나무들이 모여 있다.

음— 향이 코로 스며든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라일락 향과 귤꽃 향을 닮았다. 이렇게 작은 꽃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꽃들은 향이 비슷한 걸까?

이팝나무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눈꽃'의 의미하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꽃잎들이 수북이 모여 있는 모습이 쌀밥 같아 '이밥(쌀밥)'이라 불리다가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모두 어울리는 이름이다.

길고 가느다란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쌀 한 톨, 특히 길쭉하고 가느다란 안남미를 닮았다. 멀찍이 서서 보면, 공깃밥이나 주먹밥이 나무마다 수북이 매달린 모습이다.


노래가 귀를, 뽐내듯 피어나는 영산홍과 철쭉이 눈을, 이팝나무 향이 코를 향긋하게 적신다.

4월의 밤산책. 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일락이 진 것을 아쉬워하는 분들, 이팝나무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추천합니다.



달 없는 밤, 이팝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오늘의 산책 기록을 추가발행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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