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7) 다낭으로
벼르고 벼르던 베트남 여행이다. 14박 15일 일정인데 마음 같아선 3주 정도로 하고 싶지만, 베트남 무비자 체류 한계가 15일이라 비자받는 것도 번거롭기도 하여 15일로 참았다.
당초 호찌민 시로 입국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하노이에서 출국하는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혼자 배낭여행을 계획했으나, 출발을 며칠 앞두고 집사람과 아들 녀석이 따라붙겠단다. 부랴부랴 일정을 변경하여 세 사람 항공권을 끊으니, 성수기인 데다 촉박한 발권으로 인해 항공권 가격이 껑충 뛴다. 평소의 두 배도 넘는 것 같다. 타격이 막심하다. 변경된 일정은 셋이 함께 다낭으로 입국하여 다낭과 후에 5박 6일 여행 후 집사람과 아들은 먼저 귀국하고 나는 혼자 나머지 9박 10일을 배낭여행하는 계획이다.
베트남 항공을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을 운항하는 베트남 항공사는 국적기인 베트남 에어라인과 저가항공사인 베트젯이 있다. 베트젯이 가격은 파격적으로 싸지만 연발착이 심한 등 워낙 악명이 높아 베트남 에어라인을 택했다. 얼마 전 베트남 에어라인을 이용해본 친구가 입이 마르도록 좋다고 칭찬하길래 잔뜩 기대를 했는데 웬걸 우리나라 저가항공사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아무튼 다섯 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다낭에 도착했다. 동남아 공항 항공기 문을 나오면 느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고수 향과 비슷한 향신료 냄새와 습기 찬 공기, 그리고 뜨거운 열기다. 그렇지만 다낭은 향신료 냄새도 별로 나지 않고 기온도 높지 않다. 우리나라 6월 중순 정도. 그렇지만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공항에서 100불을 환전했다. 시내에 가면 더 좋은 환율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다. 230만 동, 주머니가 묵직하다. 우리나라 돈 1원이 베트남 돈 20동이다.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숙소까지 그랩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랩은 동남아판 우버 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택시 정류장 쪽으로 나오니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자기 차를 이용하라 한다. 값을 물어보니 60만 동, 우리 돈으로 3만 원이다. 그랩과 같은 가격이라 한다. 그랩 앱을 가동해보니 내 서툰 사용법을 보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보튼을 대신 눌러준다. 그랩 차들 가격도 거의 60만 동으로 뜬다. 좀 차분히 그랩을 검색해보려고 하면,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대신해주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정신이 산만해진다. 집사람도 공항에서 호텔까지 3만 원이면 괜찮은 것 같다고 타고 가자한다. 그렇지만 이들을 굳건히 물리치고 좀 한적한 곳까지 걸어 나와 차근차근 그랩을 사용해보니 호텔까지 8만 동(4천 원)으로 간다고 한다. 새 지프차를 편하게 타고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 잘못했으면 거의 10배 바가지 쓸 뻔했다.
숙소는 미케 비치에 있는 작은 호텔. 미케 비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이다. 오늘 오후는 손오공이 부처님에게 잡혀 오백 년을 갇혀 있었다는 오행산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늦어 다낭 시내 중심가 구경을 하기로 했다. 다시 그랩으로 차을 불러 시내에 있는 다낭 대성당으로 가려했는데, 웬걸 우리를 도로 공항으로 데려다준다. 내가 행선지를 잘못 눌렀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검증을 해보더니 그랩의 잘못이라 한다. 아직 앱이 불완전한 모양이다.
베트남 여행에서는 말이 안 통해 고생한다. 그런데 이제 구글 번역 앱 사용하니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 기사들도 모두 번역 앱을 사용한다. 얼마 전에는 알파고란 바둑의 신이 출현하더니 이젠 현대판 바벨탑도 건설되었구니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베트남에서 택시 바가지 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오늘 그랩 택시를 3번 이용했지만 그런 게 전혀 없다. 거스럼 돈도 정확히 계산해준다. 자투리 돈을 그냥 가지라고 하면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래 봤자 2, 3백 원에 불과한데...
15년 전에 다낭과 후에야 온 적이 있다. 그때 다낭이 아름다운 도시로 인상이 강하게 남아 꼭 다시 오려고 했는데, 이제 그 소원을 이룬 거다. 그런데 15년간 다낭은 너무 달라졌다. 그때만 해도 한적하고 고풍스러운 소도시로서 아늑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관광지로 개발되어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하다. 태국의 파타야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파타야는 해변만 휘황찬란하지만 다낭은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해외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가 일본의 오사카였는데, 이제 다낭이 오사카를 추월하였다고 한다. 곳곳에 한국인이며 한글간판도 많다. 물론 한국식당도 여기저기 보인다.
시내는 좁은 길에 사람과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복잡하다. 15년 전 하노이에 가서 오토바이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 거의 없고 차와 오토바이도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리므로 길을 제대로 건너기가 어렵다. 길 건너는 일이 제일 큰 스트레스이다.
한강은 다낭 중심가 옆을 흐르는 강이다. 우리 한강과 이름이 비슷한데, 너비가 거의 한강만 하고 물도 풍부하다. 다리와 강변이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되어 있고, 강 위를 오가는 많은 유람선들도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하고 있다. 다낭은 마치 빛의 도시 같다.
저녁은 쌀국수로 했다. 시내에서 흔히 보이는 허름한 쌀 국숫집을 찾았다. 역시 음식은 본토에서 먹어야 한다. 서울에서 잘한다는 일본 라면 집이나 베트남 쌀 국숫집을 찾아가 봤지만 번번이 실망했다. 본바닥의 깊은 맛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쌀국수도 역시 본바닥에 와야 한다. 쌀국수 세 그릇, 요리 두 접시, 그리고 타이거 맥주 3캔, 30만 동의 계산이 나왔다. 우리 돈 만 오천 원.
숙소로 돌아오는 길, 차를 조금 일찍 내려 미케 해변으로 갔다. 해변 백사장에 노천 카페가 있고, <마이 웨이>가 색소폰으로 흐른다. 잘하는 연주는 아니었지만 해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해변의 노천카페는 이 집이 유일하다. 공기는 여전히 습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기분은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