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본인 당구애호가의 한국 당구 체험기
당구에 관한 글을 찾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재미난 글을 하나 발견하였다. 어느 일본인 당구 애호가가 한국에 왔다가 일본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의 당구환경을 보고 신기한 듯 글을 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글을 쓴 시점은 2004년이라 그때에 비해서는 지금 우리나라의 당구 환경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2004년이라면 국제식 대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국제식 대대가 아주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당구장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좁은 장소에 기껏해야 당구대 대여섯 대를 들여놓고 영업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넓은 장소에 쾌적한 분위기의 당구장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아마 그 사람도 지금 다시 우리나라를 찾아와 당구장을 둘러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면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당구문화가 어떻게 비쳤는지 한 번 살펴보자.
● 한국의 빌리어드 간판
한국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어딜 가더라도 반드시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로 표시된 간판이다. 이것들은 모두 빌리어드장의 간판인데, 무엇을 감추랴, 한국은 빌리어드 왕국이다. 일본 대학생들의 오락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마작이지만, 한국 대학생들은 오락이라 한다면 누가 뭐래도 단연 빌리어드이다. 한국의 대학가를 한번 걸어보자. 당구장 간판이 이쪽저쪽에서 보인다. 밀집 상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몇 개의 간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빌리어드 환경은 일본과는 꽤 다르다. 일본에서는 빌리어드라 하면 포켓볼이 주류이지만, 한국에서는 포켓볼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빌리아드>라 하면 대개 캐롬 볼의 일종인 <4구>이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4구를 많이 즐겼지만, 최근의 젊은이들은 4구라 하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4구란 말 그대로 4개의 공을 사용하여 즐기는 빌리어드로, 당구대에 구멍은 하나도 없다. 즉, 공을 구멍에 떨어뜨리는 게임이 아니라, 오로지 공을 맞추는 게임이다.
● 일본의 4구와 한국의 4구
4구는 붉은 공 2개, 흰 공 2개 합계 4개의 공을 사용한다. 보통 두 사람이 게임을 하며, 한 사람이 백구를 다른 한 사람이 다른 백구(혹은 황구)를 수구로 한다.
일본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4구 게임은 수구를 다른 3개의 공 가운데 2개(혹은 3개 전부)를 맞히는 게임, 즉 요츠다마 게임(우리는 이를 "요시다마"라 했다)이다. 수구가 다른 공 2개 혹은 3개 모두를 맞출 경우 1점을 획득하며, 자시의 가진 점수에 빨리 도달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한다. 실로 단순한 게임이다. 또, 옛날에는 수구가 적구와 백구를 맞추면 2점, 적구 2개를 맞추면 3점, 3개 모두를 맞추면 5점이라는 룰도 있었다. 룰은 단순하지만 이게 꽤 어렵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점수를 따기가 꽤 어렵다.
이것이 현재 일본에서 하고 있는 극히 일반적인 4구 게임이지만, 한국에서 치고 있는 4구는 일본과는 룰이 좀 달라, 일본에서 속된 말로 <빨강ㆍ빨강>이라 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한다. <빨강ㆍ빨강> 게임이란 수구가 빨간 공 2개를 맞출 경우에만 1점을 얻는 방식으로, 상대의 수구(백구 혹은 황구)를 맞추면 점수가 되지 않는 방식이다. 적구 2개 만을 쳐야 점수가 되기 때문에 상당히 난도가 높다. 이 방식에서는 자신의 수구가 상대방의 수구를 맞추더라도 점수가 되지 않는다. 아니 점수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점수가 도리어 한 점 마이너스가 되어 승리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일본에서는 자기가 가진 섬수를 모두 치면 이기게 되지만, 한국 룰로는 자기의 점수를 모두 치더라도 승리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점수를 모두 친 후에 쓰리쿠션을 한 번 더 성공시켜야 비로소 이기게 된다. 붉은 공 2개를 그냥 치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다 마지막에 쓰리쿠션까지 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한국식 4구 룰은 꽤 부담이 가는 게임이다.
● 가진 점수
빌리어드에서는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핸디캡을 붙인 가진 점수(다마수)가 각각의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한국의 4구 빌리아드 초보자의 점수는 30점이다. “뭐라고? 초심자인데도 30번이나 빨간 공 2개를 쳐야 한다고?”라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가진 점수를 셀 때, 1점을 10점이라 부르며 계산한다. 따라서 가진 점수가 30점이란 건 3점을 말하는 것으로, 2개의 적구를 3번만 맞추면 다 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진 점수가 80점이라면 8번, 250점이라면 25번 치게 되면 되는 셈이다.
가진 점수 핸디는 아래로부터 순서대로 30점, 50점, 80점, 100점, 120점, 150점, 200점, 250점, 300점, 400점, 500점.... 등으로 되어 있다. 대개 100점 미만이 초심자 취급을 받고, 보통 치는 사람은 100-300점 정도이다. 300점을 넘으면 나름대로 고수라는 느낌이 있으며, 500점을 넘으면 상당한 실력자라 해도 좋다. 그중에는 10,000점이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거기까지 간다면 신의 영역이다.
● 한국 빌리아드장의 점수판
빌리어드를 한국어로는 <당구>(撞球)라 한다. 일본어의 감각에서 본다면 실로 고풍스러운 단어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명칭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빌리어드장은 <당구장>이라 한다. 빌리아드장에 들어가면 먼저 주인에게 사구를 칠지 아니면 삼구(쓰리쿠션)를 칠지 말해야 한다. 포켓볼은 대개 여성들과 함께 하는 “놀이” 정도로 인식하여 한국인 남성은 보통 포켓볼은 거의 치지 않는다. 또 육구(식스볼)이라는 게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백구 2개, 적구ㆍ청구ㆍ황구ㆍ흑구 각 1개씩을 사용하는 구멍 없는 빌리아드인데, 주로 돈내기를 하는 게임이다.
일본의 빌리아드장의 요금 시스템은 1인 1시간에 얼마라는 식이지만, 한국에서는 빌리아드대 1대당 1시간에 얼마라는 식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둘이서 치든 셋이든, 넷이든 당구대를 한 대만 이용한다면 요금은 동일하다. 이건 참 좋은 시스템이다. 2004년 현재로 1시간에 7,000원~9,000원 정도가 보통이다.
4구 대 옆에는 일본이나 한국 마찬가지로 득점 계산용 점수판이 여기에는 대개 시간 미터기가 달려있다. 게임을 시작할 때 그 보턴을 누른다. 그러면 “삥뽕”하는 부자가 울리고, 이와 동시에 요금계산이 시작된다. 미터에는 게임 시간이 얼마나 경과되고 있는지 표시된다. 그리고 게임이 끝났을 때는 다시 “삥뽕” 보턴을 눌러 게임 시간이 확정되어 요금이 정산되도록 되어 있다.
한국의 빌리어드 장의 좋은 점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연습 공을 칠 때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당구장에 가서,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몇 번인가 연습 공을 친다거나, 혹은 게임이 끝나고 간단한 연습을 할 때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 보턴을 누르는 것은 순수 게임을 할 때뿐이기 때문에 연습공은 공짜로 치는 셈이다.
게임 중의 매너도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면 멋지게 공을 맞추었을 때 일본에서는 “나이스 샷”이라 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나이스 큐”라고 한다. 또 나이스 샷을 했을 때, 일본에서는 손바닥으로 자기의 무릎을 때리거나, 초크로 규를 때려 박수 대신으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당구대의 옆을 손바닥으로 때려 박수 대신으로 한다.
● 한국의 쓰리쿠션
쓰리쿠션 경기는 4구 경기보다 훨씬 더 큰 대대에서 하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에서는 대대 보급률이 낮아 많은 경우, 4구용 대에서 쓰리쿠션을 친다.
게임을 하는 방법도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과 같이 25이닝에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자기 점수를 다 칠 때까지 게임을 계속한다. 가진 점수는 4구의 가진 점수의 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즉, 4구 점수가 10점(한국식으로는 100점)인 사람은 쓰리쿠션의 가진 점수가 5점이 되는 식이다. 초구는 일본과 같이 정해진 위치에 공을 놓고 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뿌리기”(3개의 공을 손으로 당구대에 던져, 랜덤 한 배치에서 시작하는 것)로 시작한다.
한국 룰이 쉽지 않은 것은 4구와 마찬가지로 쓰리쿠션도 가진 점수를 다 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4구의 경우는 최후에 쓰리쿠션을 치지만, 쓰리쿠션의 경우는 마지막으로 공쿠션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한국 룰의 재미있는 점은 공쿠션은 보통 쓰리쿠션의 2배가 되며, 수구가 적구를 하나도 못 맞추면 4구와 마찬가지로 가진 점수가 1점 늘어난다. 한국인들과 쓰리쿠션을 친 경험이 사람이라면 한국인들이 공 쿠션을 잘 노리고, 또 이것을 잘 맞춘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로 한국인들은 이러한 한국식 룰로 공쿠션을 매일 단련하고 있는 셈이다.
● 빌리아드 용어
놀랍게도 한국어의 빌리아드 용어는 거의 모두가 일본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이>(대), <다마>(공) 등 기본 용어부터 전문적인 용어까지 거의가 일본어이다. 일제 강점기시대 일본을 통하여 빌리아드가 들어왔기 때문에 당시 사용되고 있던 일본의 용어가 그대로 정착되어 버린 것이다. 빌리아드 단체에서는 한국어 용어로 바꾸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번 입에 익은 말은 좀처럼 고치기 어려운 것 같아, 일반인들은 여전히 일본어로부터 생겨난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