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당구의 회전을 왜 영국인(english)이라 하나?
우리는 당구를 치면서 회전을 잉글리시, 즉 영국인이라고 한다. 나는 1970년대에 당구를 치다가 중단한 후 최근에 와서야 다시 당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당구를 치다 보면 친구들이 “노 잉글리시”로 치라고 하기도 하고, 당구 책을 봐도 “노 잉글리시”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노 잉글리시란 무회전이란 뜻이라는 대답이 왔다. 그럼 노 잉글리시가 무회전이니까 잉글리시는 회전이란 말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럼 왜 좌 잉글리시를 줘라, 우 잉글리시를 줘라 하지 않고, 좌회전을 줘라, 우회전을 줘라 라고 말하느냐 했더니, 그건 모르겠다고 한다.
여하튼 당구에서 잉글리시란 말이 회전을 뜻하는 말이란 건 틀림없다. 그럼 회전을 왜 잉글리시라고 말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혼자서 생각하기로는 “초크가 발명되어 비로소 회전을 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초크를 발명한 사람이 영국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하고 막연히 짐작해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이곳저곳 찾다 보니까 내 짐작이 대충 맞는 것 같았다. 어느 당구 관련 단체의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보니 “초크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 잭크 카라는 영국인(잉글리시)이고, 그 덕택에 당구를 치는 사람들이 회전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회전을 잉글리시라고 한다”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회전을 잉글리시라고 부르게 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생각과 맞다고 할 수도 있고, 조금 다르다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19세기 중반, 그러니까 1840-50년 무렵인 듯하다. 미국에서 영국인들과 미국인들 간에 요즘 말로 하면 국가대항 당구 시합이 벌어졌다. 이때는 이미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초크와 팁이 널리 보급되어 공에 회전을 주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아직 초크와 팁이 발명된지도 몰랐고,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초크와 팁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영국 선수들과 시합을 하는 미국 선수들은 영국 선수들이 공을 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이 자유자재로 미국 선수들이 보기엔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안 맞을 줄 알았는데, 회전을 크게 먹으며 공이 맞고, 공이 앞뒤로, 그리고 옆으로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영국 선수들을 보고 미국 선수들은 완전히 쇼크를 먹었다. 이미 승패는 뒷전이었다. 회전을 이용하는 영국 선수들과 회전이란 건 꿈에도 생각 못하고, 오로지 나무로 된 큐 끝으로 공 한가운데만 치는 미국 선수들과 게임이 될 리 가 없었다. 미국 선수들은 승부보다도 영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입을 딱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 선수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와!! 저 영국 선수 공치는 것 좀 봐!! 저 영국인은 공을 자기가 치고 싶은 데로 치네!! 우와!”
“우와!!! 저 영국 선수(english) 기술 완전 끝내주는군!!”
이렇게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미국 선수들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 저 “영국인”(잉글리시)이라는 말이 “회전”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회전이라는 뜻의 잉글리시는 첫 글자를 영문자 대문자로 쓰지 않고 소문자(english)로 쓰는데, 좌우회전, 즉 옆 회전만을 의미한다. 상단 회전(오시)과 하단 회전(히키)은 잉글리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시합에 출전한 영국 선수들은 어이가 없었다. 형편없이 시합에 깨지고 있으면서도 승부에 의욕을 보이긴 커녕 감탄을 연발하고 있는 미국 선수들을 보니까 한심하기도 하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자기네들은 당연히 누구나 다 하는 회전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는 미국 선수들을 보니까 기가 찼던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 선수들도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이봐, 저 얼빠진 미국 녀석들, 공 하나하나 치는데 저렇게 놀라 자빠지고 있으니.. 나참..”
“당구 선수란 녀석들이 저런 얼빠진 소리나 하고 있으니.. 쯧쯧.”
영국 선수들 입에는 아예 “얼빠진 미국 녀석(아메리칸)”이라는 말이 붙어버렸다.
이 일로 인해 영국 선수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회전을 “아메리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캐롬 당구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회전이라는 말이 “잉글리시”로 굳어버렸다고 한다.
만약 유럽에서 캐롬 당구가 더 성행했더라면 지금 쯤 우리는 회전을 아메리칸, 무회전 공을 노 아메리칸이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