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3) 해동용궁사와 죽도
통도사를 출발하여 이제 해안 쪽으로 달린다. 오늘은 일찍 휴양림으로 복귀하여 어둡기 전에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다. 기장의 해안 쪽 몇 곳을 둘러보고 장을 본후 휴양림으로 돌아가려 한다. 해동용궁사를 둘러본 후 일광해수욕장과 기장 죽도를 거쳐 기장시장에서 장을 본 후 휴양림으로 갈 계획이다.
해동용궁사는 기장군의 바닷가 갯바위에 지어진 절이다. 주위의 풍광이 하도 아름다워 작은 사찰이지만 이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나는 이전에 여기를 두 번 와 본적이 있었는데,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나는 해동용궁사가 최근에 지어진 사찰로서 불교의 정통 사찰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잘못된 것으로 해동용궁사는 고려말에 창건된 사찰로서 역사가 매우 길며, 다만 지금의 절집은 1974년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집사람도 해동용궁사가 정통사찰이 아닌 걸로 생각하는지 좀 시큰둥한 표정이다.
큰 길을 벗어나 바다로 향하는 좁은 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가면 해동용궁사란 팻말이 나온다. 이전에 올 때는 주차시설들이 충분치 못하였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면 해동용궁사가 나온다. 이곳은 바닷가 갯바위 지역이라 그런지 계단을 포함한 대부분의 구조물이 돌로 만들어져 있다.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도중에 작은 불당 같은 곳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용궁사와 기장해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갯바위 위에 지어져 있는 사찰이 바다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기억에는 용궁사가 건물도 많고 제법 컸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아주 작다. 건물도 몇 개 되지 않는다. 이러니까 기억이라는 것은 항상 부정확하다. 절집보다도 이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 경치가 훨씬 더 좋다. 천년전 옛날에 어떻게 이런 곳에다 사찰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옛 사람들의 사고도 상당히 자유로왔던 것 같다.
해동용궁사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를 달려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죽도>가 있다. 죽도는 기장 연화리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인데, 방파제 안에 자리잡고 있어 별로 섬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해안에서 100미터 정도의 보행교가 놓여져 있어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죽도은 2-3천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섬인데, 섬 전체가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둘레에 담장이 쳐져 있으며, 2층짜리 작은 집이 있는 것을 보니 섬 전체가 사유지인 것 같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 섬으로 가더라도 관광객들은 섬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섬 주위의 물빠진 갯바위만 걸어 볼 수 있다. 지금 현재 섬에 사람은 살지 않는 것 같다.
죽도는 아주 예쁜 섬이다. 그런데 사유지라 담장을 쳐두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는 없다. 바위로 이루어진 물빠진 길로 섬 주위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지자체가 섬을 수용하여 공원으로 개발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이건 내 짐작이지만, 아마 지자체에서도 이것을 수용하려고 상당히 힘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섬주인은 주인대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 섬에서 사람이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우선 물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고, 정화조를 만드는 것도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로서도 이곳을 급하게 매입할 이유는 없으니까 지자체와 섬주인이 서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죽도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 넓은 터에는 해물을 파는 포장집이 줄지어 있다. 유튜브 먹방에서 보던 <기장 해녀촌>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먹을 마음은 없었지만, 일단 한번 둘러보며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소라, 전복, 해삼, 멍게, 개불을 포함한 갖은 종류의 해산물이 풍성하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직접 채취한 것들인지 아니면 물건을 받아와 판매를 하는 것인지 어느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던 여기는 각종 신선한 해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 한다.
기장시장에 장보러 가기전에 일광해수욕장과 월내 해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이 두 곳은 죽도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0분 가량 달리면 된다.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그냥 드라이브 삼아 거쳐 가기로 하였다.
일광해수욕장과 월내 해변은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 재미있는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함께 산악부 활동을 하던 친구 둘과 함께 이곳에 왔다. 그 당시 대한산악연맹에서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산간학교>라는 산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는데, 보통 산간학교는 산에서 개설하는데, 이 해는 웬일인지 일광과 월내 해수욕장에 개설하였다. 여기에는 전국에서 수백명의 대학교와 고등학교 산악부원들이 모여 산악관련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어느날 텐트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비상이 내려서 모두 밖으로 나오라 한다. 자다가 일어나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밖으로 나왔는데,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한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비상이 내린 이유는 누군가가 교육장 해변 인근 동네의 여자 집에 침입하였다 하여 그 범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 범인은 교육에 참가한 수백명의 학생 가운데 하필 바로 내 친구였다. 그것이 성범죄와 연결된 정도의 일은 아니었고 단지 친구가 집에까지 여자를 따라간 정도의 일이었기 때문에 일은 더 이상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그 일로 우리들은 그날밤 곤욕을 치렀다. 요즘도 그 친구를 만나면 그때 일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웃는다.
월내 앞바다는 그 당시에는 해수욕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해수욕장은 없어지고 작은 어항으로 변해 있다. 그리고 앞 바다에는 방파제가 건설되었고, 방파제 한쪽 끝에는 등대가 보인다. 50년전 당시는 정말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참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는 것 같다.
어제는 서두르느라 기장시장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였다. 오늘은 시간도 있으니까 좀 느긋이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기장시장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게로서, 대형 대게 음식점들이 시장 여기저기에 들어서 있다. 그 외에도 멸치 막회, 생선 활어시장, 각종 생선, 튀김, 다양한 해초 등 모든 먹을 것들을 이곳 기장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장 전체를 한번 둘러보았는데, 생각보다 시장이 크지는 않다.
이제 먹을 것을 사야 한다. 어제와 같이 먼저 멸치 막회 5천원 짜리를 하나 산 후, 옆 좌판에서는 멍게 5천원 어치를 샀다. 그리고 튀김 2천원 어치, 또 내일 아침 전복죽을 만들기 위해 전복 1만원 어치를 샀다. 만원에 작은 전복 11마리인데,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손질하여 준다. 활어센터에 들렀다. 활어센터는 지하에 있는데, 약 20여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수족관에는 힘좋은 생선들이 펄펄 뛰고 있었으나,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시장을 떠났다.
휴양림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가량 되었다. 오늘 저녁은 야외에서 먹기로 하였다. 오늘 사온 멸치 막회에 멍게, 튀김 그리고 어제 먹다남은 문어 숙회까지 더하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살살 불어오는 시원한 저녁 산바람을 맞으며 찬 맥주를 마시니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멸치 막회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결국 남은 것은 어제처럼 회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저녁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몇시간이 지나도 배가 꺼지지 않는다. 자려고 누워도 배가 부르니 답답하다. 다시 밖으로 나가 숲속의 밤공기를 즐기며 조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