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2) 경주를 거쳐 달음산 휴양림으로
김천 직지사에서 경주 첨성대까지는 약 150킬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경주에 와본지도 10년은 된 것 같아 여러 곳에 들리고 싶었지만, 오늘 늦기 전에 부산 기장까지 가야 하므로 첨성대 일대만 구경하려고 했다.
첨성대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얼마 안가 도착한다. 첨성대 주위에는 안압지와 계림, 그리고 대릉원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서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첨성대 입구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그렇다고 해서 식당에 들어가면 그냥 1시간이 지나간다. 간단히 점심을 때울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니 “경주 황남빵 본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황남빵을 다시 보니 반갑다. 가게에 들어가 작은 상자 하나를 샀다. 걸어 다니며 먹으면 된다. 황남빵 맛은 옛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릴 때만큼 맛이 있지는 않다. 그때는 정말 황남빵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첨성대 일대는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곳곳에 주차장이 있고, 경 내로 들어가면 잘 가꾼 잔디밭과 보행길이 마련되어 있으며, 저 쪽에 첨성대가 우뚝 서있다. 첨성대는 하늘의 별을 관측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며, 이에 대해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소수 주장도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첨성대의 높이가 10미터 조금 못되는데, 거기에서 별을 본들 평지에서 별을 보는 것과 뭐 그리 다르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꼭 높은 곳에서 별을 봐야 한다면 첨성대 근처에 있는 언덕 위에 올라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으로는 어릴 때 첨성대 안에 들어가 본 것 같은데, 높이 창이 있을 뿐 들어가는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석빙고 안에는 확실히 들어가 보았고 첨성대도 분명히 들어갔던 것 같은데, 문이 없으니 들어갔을 리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니 그런 문화재 속에 어떻게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어?”란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그런데 19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의식이 그다지 없었다. 문화재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어, 동내 아이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던 시대였다. 초등학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석굴암에 들어가 아이들이 석굴암 석불이 앉아있는 단 위로 올라가거나, 석불 뒤로 돌아가 부처 등을 타고 기어오르려고 하는 장난을 치던 그런 시대였다. 그 시대 첨성대를 쌓은 돌들을 사람들이 집 지을 때 추춧돌로 쓰거나 돌담으로 쓴다고 뽑아가지 않았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큰 다행이라 할 것이다.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건설하였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1,400년 전의 일이다. 1,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조상들이 만든 구조물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감회가 떠오른다.
여행을 떠나기 전 경주에서 갈 곳을 찾다가 “동궁(東宮)과 월지(月池)”라는 곳을 발견하였다. 처음 듣는 곳이라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았더니 바로 안압지(雁鴨池)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내 느낌으로는 월지보다는 안압지가 훨씬 좋아 보이는데 왜 이름을 그렇게 바꾸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안압지”는 조선시대에 들어 이 호수에 기러기와 오리가 많이 날아들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고, 신라시대의 유물을 조사한 결과 신라시대에는 이곳을 월지라 불렀기 때문에 안압지에서 정식 이름인 월지로 이름을 변경했다고 한다.
동궁과 월지는 첨성대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잠시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리고 동궁과 월지는 계림과 바로 연결된다. 월지는 가장 최근에 찾은 것이 20년은 지난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되다시피 하여 그다지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주위가 깨끗이 정비되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인공호수이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이었으며, 이곳에서는 연회도 자주 벌어졌다 한다. 월지 옆에 지어져 있는 누각들은 호수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연회를 벌인 옛 신라 귀족들은 정말 풍류를 즐겼던 모양이다.
신라는 귀족들의 방탕과 향락으로 멸망하였다고 한다. 그 향락을 대표하는 장소는 바로 포석정이다. 포석정에 구불구불한 도랑을 만들어 물을 흘려보내고, 그 위에 술잔을 띄어놓고 놀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석정에 가보면 의외로 소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석정을 상징하는 그 인공 도랑이라는 것도 주위에 그저 여남은 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그런 곳에서 술 좀 마셨다고 뭐가 그리 나라를 망칠만한 향락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이곳 월지에서 벌어지는 연회가 훨씬 규모가 크고 화려했을 것이다. 포석정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석정에서 술 좀 마시는 정도로 나라고 망했다고 한다면 요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서 노는 사람들을 보면 아마 나라가 망해도 수백, 수천번은 망했어야 했을 거다.
첨성대도 그렇지만 이곳 동궁과 월지에도 조명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래서 밤에 이곳을 찾으면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첨성대 쪽으로 걸어오다 보니까 한쪽에 유채꽃이 가득 피어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꽃양귀비가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그 옆에는 모란꽃이 만발해있다. 모란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아름다운 모란을 한껏 감상하다 보니까 향기가 코를 찌른다.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하던데 그 사이에 품종 개량이 되어 향기까지 갖게 되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해본다. 그 이유를 얼마 뒤에 알았다. 고등학교 후배가 블로그에서 “모란”과 “작약”의 차이에 대하여 쓴 글을 읽었다. 그렇다. 내가 본 그 꽃은 모란이 아니고 작약이었던 것이다. 그 블로그의 글에 따르면 모란은 나무에서 피는 꽃이며, 작약은 풀에서 피는 꽃이라 한다.
첨성대 건너편에는 대릉원이 있다. 대릉원은 신라시대 고분군이 있는 곳이며, 또 이곳에는 천마총도 있다. 이곳도 들리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시간이 너무 늦는다. 어쩔 수 없이 부산을 향해 출발.
중간에 여러 곳을 들리면 항상 계획보다 시간이 오버된다. 오늘도 서두르지 않으면 어두워져서야 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 먼저 기장 전통시장에 들렀다. 기장 일대에 있는 시장 가운데는 그래도 가장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와 가까운 시장이라 하여 이곳을 택하였다. 시장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6시가 지났다. 이 시간이면 기장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이다.
멸치 막회를 살 수 있을까 기대하며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있다. 시장 가운데서 좌판을 벌여놓고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각종 해물을 팔고 있었다. 그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멸치 막회이다. 작은 플라스틱 채에 담긴 것은 3천 원, 큰 채에 남긴 것은 5천 원이라 한다. 이렇게 값이 쌀 수가!!! 5천 원짜리 한 무더기를 사니 아주머니가 거기다 한 주먹 더 넣어준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문어를 사란다. 조그만 돌문어인데 한 마리에 만 오천에 가져가란다. 문어도 샀다. 이제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휴양림에 가야 한다.
기장시장을 출발하여 내비게이터가 인도하는 대로 20분가량을 달리니 달음산이 나온다. 달음산 아래는 산업단지인 것 같아 공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래서는 휴양림 분위기가 제대로 날지 걱정이다. 공장지대를 빠져나오니 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경사가 엄청 심한 산길이다. 걸어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지금까지 찾은 휴양림 가운데 가는 길의 경사가 가장 심한 것 같다. 경사가 워낙 심하다 보니까 차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일부러 도로를 울퉁불퉁하게 포장을 해놓았다. 내비에는 휴양림은 여기서 5킬로 정도를 가야 한다고 나와있다.
가파른 산길을 계속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이제 좀 평탄한 길이 나오고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그리고 포장도로는 끝나고 울퉁불퉁한 흙길, 돌길이 시작된다. 이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마치 별세계가 나타나듯 갑자기 휴양림이 나타난다. 이곳 달음산 국립 자연휴양림은 2018년에 개장되어 아직 3년도 안된 아직 연륜이 적은 휴양림이다. 관리동을 중심으로 <숲 속의 집>이 반 원형의 부채꼴로 들어서 있다. <숲 속의 집>은 한 건물이 2층으로 되어 있어, 두 가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주 특이한 모습의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의 가운데 공간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아직 개장되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휴양림 경내는 아주 어린 나무들이다. 그렇지만 휴양림을 둘러싸고 있는 산림은 무척 울창하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1층에 위치해있다. 2층의 숙소는 휴양림 광장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1층의 숙소는 숲을 향하고 있다. 울창한 숲 저건 너 아득히 먼 곳에는 바다가 보이고 있다.
집사람이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숙소 옆 테이블 벤치에 앉아 맥주를 한잔 하면서 <더티 해리> 영화를 본다. 하루 종일 많이 걷고 오랫동안 운전을 해 피곤한 터라 맥주 맛이 꿀맛이다. 찬 맥주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이곳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었으나, 날이 어두워져 그럴 수는 없다. 시장에서 사 온 멸치 막회를 접시에 담으니 양이 엄청나다. 멸치회는 비린내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담백한 회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약간 비린 생선회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다. 멸치회에 문어숙회에 딱 좋은데이 소주 한잔을 걸치니 온몸의 피로가 풀린다. 남은 멸치회로 회비빔밥을 만드니 그것도 또 별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