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9) 거진 수산시장을 거쳐 용대 휴양림으로
이곳 강원도 동해안의 교통사정도 과거와 비해 크게 나아진 것 같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건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2시간이 걸리지 않고, 또 동해안의 국도들도 마치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져 있다. 옛날 여름휴가 때 설악산이나 동해로 가려면 망우리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하여 팔당, 양평, 홍천 등 거의 설악산에 이르기까지 마치 시내 교통체증같이 차가 밀려있던 일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생각된다. 한계령을 내려가니 바로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이 길은 다시 동해안의 고속국도로 연결된다. 거진 수산시장에 가기 전 먼저 거진 전통시장에 들르기로 하였다.
거진 읍내에 들어가니 도로를 가로질러 <거진전통시장>이라는 큰 가로 간판이 보인다. 거진전통시장은 우리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한 전통시장이라 한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시설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아주 한산하다. 손님들이 거의 없다. 수산물을 파는 곳이 몇 곳 보여 찾아가니 대부분 둥근 큰 수족관에 산 오징어가 몇 마리 들어있다. 손님이 없어 그런지 별로 싱싱해 보이질 않는다. 시장 안을 대충 구경하고 거진수산센터로 갔다.
거진수산센터는 거진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지었는지 시설들이 깨끗하고 가게들의 위생상태도 좋아 보인다. 요즘 어느 포구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선회 시장으로서, 큰 특징은 없으나 다른 곳보다는 좀 더 밝고 깨끗해 보인다. 시장 안에는 20개 정도의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은 동해안에 오징어가 잘 잡힌다고 한다. 요 몇 년 사이 동해안에 오징어가 거의 잡히지 않아 “금징어”라는 말까지 나돌았는데, 올해는 오징어가 대풍이어서 값도 아주 싸졌다 한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더라도 오징어는 3마리에 만원이다. 수산시장도 파장 무렵이 되어 빨리 사야겠다. 한 곳에 들어가서 오징어 만 원어치 달라고 하니, 시장 모든 가게에서 오징어 3마리에 만원을 받도록 되어 있어 더 줄 수는 없지만 대신 큰 것으로 3마리 골라 준다고 한다. (불법 카르텔 아닌가? ㅎㅎ). 그리고 자연산 멍게가 맛있다고 사라고 한다. 멍게 크기가 거의 소프트볼 정도로 엄청 크다. 역시 만원을 주니까 네 마리를 준다. 양이 좀 적다고 생각했는데, 썰어놓고 보니 양이 엄청나다.
거진수산센터는 다른 수산시장에는 없는 특별한 시스템이 있다. 보통 포구 근처의 수산시장에 가면 횟감을 파는 가게에서 직접 회를 쳐주는데, 이곳에서는 가게에서는 생선을 팔기만 하고 회를 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이들이 횟감을 사서 가면 횟감 가격의 15%를 받고 회를 쳐준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보다 이들의 수입이 더 짭짤할 것 같다. 오징어 만 원어치 3마리 회를 치는 데는 3천 원이다. 주인아줌마가 정말 큰 걸로 골라줬는지 회를 쳐놓고 나니 양이 엄청나다.
이제 저녁거리도 다 샀으니 휴양림으로 가면 된다.
용대 자연휴양림은 진부령 정상 가까이 있다. 거진항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진부령 가는 길로 들어섰다. 진부령 꼭대기를 넘어 조금 더 가면 휴양림이 나온다. 동해 쪽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길은 끝도 없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진부령 가는 길에서 진부령 정상까지 20킬로가 넘는 길인데, 이 먼길을 계속 올라간다.
진부령은 여러 추억이 있는 곳이다. 친한 친구가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진부령 정상 근처에 있는 공병부대에 소대장으로 배속받았다. 아마 1978년이었던 것 같다. 다른 친구 하나와 함께 10월 연휴에 그 친구를 만나러 진부령으로 왔다. 당시 어떻게 하면 진부령으로 가는지 알 길도 없었으므로, 무작정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그러다가 원통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발견하고 그 차를 탔다. 연휴였던 터라 그 버스는 시내 만원 버스보다 더 복잡하였다.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은 버스를 타고 거의 8시간 가까이 걸려 원통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친구와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진부령이라면 정말 깡촌중에 깡촌이다. 그 친구로부터 진부령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부대 배속을 받아 부임을 하니 부대에서 환영을 해준다고 <진부령 아가씨> 노래를 틀어주더라는 이야기, 진부령 도로 눈 치우는 이야기, 그리고 그 외에도 근무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준다. 이야기를 듣는 우리야 재미있었지만, 그런 일들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고생담이요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동네에 있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하사관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집에서 함께 잤다. 하사관의 아내가 닭을 잡아 백숙을 해주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닭고기 중에 제일 맛있는 닭이었다. 진부령을 넘어서 조금 가다 보니 오른쪽에 옛날에 갔던 그 부대가 아직도 보인다.
이곳 용대리는 황태 덕장으로 유명하다. 그런 때문인지 진부령 정상을 넘어서자 황태를 파는 가게들이 도로 곳곳에 있다. 돌아갈 때 사가도록 해야겠다.
도로 바로 옆에 용대 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 입구에서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좁은 도로를 따라 숙소로 올라간다. 숙소로 올라가는 도로는 작은 계곡을 따라 나있는데, 계곡 건너편에는 군데군데 민가가 있다. 아마 계곡 건너편은 휴양림이 아니고 사유지인 것 같다. 대부분의 민가는 민박을 하고 있는데, 누가 이런 값싸고 시설 좋은 휴양림 숙소를 두고 민박을 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곳 용대 자연휴양림은 예약이 아주 어렵다. 그래서 휴양림 예약을 못한 사람들은 이런 민박집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길을 따라 2킬로 정도 올라가니 우리가 예약한 연립동이 나온다. 연립동이란 2개의 숙소가 붙어있는 숙소를 말하는데, 내부 구조는 <숲속의 집>과 똑같다.
4인용 숙소를 예약했는데, 상당히 넓다. 그리고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방과 가구, 기타 설비, 비품들이 모두 새것이다. 숙소 뒤 쪽으로는 넓은 베란다가 있어 베란다에 나가니 계곡 물소리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계곡 물소리에 산새 소리, 그리고 시원한 숲 속 공기, 기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오늘 많이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먼저 거진수산센터에서 사 온 회부터 꺼냈다. 오징어 회를 반만 꺼냈는데도 국사발을 수북이 채운다. 잔뜩 기대하고 자연산 멍게를 먹었다. 보통 시장에서 보는 양식 멍게보다 몇 배나 큰 자연산 멍게이므로 향기가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대실망. 멍게 고유의 독특한 향도 거의 없고, 질기기만 하다. 작은 양식 멍게보다 훨씬 못하다. 시원한 맥주에 더하여 먹는 오징어 회는 각별하다. 오랜만에 먹은 오징어 회라서 배가 불러 못 먹을 때까지 먹었지만, 결국 반도 더 남았다.
휴양림에 일찍 도착한 때문인지 저녁을 먹었는데도 아직 어둡지 않다. 숙소를 나와 바로 산 쪽으로 가면 숲 속 산책로가 나온다. 보통 휴양림에 있는 숲들은 잘 관리가 되어 있어 키 큰 소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고, 그 아래쪽에는 잡목이나 잡초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무 아래 땅에는 솔잎 낙엽이 깔려 있을 뿐 널찍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에 비해 이곳 휴양림 산책로는 온갖 나무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다. 산책로를 걷노라면 마치 정글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저녁 한숨도 못 잔 터라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니 잠이 쏟아진다. TV에 바둑 채널을 켜놓고 중국 바둑리그에 출전한 박정환, 신진서의 대국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