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9) 인제 비밀의 정원과 한계령
이번 주부터 3주 연속 여행이다. 오늘부터 진부령에 있는 용대 자연휴양림 여행이며, 다음 주는 충남 서산의 용현 자연휴양림, 그리고 그다음 주는 남해도의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이다. 지난주 한주 쉬었던 여행이라 가슴이 설레서 그런지 지난밤 한숨도 자지 못하였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잠을 전혀 자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우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이곳 세종시에서 용대 자연휴양림까지는 가장 빠른 길이 3시간 5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와 빨리 출발하기로 하였다. 세종시가 우리나라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어디든 여행하기 좋지만, 다만 한 곳 강원도로 가기가 좀 먼 편이다.
그동안 강원도 쪽으로 몇 번 여행을 하면서 청주, 충주, 제천, 단양, 영월 방면으로는 이제 웬만한 곳은 가보았으므로 이번에는 인제까지는 고속도로로 직행하기로 하였다. 보통 밤을 꼬박 세우고 나면 차에 앉아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잠이 쏟아진다. 그래서 일단 피곤하기는 하지만 내가 운전을 하기로 하였다. 1시간 정도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니 잠이 쏟아진다. 바로 집사람과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 그리고 잠에 떨어졌다.
용대 휴양림으로 가기 전에 당초 곰배령을 거쳐 가려고 하였으나, 그럴 경우 휴양림에 너무 늦게 도착할 것 같아 돌아오는 길에 가기로 하였다. 인제에 가볼 만한 다른 곳이 어딜까하고 찾아보다고 <비밀의 정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입소문을 타면서 알려진 곳인데, 너무 아름다워 특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다. 이 외에는 특별히 다른 곳이 떠오르지 않아 여기를 가기로 하였다.
<비밀의 정원>은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동홍천에서 빠져나와서 북쪽 소양호 상류 쪽으로 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한참 차를 달리니, 지방도 옆에 꽤 큰 주차장이 나온다. 비밀의 정원 주차장이다. 차에서 내리니 주차장 외에는 특별한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표지판도 엎고, 또 어디로 가야 비밀의 정원인지 안내판도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 앞 도로 건너편에 나무로 만든 데크 길이 보인다. 아마 그리로 가면 비밀의 정원으로 갈 수 있는가 보다 하고 길을 건너갔다. 나무 데크 위로 올라가니 산 아래로 넓은 평지에 그림 같은 숲이 펼쳐져 있고, 숲이 우거진 가운데 저 멀리 한 줄기 길이 보인다. 그런데 내려가려고 하니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을 다시 찾아보았다. 비밀의 정원이란 이 나무 데크 아래로 펼쳐 보이는 넓은 평지와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모두 이 데크 위에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사진 찍는다고 한다. 어쩐지 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숲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하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냥 위에 서서 발아래 풍경만 구경하고 간다고 하니 아쉽기 짝이 없다. 특히 이곳은 봄과 가을의 경치가 절경인데, 그것도 이른 아침 안개가 끼어 있을 때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지금은 봄이나 가을도 아닌 여름 초입이고, 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이라 그런지 경치가 좋긴 하다만 그렇게 감격할 만큼 좋다고는 못 느꼈다. 관광객은 우리 외엔 한 사람도 없고, 주차장에는 우리 차만 한 대 덩그렇게 서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은 생선회를 먹을 예정이다. 오기 전 유튜브에서 동해 고성 일대에서 생선회를 사기 좋은 곳을 찾아보았더니 거진항이 좋다고 한다. 이곳에서 거진항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빠른 길은 진부령을 넘어가는 길이며, 조금 돌아가는 길은 한계령을 넘어 양양에서 동해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로 해서 가는 길이다. 진부령 길은 이제 자주 갈 것이므로 한계령을 넘어가기로 하였다.
인제를 지나 진부령 방면과 한계령 방면으로 갈리는 지점에서 직진을 하여 한계령 쪽으로 달렸다. 그동안 제법 많던 차가 갑자기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이제 설악산이나 속초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 길 대신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그런 모양이다. 한계령 가는 옛길은 이제 차가 별로 다니지 않으니 좀 쓸쓸해 보인다. 길 주위에는 폐업한 주유소가 몇 곳 보인다. 좀 더 가다 보니 문을 닫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도로 옆 휴게소도 몇 군데 나온다.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로 많은 사람들이 편해졌지만, 또 이렇게 피해를 보는 사람도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문 닫은 가게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한참을 달리니 장수대가 나온다. 옛날 같으면 이곳에는 차 세울 곳을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바글거리던 곳이다. 그런데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서있을 뿐이고, 주차장 건너 계곡 쪽에 있는 큰 휴게소들은 모두 폐업하였다. 이삼십 년 전에는 이곳 계곡이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였는데,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곳 장수대부터 본격적으로 설악산의 경치가 시작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길옆에 높이 솟은 바위 절벽은 예나 마찬가지이다. 젊었을 때는 매년 여름휴가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이 길을 다니곤 했는데, 옛 생각이 난다. 1980년대 후반 무렵 처음으로 차를 샀다. 엑셀 1.3리터 중고차였는데, 그 고물차로 이 한계령을 넘을 때면 차가 힘이 없어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여 겨우겨우 올라갔는 걸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다.
그때는 그렇게 멀게 생각되었던 길이 지금은 금방이다. 얼마 달리지 않아 휴게소가 있는 한계령 정상이 나온다. 이 길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이 휴게소에는 딱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늘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차들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으니 주차장이 넉넉하다. 오늘 날씨는 꽤 더운 편이었는데, 집사람이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해서 더위를 참고 왔다. 차에서 내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들도 많지 않아 전망대에서 설악산의 여러 봉우리들과 아래 계곡들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다.
한계령을 출발하여 한참 내려가면 오색약수가 나온다. 1980년대 중반쯤 여름휴가 때면 직장에서 오색약수에 있는 큰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때 통근버스도 이곳에 상주하여 휴가 온 직원들의 교통편을 도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차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름휴가 때 직원들이 가족을 데리고 설악산으로 온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것도 고역이었고, 또 이곳에 와서도 현지 교통이 막막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휴가 교통편과 숙박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큰 복지 혜택이었다. 그 무렵 이곳 오색에 오면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많은 대기업들이 설악산 이쪽저쪽에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직원들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다가 그것도 한 때 유행이었는지 1990년가 되면서 그러한 풍경도 차츰 사라져 갔던 것 같다. 아마 자가용 보급이 확대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옛날 생각을 하면서 오색약수 숙박단지에 들어가 보았다. 관광객의 격감과 함께 이곳도 크게 쇠퇴한 것 같다. 옛날 그 많던 모텔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계곡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식당이나 기념품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