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영덕 여행(7)

(2021-04-16) 청송 주왕산과 대전사

by 이재형

청송은 내게 좀 특별한 곳이다.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972년의 일이다. 여름방학이 되었지만 고3들은 대학입시 준비를 하여야 하니까 방학 시작하자마자 사나흘 쉰 후 모두 학교에 나와 여름방학 특별수업을 받도록 되었다. 학교에서는 이것도 정규수업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결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엄명이 떨어졌다.


나는 여름방학에도 학교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한다는 핑계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중 청송 주왕산에 있는 절에서 여름방학 한 달간 공부를 하기로 정하였다. 그러자 같은 반 친구도 나와 같이 하겠다고 따라나섰다. 여름방학 특별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나와 친구가 학교를 결석하자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집으로 연락이 와서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퇴학시킬 수도 있으니 즉각 출석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같이 온 친구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나는 한 달을 버틴 후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나갔다. 일찍 산을 내려가 학교에 간 친구는 학교에서 며칠간 죽도록 많이 맞았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약간 겁을 먹고 학교에 갔으나 별문제 없이 그냥 지나갔다.


이렇게 한창나이에 여름 한 달 이상을 보냈던 청송이고 보니 지금도 청송에서 있었던 일들이 종종 생각난다.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어릴 때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18. 청송 주산지


청송에서 가장 먼저 들릴 곳은 주산지이다.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 건설한 저수지로서, 이곳의 특수한 지질적 특징으로 인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일 년 내내 물이 풍부하게 채워져 있다고 한다. 저수지가 아름다워서 이제는 청송을 대표하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1킬로 정도인데, 약간 언덕길이지만 넓은 길이 닦여 있어 걷기는 좋다.


주산지에 도착하고 보니 저수지가 생각보다는 작다. 길이 200미터에 폭이 100미터 정도라고 한다. 깊은 계곡 속에 다소곳이 들어앉은 주산지는 마치 정원과 같은 느낌이다. 호수 주위는 모두 산이고 호수 둘레는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다. 3백 년이 지난 오래된 저수지인지라 인공적인 호수가 아니라 마치 주위의 자연과 조화되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호수라는 느낌이 든다. 도로 주변 산책로도 걷기 좋게 아주 잘 정비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물가에는 조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저수지 안에는 등걸이 부러져 오히려 자연미를 더하는 오래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들 나무는 호수의 전경과 어울려 기막힌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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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버드나무가 많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아시다시피 한자로는 양류(楊柳)라 한다. 그런데 양(楊)도 버드나무이고 유(柳)도 버드나무인데 이 차이가 무엇일까? 버드나무에는 가지가 위로 향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양(楊)이라 하고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아래로 처진 것을 유(柳)라 한다. 그러니까 양류는 이 두 가지 버드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유(柳)는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으므로 버드나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양(楊)은 가지가 위로 향하고 있어 잎이 나기 전에는 다른 나무와 얼른 구분이 가지 않는다. 버드나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버드나무에 관한 상식 하나. 우리는 이쑤시개를 요지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옛날 일본에서는 이쑤시개를 버드나무 가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쑤시개를 버드나무 가지, 즉 양지(楊枝)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요지”가 된다.


산책로를 따라 주산지를 일주하고 싶었지만 산책로는 호수의 반 정도에서 끊어져 더 이상 갈 수 없다. 옆의 친수 데크로 갔다. 출렁이는 물소리가 들려 아래를 보니 잉어가 득실거린다. 길이가 거의 60-70센티는 되어 보이는 큰 잉어들인데, 사람들이 자주 먹이를 던져주는 탓인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이리로 모인 것 같다. 잉어 먹이를 가지고 있으면 던져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손에는 잉어들에게 줄 수 있는 먹이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다시 저수지 입구 쪽으로 와서 저수지 댐 위로 갔다. 댐의 길이는 3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데 높이가 상당하다. 댐을 쌓은 이 많은 흙들은 옛날에는 모두 사람이 지고 와서 쌓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9. 주왕산


주왕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래 지난 20년 전쯤에 한번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주왕산에 한 달 동안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부터 5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왕산 입구로 들어갈수록 옛 풍경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주왕산 입구에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거기에는 작은 식당을 겸하는 가게가 있었다. 방학 때 주왕산에 오기 전 답사차 이곳에 찾아와서, 그 가게에서 하룻밤 자고 식사도 하였다. 가게 뒤로는 20여 호 정도 되는 작은 동네가 있었다.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옛날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던 곳은 모두 철거되어 주차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다. 그 대신 도로 건너 있는 개천 저편은 모두 논밭이었는데, 이제는 그곳에 많은 현대식 주택이 들어서 있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대전사 쪽으로 간다. 대전사 가는 길 양쪽은 모두 음식점이나 민박, 기념품 가게로서 어느 국립공원을 가더라도 볼 수 있는 비슷한 풍경이다. 한참 더 걸어 들어가니 주왕산의 명물인 바위산과 그 아래에 있는 대전사가 나온다. 대전 사는 그 전에는 건물이 몇 개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여러 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전사는 경상도에 있는 보통 다른 절들과 달리 넓은 평지에 들어서 있다.


대전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큰 나무가 서있다. 옛날에는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주 잘생긴 큰 나무로 자라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하긴 50년이라는 세월이라면 나무도 크게 자랄 수 있는 기간이다. 옛날에는 주왕산을 가려면 대전사를 10시 방향으로 두고 오른쪽으로 산길에 들어섰다. 주왕산 계곡길은 모두 평탄하고 넓은 길이었지만 이 초입 길만은 상당히 험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전사를 바로 지나 대전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산길을 오르도록 되어 있다. 아마 보행에 편리하도록 길을 새로 만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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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법 많이 걸어 힘들지만 가는 데까지 가다가 도중에 돌아오기로 하였다. 이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주왕암과 주왕굴이 나오고, 계속 더 올라가면 용추폭포에 다다르게 된다. 주왕산 계곡길은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경사도 거의 없는 데다가 길도 넓고, 또 바로 옆으로는 수정같이 투명한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이만큼 좋은 길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에는 여러 좋은 계곡이 많다. 그렇지만 이 주왕산 계곡같이 계곡 바로 옆으로 계곡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옛날 이곳에서는 참 물장난도 많이 하고 놀았다.


주왕암과 주왕굴로 가는 곳에 이르렀다. 가파른 산길이라 집사람은 힘들다고 가지 않겠다고 하며, 나도 구태어 올라갈 마음은 나지 않는다. 주왕암과 주왕굴은 길 오른편에 있으며, 길 왼쪽 가파른 산길로 올라가면 연화 굴이라는 굴이 나온다. 50년 전 연화굴 바로 옆에 <연화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여름방학 한 달을 보냈다. 연화사는 절이라 해봤자 불당으로 사용하는 조그만 방하나에 스님이 기거하는 방 하나, 그리고 외부인에게 빌려주는 방 2개가 있는 그야말로 작은 절이었다. 당시 스님은 1명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제대한 2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었는데, 사람이 없을 때면 야외 전축으로 <커피 한잔>, <싫어> 등 펄시스터즈의 노래를 틀어놓곤 하였다. 아마 무허가 사찰이었던 모양으로, 20년 전에 와서 한번 거기를 찾았더니 모두 철거되고 없었다.


20. 집으로


주왕산을 내려와 집으로 가기 전에 청송 전통시장에 들리기로 하였다. 청송은 옛날부터 깊은 산골이라 갖은 산나물이 많아 시장에서 산나물을 사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청송 시장에 들리니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다. 시장도 매우 작은데, 그 조차도 문을 연 가게도 그리고 손님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신발가게 하나만 문을 열고 있을 뿐 채소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여긴 통과


집사람과 교대로 운전을 하며 집에 도착하였다. 영덕에서 사 온 막회와 몇 가지 농산물을 꺼내 냉장고 속에 넣었다. 오늘 저녁은 막회 반찬에다 청송 주왕산 막걸리이다. 막회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보였는데, 막상 꺼내 접시에 담고 보니 양이 어마어마하다. 거의 며칠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앞으로 며칠은 막회로 행복할 것 같다.


(영덕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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