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통일전망대와 화진포
건봉사와 라벤더 마을을 보았으니, 진부령 근처 명소는 대충 둘러본 셈이다. 이번에는 동해안 제일 북단으로 올라가 내려오면서 볼만한 곳을 관광할 예정이다. 지도를 보니 <제진역>이라는 곳이 있다. 동해북부선 기차역으로서 우리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한 기차역이라고 한다. 역이 있으면 마을이 있을 테고, 그리고 가보자.
고성에서 북쪽으로 한참 달리니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검문소가 나온다. 검문소 초병에게 제진역과 통일전망대로 간다고 하니, 여길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허가증이 필요한데,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출입증 발급 사무소가 있으니 거기서 출입증을 받아오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출입증을 받으러 4킬로 정도를 뒤돌아가, 출입 사무소에서 출입증을 받았다. 절차는 간단하였다. 출입증을 발급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출입증으로는 통일전망대만 가능하고, 제진역에는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제진역은 북한으로의 철도 연결을 위해 만든 역으로, 주위에 마을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태어 가볼 이유도 없다.
통일전망대로 가는 출입증을 발급받자마자 바로 그리로 갈 수는 없으며, 20분 간격으로 기다렸다가 출발하여야 한다고 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통일전망대로 향하여 달렸다. 조금 전 왔던 검문소를 거쳐서 북으로 달려간다.
통일전망대는 이번이 3번째인 것 같다. 1984년에 처음 와보고, 그다음엔 10년 전쯤, 그리고 이번이다. 처음 통일전망대를 찾았던 때는 직장 등산반에서 설악산 등산을 한 후 직원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을 왔다. 그때는 5공 초기라서 대북 적대심이 높았던 때였다. 검문소에서 초병이 우리가 탄 버스에 동승하여 전망대까지 함께 갔다. 그때 가는 길에 동승한 초병이 우리들에게 주의사항과 함께 이곳 DMZ 안의 마을 사정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초병으로부터 들었던 기가 막힌 이야기.
만약 전쟁이 터지는 등 유사시가 되면 우리 군인들이 이곳 DMZ 안에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모두 사살하게 되어 있단다. 그 당시 항간에도 이런 이야기가 간혹 떠돌기도 했는데, 이곳을 경비하는 초병의 입으로부터 설마 그런 말을 들을지는 몰랐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태어난 남자는 평생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며, 여자만이 결혼을 해서 마을을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그 초병도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 무용담 삼아 떠드는 말인지는 몰랐지만, 여하튼 이곳을 경비하는 군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군인들이 이렇게 떠들고 다녔으니, 마을 사람들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 마을 사람들이 우리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사시가 되면 북쪽에서는 자신들을 해방시켜주려 내려온다는데, 이곳 남쪽에서는 자신들을 모두 죽인다고 한다니 이곳 주민들은 유사시가 되면 과연 어떤 판단을 할까? 아마 그 당시도 유사시가 되면 정말 주민들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아무리 잔혹한 정부라도 자신의 국민들에게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으리라. 아마 요즘은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여하튼 초소를 지나 10여분 정도 달리니 높은 언덕에 위치한 통일전망대가 나온다. 이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큰 전망대 건물이 들어서 있고, 주차장도 널찍하며,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망대 건물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코로나19 탓인지 전망대 건물은 모두 폐쇄되어 있다. 굳이 전망대 건물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곳저곳 북쪽 땅과 동해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많다.
나무로 된 데크 길이 있고, 그리로 들어가면 북쪽이 잘 보이는 전망 장소가 몇 곳 있다. 이곳에 서니 북한의 해금강 일대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 보인다.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 상태인데, 해금강 일대는 그래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푸른 숲으로 덮여있다. 북으로 펼쳐진 동해 해변과 그 끝자락에 보이는 해금강이 아름답다. 이곳 데크 길에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불교식의 불상과 사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그 옆으로는 십자가와 예수상, 마리아상 등 기독교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요즘 여론조사나 국민의식 조사 등을 보면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과거보다는 많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며, 통일이 되면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우리나 막연하게는 모두 통일을 바라지만, 통일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람 손에 키워진 동물들을 야생에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토끼나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은 물론,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도 야생에서의 생존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통일이 되어 남북 주민이 함께 합쳐지게 된다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시장경제 국가들 가운데서도 영미형(英美型)에 속하여 개인의 경제적 자유도가 높은 반면 사회적 관용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같은 영미형 시장경제 국가들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특히 경쟁이 치열한 국가에 해당한다. 이런 속에서 살아온 우리 국민들은 시장경제라는 정글 속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생존능력을 몸에 익혀 왔다. 이에 비해 북한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국가의 관리 하에서 살아왔다. 시장경제라는 자유경쟁의 정글 속에서에서의 생존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남북한 주민들이 같은 환경에서 섞여 살게 된다고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통일전망대를 나와 초소를 지나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화진포가 나온다. 화진포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쪽 화진포 해수욕장 부근은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에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이 바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화진포에는 또 해양박물관도 있다.
먼저 화진포 해양박물관으로 갔다. 그러나 이곳 역시 코로나19로 관광객들의 입장이 금지되어 있다. 해양박물관은 바다에 인접해있고, 아주 큰 주차장을 두고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다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나가 동해안 경치를 감상한다. 역시 동해안은 어디를 가더라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화진포 해수욕장은 비록 그 크기는 작지만 상당히 넓은 백사장을 안고 있다.
다음으로 김일성 별장으로 갔다. 이 지역은 넓은 솔밭 숲과 함께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이 인접해있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먼저 김일성 별장으로 갔다. 김일성은 1945년 해방 이후 국내로 들어왔을 것이고, 그때부터 전쟁을 일으키기 전 몇 년 간은 국가의 건설, 내부적 권력투쟁 그리고 전쟁준비 등으로 상당히 바쁜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열악한 교통사정을 감안할 때 평양에서 오는데만 거의 이틀 정도는 걸릴 것 같은 이 먼 화진포에 별장까지 지을 엄두를 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별장은 일제 강점기 선교사가 지었던 곳으로 김일성 가족이 여름에 두 번 이곳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김일성 별장>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은 작은 언덕 위에 있다. 언덕 위는 아주 큰 소나무 숲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바다를 내려도 보는 좋은 위치에 마치 작은 성처럼 우뚝 서있다. 그 모습이 마치 중세의 유럽 성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곳을 다른 이름으로는 화진 포성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이 건물은 1930년대 독일인 선교사 셔호드홀 부부가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아니 선교사가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할 생각을 않고 이렇게 호화로운 별장을 지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셔호드홀 부부는 선교사이면서 의사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결핵이 만연하고 있었는데, 셔호드홀 부부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결핵전문 병원을 설립하여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한다. 그 설명을 보고는 조금 전의 비판적인 생각이 싹 사라지고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장으로 올라가는 작은 돌계단은 김정일 남매들이 않아서 놀았던 자리라고 한다. 대여섯살 정도의 김정일과 그 동생 등 아이들이 러닝과 반바지를 입은 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은 모습이 계단에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별장은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넓고 화려한 별장이다. 이 별장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한 층의 넓이가 100평 가까이 되어 보인다. 별장 내부는 대부분이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 한켠에 김일성의 침실과 사무실이 복원되어 마련되어 있다. 다섯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에 한쪽에는 책상과 다른 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다. 별장 뒤로는 해송길 산책로가 있다. 총길이가 5킬로 가까운 길인데, 바닷가 언덕의 해송 숲 사이로 산 아름다운 산책길로서 큰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을 나와 바닷가 쪽으로 잠시 걸어가면 이기붕 별장이 나온다. 이곳도 이기붕이 지은 별장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 때 지은 휴양소 건물인데, 6.25 전쟁 후 이기붕의 부인인 박마리아가 자신의 소유로 돌렸다고 한다. 이곳은 바닷가 해송 숲 속에 위치해 있는데, 건물의 넓이가 10평 남짓해 보이는 옆으로 길쭉한 작은 건물이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건물이다.
이승만 별장은 여기서 1킬로가량 떨어져 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하여 먼저 점심부터 먹고, 이곳은 나중에 다시 찾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