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천상의 화원 곰배령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곰배령을 들러 가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곰배령을 여행 코스에 넣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자연보호를 위하여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곰배령 입산을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하여야 한다. 곰배령 입산은 오전 9시와 11시 두 차례에 걸쳐 허용되는데, 9시에는 300명, 11시에는 200명으로 한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곳 용대 자연휴양림은 워낙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탓인지 통신이 잘 안된다. 전화를 하면 자주 끊어져 정상적인 통화가 어려우며, 인터넷도 한정 없이 기다려야 겨우 연결이 된다. 몇 번 예약을 시도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제 관광을 하는 중간에 접속을 하여 예약을 하려 하였으나, 이틀 전에 예약을 하여야 하는지, 어제는 토요일 이후만 예약이 가능하였다.
좀 늦게 일어나 부지런히 짐을 꾸렸다. 얼추 짐을 정리해서 휴양림을 나오니 10시가 좀 넘었다. 여기서 곰배령까지는 한 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데, 도착하면 11시가 훌쩍 넘어간다. 예약도 않은 데다 출발시간까지 넘겨 도착하니 곰배령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생각되었지만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곳으로 가지 하는 기분으로 일단 곰배령을 향해 출발하였다. 진부령을 내려와 백담사 부근을 지나 다시 왼쪽 한계령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이번 여행에서 두 번째로 간다. 한계령 정상에 있는 휴게소를 지나 양양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곰배령 가는 길이 나온다.
곰배령 가는 길로 들어서서 내비로 남은 길을 확인하였다. 목적 지점인 곰배령 예약 관리소까지는 25킬로 정도 더 가야 한다고 나온다. 정말 심심산골이다.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인가를 찾아볼 수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들어간다. 정말 이곳 사람들은 옛날 교통편이 없었을 때 어떻게 살았을까?
이십 년 전쯤인가, 지리산 속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며칠간 민박을 한 적이 있었다. 노고단 휴게소에서 뱀사골 방향으로 잠시 내려오다 보면 나타나는 약 10여 호 되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민박을 한 집의 주인은 당시 60세가 좀 넘어 보이는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젊은 촌로였다. 그곳에서 태어나 줄곳 그곳에서 자랐다 하는데, 어렸을 때 이야기, 젊었을 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산속에 살다 보면 먹을 것은 자체 해결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옷이라든가 등잔불을 켜기 위한 석유라든가, 그밖에 산속에서는 조달이 불가능한 물건을 사러 산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고 한다. 거기서 제일 가까운 시장은 구례장이었는데, 거리가 거의 30킬로에 가까웠다. 장에 가는 날은 새벽 3시 무렵 집을 나와 산을 내려가면 오전 9시쯤 구례장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거기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사 한 지게 가득 지고 다시 산에 올라 집에 오면 깜 감한 밤중이라 하였다.
여긴 오히려 그 하늘 아래 첫 마을보다 더 한 깡촌인 것 같았다. 한계령 정상에서 25킬로 정도 되니까 인제나 원통장에 갈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옛날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아니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도 이런 곳까지 과연 행정력이 미쳤을지 궁금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사는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서 북한 인민군과 우리 병사들이 만나게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곳이 정말 그 동막골과 같은 동네가 아닌지 모르겠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고, 곰배령 예약관리소가 나온다.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좀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보려 예약관리소 쪽으로 갔다. 밖에서 보니 사람들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그냥 통과하여 곰배령 입구 사무실 쪽으로 갔다. 작은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이러면 구태여 관리소 직원들을 만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만드는 것이다. 염치불구하고 그냥 곰배령 산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 산길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다. 야생화는 아니고 조경을 위해 일부러 심은 꽃인 것 같다.
곰배령은 설악산 자락 가운데 하나인 점봉산에 위치해 있다. 이곳도 설악산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곰배령은 10여 년부터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비록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산이지만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있어 “천상의 화원”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 국립공원 관리당국에서는 이곳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관찰객들의 숫자를 아주 엄격하게 통제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처음은 숲길로 가다 보면 마을이 나오고, 그리고 평평한 고갯길이 나오며, 그 길을 한참 따라가면 곰배령 정상이 나온다고 한다. 왕복 3-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곰배령 가는 숲길은 온갖 잡목들로 무성한 숲 속으로 나있으며, 옆으로는 깊은 계곡이 있다. 걸으면 계곡 물소리와 함께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아침까지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계곡 물소리가 우렁차다. 숲 길은 거의가 흙길로 되어있고, 경사도 거의 없어 걷기가 더없이 편하다. 다만 이곳 곰배령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야생화들은 이미 계절이 지났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으니 조금씩 바윗길이 섞인 길이 나온다. 젊을 때 같으면 이런 길이 흙길에 비해 걷기에 훨씬 더 좋지만 나이가 들면 이런 길이 매우 조심스럽다.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난다. 지난밤 비로 바위가 젖어 더욱 조마조마하다. 얼마쯤 더 가다 산에서 내려오는 어느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9시에 출발하여 곰배령 정상에 갔다가 지금 내려오는 길이라 한다. 시계를 보니 12시 정도인 걸로 보아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집사람은 바윗길이 나오기 시작하자 돌아가겠다고 한다. 집사람이 돌아간 후 나는 조금 더 걸어갔다가 돌아오기로 하였다. 만난 부부들에게 얼마나 더 가면 마을이 나오느냐고 물어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출발하여 몇십 분 지나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 길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마을이 있다는 길은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곰배령 산책길은 이 길만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데도 입구가 더 있는 모양이다. 부부와 헤어져 주위의 풍경을 즐기며 계속 걸어 올라갔다. 길이 조금씩 험해진다. 조금 험한 길은 안전한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쯤에서 무리 않고 되돌아 내려가기로 했다. 집사람을 아래서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려오면서 바윗길을 지나다 보니 등에서 진땀이 난다. 몇 년 전 베트남 사파 여행에서 비 오는 날 바위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도 허리가 아프다. 당시에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 걸로 생각하였다. 그때도 그다지 큰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었다. 산을 내려오다가 단순히 바위돌 위에 엉덩방아를 찧은 것뿐이었다. 젊었을 때라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나이가 들어서는 몸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다. 이런 산길에서도 미끄러져 엉덩방아라도 찧게 되면 그날로 바로 병원행이고, 평생 다시 못 일어나지도 모른다.
무리하지 않고 안전위주로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왔다. 바윗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오니 이제 안심이 된다. 긴장하여 들리지 않았던 계곡 물소리, 새 울음소리가 다시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쪽 길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길에 비해서는 조금 험한 느낌이 있다. 다음에는 다른 코스로 곰배령을 찾아보아야겠다. 아래로 내려오니 두 시간 정도를 걸은 것으로 나온다. 곰배령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절대로 과욕할 필요가 없다. 안전위주로 느긋하게 풍치를 즐기고, 그것에 만족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이번 여행은 끝이다. 앞으로 3시간 정도 달리면 집이다.
집을 향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