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7)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
다음 행선지는 만리포 일대이다. 만리포는 태안반도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울사람들도 많이 이용하는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다. 만리포 옆에는 또 천리포가 있다. 사람들이 만리포와 천리포까지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옆으로 백리포와 십리포, 그리고 일리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리포 다음이 천리포, 천리포 다음이 백리포, 백리포 다음이 십리포, 십리포 다음이 일리포이다. 이렇게 단위가 차례차례로 내려오니 일리포가 아니라 “영리포”로 해야 되는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다. 10의 4제곱은 10,000, 10의 3제곱은 1,000, 10의 2제곱은 100, 10의 1제곱은 10, 10의 0제곱은 1이니까 십리포 다음은 일리포가 맞는 것 같다. 일리포 다음에는 “영점일리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곳은 없는 것 같다.
만리포에는 이전에도 몇 번 와본 적이 있었다. 넓은 백사장에 서해의 전형적인 완만한 바다, 그리고 긴 해변을 가진 아주 좋은 해수욕장이다. 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평일인데다 날씨도 흐려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해변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두고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뜨인다. 해변에 있는 주차장들은 대부분 음식점이나 가게들에 딸린 주차장으로서, 주차하기 적당한 곳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 해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갔다. 해수욕장이 거의 끝날 무렵 공설 주차장이 나온다.
넓은 백사장과 탁트인 바다, 언제 봐도 좋은 곳이다. 이곳 만리포 해수욕장 오른쪽, 그러니까 천리포 해수욕장과 경계선을 이루는 곳에는 호텔과 식당 등이 있고, 그 앞으로 육지와 연결된 작은 섬이 있다. 원래는 “닭섬”이라 하였는데, 요즘은 이곳을 “뭍닭섬”이라 부르는 것 같다. 육지와 연결된 닭섬이라 뭍닭섬이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뭍닭섬에는 요즘 섬을 일주하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관광객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차를 주차하고 백사장을 가로질러 물가까지 가보았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조개를 잡으며 놀고 있다. 엄마가 비가 오겠다고 돌아가자고 해도 아이들을 막무가내이다. 뭍닭섬까지는 도로를 따라 걸어도 되지만 이렇게 이곳 백사장을 가로 질러 가도 된다. 뭍닭섬으로 들어갔다. 클리프(cliff) 카페라는 작은 카페가 있고, 그 옆으로 아주 가파른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오르면 나무 데크로 만든 편안한 산책로이다. 산책로는 섬 둘레를 따라 이어진다. 넓은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책로는 일품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많다.
뭍닭 산책로의 백미는 출렁다리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출렁다리는 보수 공사중이라 이용할 수가 없다. 출렁다리 옆으로 산 위로 우회길이 만들어져 있다. 우회길로 올라가 다시 길을 내려오니 다시 나무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나온다. 뭍닭섬을 완전히 일주하는 거의 끝부분 갑자기 길을 막아놓았다. 산책로 보수공사를 한다고 길을 폐쇄해둔 거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왔다. 뭍닭 산책로는 완전 일주하더라도 1킬로가 되지 않은 짧은 산책로이다. 그렇지만 서해바다 전체를 즐기면서 걷는 이 길은 이곳 만리포의 새로운 명물이라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천리포 해수욕장이 나온다. 천리포 해수욕장은 그 형님뻘인 만리포 해수욕장에 비해서는 아주 좁다. 그렇지만 좁은 만큼 아주 아늑한 느낌을 준다. 천리포 앞바다에도 만리포의 뭍닭섬과 비슷한 형태의 섬이 있다. 물 때에 따라 바다가 되기도 하고, 길이 생기기도 하는 그런 섬이다. 뭍닭섬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바다속 더 멀리 있어 개발을 한다면 뭍닭섬보다도 훨씬 더 인기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천리포가 만리포의 동생뻘이라 해야하나 아니면 아들뻘이라 해야 하나? 구천리포, 팔천리포라면 만리포의 동생이라 해야겠지만, 단위가 완전히 다른 만큼 아들뻘이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썰렁 퀴즈 하나. “구렁이의 형은 팔렁이, 팔렁이 형은 칠렁이이다. 그러면 구렁이 동생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구렁삼”
천리포 수목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장료는 9,000원, 나는 경로 우대를 받아 6,000원이다. 수목원에 들어갔더니 생각보다는 넓다. 가운데 제법 넓은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로 온갖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이 자라고 있었는데, 아직 철이 일러서 그런지 이제 작은 꽃들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토종의 나무와 꽃들에 대해서도 그다지 잘 모르는데, 세계 여러 곳의 갖은 종류의 나무와 꽃들을 모아놓았으니 무슨 나무고 무슨 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표지가 붙어있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꽃과 나무 이름이 무슨 상관이랴. 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수목원은 기대 이상이다. 나무와 꽃의 종류도 많았지만 이것이 잘 설계되어 있어 가는 곳마다 감탄사를 나오게 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연속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할만한 곳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수목원은 좀처럼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천리포 수목원은 바다를 끼고 있다. 그래서 수목원 곳곳에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꽃을 보면서 걷느라 아픈 다리를 쉼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잠시 쉰다. 시원한 바닷 바람이 불어와 기분은 더 없이 상쾌하다. 이곳은 여러번 찾아도 좋을 듯하다. 앞으로도 이 쪽으로 올 기회가 있으면 다시 찾아 오늘 못본 곳까지 구석구석 수목원을 즐겨야 겠다.
백리포는 천리포 옆에 있으나 해변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내륙 쪽으로 조금 들어갔다가 다시 해변 쪽으로 가야 한다. 15년쯤 전에 백리포를 한번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가는 길이 너무 좋지 않았다는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15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나아졌겠지.
백리포로 가는 길을 들어서니 15년 전과 마찬가지이다. 자동차가 교차하기 어려울 정도의 산길을 계속 가다보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쯤 가면 포장길로 끝나고 만다. 덜컹거리는 숲속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백리포 해변이 나온다. 그런데 해변은 온통 민박집들로 들어차 있는데, 지금은 비수기라 집들이 거의가 비어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주차할 곳을 찾기도 어렵고, 해변으로 가려면 민박집들을 통과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 별 수 없이 차를 길가에 잠시 세워두고 길에서 민박집들을 건너 펼쳐지고 있는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 한다.
이래서야 지자체 등에서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해주고 싶어도 어려울 것 같다. 제대로 바다에 접근할 수도 없는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 수가 많을 수가 없으며, 결국은 그 손해는 이 마을 전체에 돌아갈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민박집을 이용하지 않고는 바다레 접근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민박집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만큼 이곳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 자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즉, 하나하나의 민박집으로서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것 같지만, 마을 전체로 보면,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손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십리포이다. 내비에 십리포를 입력해 두고 차를 달린다. 10분쯤 달리다 보니 내비에 입력해둔 십리포에 도착했는데, 도로 한가운데이다. 다시 내비를 확인해보니 언덕 위에 있는 이 도로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십리포로 나타나 있다. 십리포는 생략하고, 다시 일리포로 향했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비는 도로 위에서 일리포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여주며, 다시 확인해보니 앞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은 많이 걸었다. 십리포와 일리포는 다음에 확인하기로 하고 이만 돌아가야 겠다.
어제는 족발로 시원찮게 저녁을 때웠으므로, 오늘은 회를 먹어야 겠다. 이 부근에서 제일 가까운 수산물 시장은 만리포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모항항 수산물시장이다. 모항항은 만리포 해수욕장을 앞두고 왼쪽 길로 빠져 5분 정도 달리면 나오는 작은 포구이다. 모항항은 아주 작은 포구인데, 포구의 크기에 비해서는 제법 큰 수산물 시장이 있다. 아마 만리포를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것 같다.
역시 바닷가라 어제 찾았던 서산동부시장에 비해서는 수산물의 종류도 많고 훨씬 싱싱하다. 요즘은 서해안에 자연산 광어가 많이 잡히는 철이다. 5월말부터 서해에는 자연산 광어가 많이 잡히는데, 이 때는 자연산 광어의 회가 엄청 싸다. 작년 대천항에 갔을 때는 자연산 광어의 값이 양식 광어 값의 반 정도에 불과하였다.
자연산 광어라 그런지 큰 놈들이 많다. 어떤 것은 방석만한 것도 있다. 가격을 물어보니 1킬로에 3만원이라고 한다. 한 곳에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1.2킬로 정도 되는 것을 3만원에 주겠다고 한다. 회는 남편이 쳐주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주인 아주머니가 틈만 보이면 남편이 어디로 도망간다고 불평하면서 부지런히 전화를 하여 남편을 부른다. 회의 양이 상당히 많다.
오늘 관광은 이걸로 끝이다.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좀전에 사온 광어회를 풀었다. 보통 광어회는 살이 약간 누런색을 띠는데, 자연산 광어의 경우는 아주 하얗다. 보통 자연산 광어보다는 양식 광어가 더 맛있다고 하는데, 오늘 산 광어는 아주 맛있다. 그리고 양도 엄청 많다. 집사람과 둘이서 겨우 다 먹었다. 하도 배가 불러 산책하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