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 자연휴양림 여행(5)

(2021-11-11 c) 월출산 도갑사와 왕인 박사 유적지

by 이재형

천황사와 도갑사는 모두 월출산에 있는 사찰로서 직선거리는 5킬로 남짓이다. 그런데 산의 다른 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동차로는 20킬로 정도를 달려야 한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고 있어 더 이상 국립공원 입구에서 서성거릴 수가 없어 차를 타고 도갑사로 향하였다.


8. 월출산 도갑사(道岬寺)


도갑사란 이름의 사찰은 처음 들어본다. 절에 대해서 제법 안다는 집사람에게 물어보았으나 집사람도 처음 들어보는 절이라 한다. 조그만 절이라 생각되었지만 특별히 갈 곳도 마땅 찾아 이곳을 선정하였던 것이다.


좀 전에 가려다 못 간 천황사는 월출산 중턱 높은 곳에 있지만, 도갑사는 월출산 아래 자락 편편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갑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이 생각보다 상당히 넓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그새 그치고 햇빛이 비친다. 하늘에는 구름이 몇 점 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변덕이 심한 날씨도 처음 본다. 주차하고 난 뒤 넓은 도로를 걸어서 일주문 쪽으로 갔다. 왼쪽에 거대한 나무가 서있다. 잎은 이미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는데,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지 마치 거대한 용이 용트림을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옆으로 퍼진 굵은 가지들은 나무가 나이가 들어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지 굵은 철체 받침대로 받쳐두고 있다. 팽나무로서 나이는 480년이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멋있게 생긴 나무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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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 호젓한 길을 잠시 걸어가니 절 안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얼마나 오래된 돌계단인지 돌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넓고 크다. 알고 보니 이 절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로서, 전남의 중심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절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해탈문(解脫門)인데, 국보 제50호이다. 이 외에도 도갑사 절 뒤쪽 산 위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 역시 국보라 한다. 이 두 점의 국보 외에 도갑사는 여러 점의 보물과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절을 둘러보고 있자니 또 금방 날씨가 흐려진다. 절 뒤쪽에 있는 월출산 봉우리들이 비안개로 덮이기 시작한다. 평지에 세워진 절이라 터를 아주 넓게 차지하고 있다. 2층으로 된 대웅전이 절 가운데에 자리 잡아 있고, 마당에는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5층 석탑이 있고 그 주위는 국화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집사람은 불공을 드리겠다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나는 절 이쪽저쪽을 돌아본다. 크고 잘 정리되어 있으며, 여러 전각들이 아주 균형 잡게 자리 잡은 절이다. 나야 절에 가보았자 절집과 주위 풍경을 감상하는 정도인데, 내가 보기에도 쉽게 찾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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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을 마치고 나온 집사람은 참 좋은 절이라고 연신 감탄을 한다. 주위에 단풍나무는 그다지 보이지 않으나 은행나무들이 많아 절 주위를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위쪽은 이제 은행잎이 거의 지고 있지만, 여기는 날씨가 따뜻한 곳이라 지금부터이다. 일주문 쪽을 내려오니 일주문 뒤쪽에 국중제일선종대찰(國中第一禪宗大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선종 사찰이라는 뜻이다.


9. 왕인(王仁) 박사 유적지


도갑사를 나와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왕인 박사 유적지>가 있다. 애초에 예정에 없던 곳이었고, 또 왕인 박사라면 벌써 1,500년도 더 이전의 사람인데 무슨 변변한 유물이 있으려나 생각되어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나 시간도 남고 해서 들리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왕인 박사 유적지라 해서 오래된 작은 유적지나 몇 곳 정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넓은 터 위에 큰 기념관이 있고, 왕인 박사의 동상과 왕인 박사와 관련된 많은 조형물을 설치되어 있다. 유적지의 전체 면적은 약 50만 평 정도이며, 여기에 왕인묘와 사당, 전시관, 왕인상, 그 밖의 여러 부속 건물, 그리고 왕인이 학문을 닦았다고 전해지는 여러 유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잘 아시다시피 왕인은 백제 근초고왕(AD.346-375) 때 학자로서 일본의 초청으로 논어 10권과 천자문 책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문자를 전하고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은 일본서기, 고사기 등 일본의 역사서에 나와 있는 사실로서,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왕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에는 약간의 의문이 든다. 만약 우리 역사서에 왕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여기에 있는 왕인과 관련된 많은 유적들은 모두 일본의 역사서에 의한 것인가? 일본의 역사서에 왕인이 공부하였던 곳, 책을 읽었던 곳 등에 대해 그렇게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까? 아니면 이 지역의 설화로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인가? 이런 의문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므로 일단은 접어 두고 유적지나 관람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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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에 들어서면 먼저 2층으로 된 한옥 양식의 큰 기념관이 나온다. 기념관 앞에는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왼쪽에 있는 천자문(千字文)에 눈이 간다. 검은 돌에 새긴 천자문은 2종류인데,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천자문이며, 다른 하나는 왕인 박사가 일본에 가져갔다는 천자문이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에는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갔던 뱃길, 유적지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들, 백제의 왕실과 관리들의 복식, 왕인 박사의 유적지 분포 등 왕인 박사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지나면 넓은 정원이다. 정원 가운데로 난 돌로 된 큰길을 따라 가면 왕인 석상이 서있다. 왕인 석상 쪽으로 걸어가자니 또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우산도 가지고 오지 않아 낭패다. 아쉽지만 서둘러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왕인 박사에 대한 기록이 일본의 여러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왜 우리의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하면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백제로서는 학자 한 명이 그냥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일본으로서는 새로운 문명을 가지고 들어온 외국인 학자가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조선시대 우리 땅으로 표류해 온 “하멜”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정작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에서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하멜에 대한 기록이 수없이 많지만, 정작 네덜란드에서는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하멜은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만, 네덜란드로서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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