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 a) 휴양림 산책과 정남진
어제저녁부터 바둑 TV를 보느라 새벽 3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아침에 되어 잠이 쏟아지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일어났다. 난방 온도를 높여 두었기 때문에 마치 한증막에 다녀온 듯 많은 땀을 흘렸다. 간단한 반찬으로 아침을 때운다.
장흥군에 있는 이곳 천관산은 이번 여행 계획을 짜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천관산은 전라남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에 속한다고 한다. 이 산이 지리산과 월출산, 내장산 등과 동급인지는 몰랐다. 산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는 물론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천관산이란 이름은 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들이 마치 천자의 화려한 면류관처럼 보여서 라는 설도 있고, 김유신이 사랑했던 천관녀가 이곳에 숨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휴양림을 산책하기로 하였다. 이곳에는 ‘천관사’라는 절이 있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숙소에서 직선으로 600미터 정도 거리라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고 가면 25킬로 미터라 나온다. 아마 산 저편에 있는 모양이다. 숙소 옆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 옆으로는 제법 큰 나무들이 서있다. 삼나무 아니면 편백나무인데, 두 나무를 함께 비교해 보면 어느 것이 삼나무고 어느 것이 편백나무인지 알 수 있는데, 비교 대상이 없이 이렇게 서 있으니 무슨 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상당히 키는 크지만 삼나무나 편백나무 치고는 그다지 큰 편이라 할 수는 없다.
어제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던 늦가을비는 멈추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다. 하늘은 맑지만 공기는 차다. 이곳은 우리나라 남단이므로 지금쯤 단풍이 한창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단풍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상록수로서 단풍이 드는 활엽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산 전체가 아직도 푸른색을 띠고 있다. 편백나무(혹은 삼나무?) 중간중간에는 동백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역시 남해에 연한 지역이다.
산길을 15분가량 걸어 올라가니 저 위쪽에 건물이 보인다. 천관사인가 생각해서 얼른 올라가 보니 수정제(水晶齊)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한옥 건물이 보이고, 앞에는 조그만 정자가 하나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 높은 산 위 이곳에 절도 아니고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중에 휴양림을 떠나는 날 휴양림 입구에 수정제에 대한 안내판을 확인해보니, 이럴 수가!!! 인천 이 씨(仁川 李氏) 재실이란다. 바로 우리 문중(門中)의 재실이라는 거다. 먼 이곳 남쪽 끝 땅에 와서 우리 문중의 재실을 볼 것으로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진작 알았으면 좀 더 꼼꼼히 살펴볼 걸 그랬다.
넓은 산길은 이곳에서 끝난다. 산을 더 오르려면 본격적으로 좁은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천관사를 가려면 이 길로 가야 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천관사에 갈 요량으로 비탈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제 종일 비가 와서 길이 젖은 데다가 낙엽이 떨어져 길이 아주 미끄러은 듯 보인다. 비탈길의 경사도 여간한 것이 아니다. 계속 오르면 위험할 것 같아 천관사는 포기하기로 하였다.
동해안에는 정동진(正東津)이라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정 동쪽 방향에 있는 포구이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정동진이란 곳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동해안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아주 각광받는 장소가 된 것 같다. 그러면 정동진이 있다면 정서진, 정남진, 정북진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정서진(正西津)이 있다면 인천 어느 곳쯤 될 것이다. 처음에는 정서진이란 곳은 없는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인천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정남진은? 있다. 바로 이곳 장흥에. 휴양림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정남진이 나오며, 그 높은 언덕 위에 정남진 전망대가 있다.
나는 이곳 정남진이란 곳이 정동진이 인기를 타는 바람에 요즘 와서 새로 명명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벌써 조선시대부터 이곳을 정남진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럼 정동진, 정남진은 있으니 정북진은 없는가? 있다. 다만 그 이름이 정북진이 아니고 중강진(中江津)이다. 압록강을 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고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중강진은 서울에서 정북 방향에 있는데, 그 때문에 정북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남진과 중강진은 서울을 가운데 두고 남북 방향으로 대칭점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정남진 전망대란 말을 듣고, 이곳 외진 곳에 있는 전망대라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그만 정자 하나 정도 있을 걸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언덕 위 넓은 곳에 터를 잡은 정남진 전망대는 10층 높이의 전망대를 중심으로 잘 가꾼 정원과 함께 여러 종류의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정도의 전망대는 전국적으로도 그다지 흔하지 않을 정도로 잘 지은 구조물이다.
전망대 앞에 있는 공터에서 남해 바다를 내려다본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햇빛은 내리쬐지만 날씨는 아주 춥고 바닷바람은 세차다. 제법 두꺼운 파커를 입었는데도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보통 다도해에서는 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섬이 저 멀리 보인다. 그렇지만 왼쪽의 고흥반도로부터 바다 가운데로 연결된 섬은 더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 있다. 줄지어 서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멀리서 본 섬 풍경 가운데서는 지금껏 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전망대 정면에는 아이들을 위한 십이지신상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쪽으로는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주위를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공간 가운데에는 큰 원형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서면 삼면의 바다 풍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맑던 하늘이 갑자기 찌푸린다. 바닷바람은 더욱 세차 진다. 경치도 좋지만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전망대로 들어갔다. 집사람은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는 경로우대 공짜로 입장하였다. 요즘 여행을 하다 보면 입장료를 받은 곳이 많은데, 몇 곳을 들리면 입장료만 몇 만 원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경로우대 공짜 입장은 주머니 부담을 많이 덜어준다. 전망대의 1층은 장흥에 관한 전시실로 되어 있다. 장흥의 역사, 특산물 등을 소개하는 전시물이다. 전시관을 거친 후 가장 위층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는 3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다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전망대가 높은 만큼 아래쪽보다 풍경을 감상하기는 훨씬 더 좋으나 유리를 통해서 봐야 하는 만큼 아래보다는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전망대로 오를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내려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이 전망대는 전부 10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9층과 10층이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고, 나머지 층은 층마다 조그만 테마별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8층은 북카페, 7층은 문학 영화관, 6층 추억여행관, 5층 축제관, 4층 이야기관, 3층 푸드 홍보관, 2층 트릭아트 포토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한 전시물로 재미를 돋운다.
이곳 장흥은 문학의 고장이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많은 문인들이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한반도 최남단의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우리 문학사를 빛낸 이러한 여러 문인들이 탄생하였다는 것은 이 고장으로서는 자랑할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